아리의 정체불명 여드름
제이의 항암치료는 별 부작용 없이 중반에 이르렀고, 우리도 매주 주말에 동물병원을 오가는 생활에 나름 익숙해졌다. 이쯤에서 우리 둘째 고양이 아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참고
https://brunch.co.kr/@cats-day/17
올해 초 제이에게 갑자기 큰 병이 발견되고 나자 아리도 한 번은 건강검진을 받아봐야겠다는 위기감이 덜컥 생겼다. CT든 MRI든 찍어봐야 나올 법한 내가 모르는 병을 어디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실제로 확인을 해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하지만 당장 제이의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 보니 아리의 건강검진은 하루이틀 미룰 수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치료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우리도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아리도 병원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사실 아리는 워낙 잘 놀고 뛰고 해서 별로 걱정되는 점이 없었는데 딱 한 가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턱에 있는 빨간 여드름 같은 것이었는데, 길고양이였던 아리를 처음 길에서 데려왔을 때부터 눈에 띄던 것이라 그때 바로 동네에 있는 병원에 데려갔었다. 동네 병원치고는 크고 깔끔한 24시간 병원이라 제이가 처음 접종이나 중성화를 하기도 했던 병원이었다. 아리 턱을 보여주며 물어봤더니 단순한 여드름이라고 하면서 연고와 소독약을 처방해 주었다. 온몸을 다 만질 수 있게 해주는 아리가 턱에 약만 바르려고 하면 질색을 하고 도망가는 통에 쉽지는 않았지만 겨우 약을 바르며 얼마간 지켜봤다. 나아지는가 하면 어느 날 다시 빨갛게 상처가 생겨 있어서,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다시 그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이번에는 밥그릇 재질을 바꿔보라고 했다. 플라스틱 밥그릇의 경우에는 균이 번식하기 쉬워 턱의 여드름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스테인리스 원목 식탁을 쓰고 있어 특별히 걱정하지 않았는데 청결 문제일 수 있다고 하여 도자기 그릇을 사용해보기도 했다. 이때도 소독약 처방을 받았다. 별 거 아니라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특별히 불편한 기색도 없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제이가 다니는 좀 더 큰 병원에서 다시 진단을 받아보려는 것이었다.
매주 병원에 드나드는 제이와 달리, 차로 긴 거리를 이동해본 적이 별로 없는 아리는 차 안에서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야옹야옹 울었다. 매주 제이만 데리고 어딜 다녀오는지 궁금했을 텐데, 별로 좋은 곳은 아니었어… 왠지 우리끼리 공유하던 비밀을 털어놓는 묘한 심정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이러저러하다고 설명을 하니 선생님의 표정이 썩 가볍지가 않았다. 단순한 여드름, 단순한 염증 같은 건 일단 아니라고 했다. 여드름처럼 작게 튀어나온 부분을 바늘로 찔러서 정확한 조직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냐아아아앙 징징 우는 소리를 내는 아리를 어르고 달래서 검사를 해 결과를 기다렸더니 세상에, 종양이라는 것이었다. 제이 때처럼 충격으로 머리가 하얘지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음이 났다.
- 제이랑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거나…?
돌덩이 하나가 덜컥 얹어진 것처럼 묵직해진 마음으로 덜덜 떨며 물어보니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종양이기 때문에 그럴 리는 없다고 했다. 역시나 왜 생겼는지는 모르며, 종양이 대개 그렇듯 ‘그냥’ 생기는 거였다. 선생님도 한 집에 두 마리가 다 종양이라니, 하고 탄식했다. 대신 아리의 경우에는 종양의 이름이 즉시 나왔다. 비만세포종.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해보니 예능 프로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던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의 상근이가 바로 이 비만세포종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것 같았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나타나는 비만세포종은 강아지에게 나타나는 것과 달리 대개는 피부에 생기는 양성 종양으로, 수술을 통해 제거하면 되는 단순(?) 종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몸 안에 있는 숨겨진 문제가 표출된 것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의심되는 부위의 세포 검사를 해보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세포 검사를 하고 이삼 일가량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 또 마음이 복잡했다. 설마, 심각한 것일 리 없다고, 흔치 않은 불치병 같은 게 어떻게 우리 집에 몰빵(?)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고 정말 다행히, 몸 안에는 다른 문제가 없으며 피부 종양만 수술로 제거하면 되는 것이라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수의사 선생님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람 병원에서도 아직 모르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이 많은데 동물병원은 오죽하랴… 싶지만, 동네 병원에서 단순한 여드름으로 치부했던 두 번의 오진에 새삼 분노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이 경험이 적어 못 알아봤을 수도 있다, 고양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과한 검사를 권장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나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고 악화되는 증상이었다면 우리는 귀중한 시간을 날려버린 것이 될 테고, 그 시간은 어떻게도 보상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병원 가서 화를 내면 뭐가 달라질까, 악의 없이 주는 피해는 이렇게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두 마리 고양이의 종양은 내가 전생에는 사실 동물학대라도 했다든가, 뭐 그런 종류의 자업자득 팔자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뭔지 몰라도 반성합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리의 종양을 발견해 다행이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더욱 다행이었다. 집앞이지만 그 병원은 다신 안 가리라 다짐하는 것으로 소심하게 나의 분노를 정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