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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ug 29. 2016

낮은 곳에 항상 고양이가 있다

홍콩 타이오 어촌 마을의 고양이 

여행지에 완전히 녹아들어 짧은 일정이라도 현지인처럼 익숙하게 생활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대개 골목길을 바싹 긴장한 채로 걷는다. 겁이 많고 비위가 약한 편이라 낯선 곳에서 불쑥 벌레가 튀어나오거나, 보기 싫은 음식물 쓰레기더미 같은 것을 만나게 될까봐 자꾸 시선이 불안해진다. 그렇다면 네모 깔끔하게 빚어진 도심을 걸으면 될 텐데,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시장, 주택가, 대문 틈으로 들여다보이는 마당, 아무렇게나 식물이 자라 있는 화단, 그런 곳들이 아무래도 궁금하다. 처음 보는 것 앞에서 겁이 나면서도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다가가는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복잡한 골목을 카메라 스트립을 손에 꼭 쥔 채로 걷는다. 


란콰이 섬에 있는 타이오 마을에 가려면 공항에서 20분 걸리는 통촌역으로, 그리고 다시 거기에서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어디까지 가버리는 건가 싶게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스르르 잠이 쏟아지지만 다행히 타이오 마을은 종점이다. 이 어촌 마을은 원래 분홍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보트를 타고 20여 분 정도를 나가면 운이 좋은 날 분홍 돌고래를 발견하기도 한다는데, 보트를 탈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 운을 모아 로또에 당첨되길 기원하며 생선 냄새가 나는 복작복작한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타이오 마을
시장을 지나면 보이는 골목길
분홍 돌고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시장 길가에서 꾸벅꾸벅 앉은 채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지나 슈퍼마켓처럼 보이는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특별히 살 건 없었지만, 홍콩은 버스에서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을 주지 않아 잔돈을 만들어놓는 것이 필수다. 꼭 잔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외국에 가면 슈퍼나 대형마트 같은 곳에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남편은 함께 갔던 첫 해외여행 때 굳이 슈퍼 구경을 하고 싶어하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했지만, 외국어로 쓰인 과자 봉지나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는 처음 보는 맥주 캔 같은 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기념으로 슈퍼에서 장을 봐 돌아와서는, 아까워서 먹지 않고 진열해둔 맥주들도 있었다. 


가게의 비닐 천막 안쪽에서 숨결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더니, 고양이 두 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맥주를 고르며 내가 슬쩍 쳐다봤더니 한 고양이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눈을 뜨곤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손님이 와도 꿈쩍 않고 떡실신
가게 테이블 위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


가게를 보던 건 열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였는데,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소녀는 내가 칭타오 캔을 꺼내 들자 수줍게 ‘나인’ 했다. 9달러를 내고, 고양이들을 가리키며 ‘유어 캣?’ 했더니 또 수줍게 끄덕, 한다.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그러라고 하는 대답에 약간은 표정이 자랑스러운 듯이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을까? 


가장 복잡한 시장 부근을 벗어난 덕분인지 이 골목은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잠들어 있던 고양이들은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도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자세를 고수했다. 나는 고양이가 발라당 뒤집어져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곳은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태평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 또한, 고양이를 안심시키는 평화로운 존재로 그 풍경의 일부가 된다. 


더운 홍콩의 날씨. 눈치 보지 않고 길에서 꿀꺽꿀꺽 마셨다


길고양이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동네였다. 사방이 바다에 시장에서는 생선을 가득 올려놓고 팔고 있고, 주택가는 고요했다. 그중 언뜻 봐도 색상이 화려해 눈에 띄는 한 카페는 고양이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 길고양이도 돌보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화려한 고양이 카페


고양이 엽서부터 그림, 액세서리, 피규어 등을 팔고 있다. 누가 봐도 여행자 티를 내며 가방을 꼭 매고 긴장하고 걷다가, 한국에서도 보던 익숙한 고양이들 모습에 갑자기 내가 서 있는 장소가 친숙해진다. 손님이 나밖에 없어 고양이들의 집중을 한몸에 받았다. 


홍콩 고양이들도 똑같네
소품도 모두 고양이


홍콩에서 만난 고양이 테마 카페가 반가웠지만 영어도, 중국어도 못하니 주인 언니와의 의사소통은 매우 간결하게 했다. 매뉴판에 'cat toast'가 있어 고양이가 먹는 것인지 사람이 먹는 것인지 물었더니 사람 음식이란다. 토스트를 포장해 다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건넜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버스에 타자마자 세찬 비가 쏟아져, 빗소리를 들으며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꾸벅 잠이 들었다. 


고양이 토스트를 포장해왔다


어느 나라를 가도 길 위에는 당연하게 고양이가 있다. 길은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사람과 동물이 같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타이오 마을은 화려한 홍콩과는 거리가 멀지만 물가라서 보트를 띄우고 고기를 잡는, 도시보다 자연에 가까운 동네다. 물론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그 일부다.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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