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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Sep 08. 2016

탐색과 확신 그 어디쯤에 있는 여행에서

부산 '별나다'

엄밀히 말해 서울 사람은 아니지만 수도권 거주자로서, 마음만 먹으면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을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영도 못하는데 왜 물을 보고 있으면 수선스럽던 마음도 느긋하게 잦아드는지 모른다. 그러니 처음 부산 여행을 갔을 때, 나는 서울과 다름없는 큰 도시에 끝없이 물결이 치는 널찍한 바다가 이어져 있다는 데에 감격했다. 그 후로 부산에 갈 때마다 나는 그 도시에 처음처럼 반하고 만다.


부산에는 혼자서 몇 번 여행을 갔다. 혼자 하는 여행은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에 좋았다. 평소에는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직업을 가졌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혼자 해운대에 갔을 때에는, 해운대 바다는 혼자 걷기 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간판 불빛, 북적이는 사람들, 끊임없는 파도 소리, 그런 것들이 넘실대느라 온갖 감정이 흐드러져 피어있는 이곳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오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런 생각을 난생 처음으로 멀뚱히 떠올리곤 돌아갔던 것이다.


그 다음 해쯤에, 처음으로 애인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알아야 할 게 더 많은 단계였다. 그리고 탐색과 확신, 그 어디쯤에 있는 우리 사이에 거대한 바다가 잠시 들어오는 건 아주 적합한 일이라고 나는 여겼다. 어쩌다 대화가 끊기는 사이에도 다소의 어색한 정적은 파도소리가 덮어줄 것이다.


서로의 관심사나 취미에 흥미를 보이는 척 했지만 사실 우리는 스치지도 못한 채 살아온 30여 년의 시간만큼이나 다른 점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다만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싫어하고 싶지 않은 마음 탓에 우린 조심스레 그 간극을 좁혀가는 차였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보다 급한 건 밥이었다. 부산 중앙동에 있는 40계단 거리에 내가 그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밥집이 있었다.


40계단을 한 칸씩 세며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 자그마한 간판이 세워져 있다. 또렷하게 써진 ‘파스타’ 글씨를 발견하면, 정말 계단이 40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배가 고파진다. 가게가 한눈에 보이지 않아 잠시 두리번거리면 골목 사이에 문득, 오랫동안 손때를 묻혀가며 잘 다듬은 듯 보이는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애매한 시간 탓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장님이 2층으로 우리를 안내하려다가 멈칫, 생각난 듯 물었다.


아, 2층에 고양이가 있는데, 괜찮으세요?


물론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거짓말처럼 친숙하게 들리는 대사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 가게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그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던 건 바로 ‘고양이가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부산 식당 '별나다' 2층


그런데 막상 2층에 올라가니 고양이는 없고 고양이 사진과 먹다 둔 밥그릇, 물그릇만 보인다. 주문을 하며 ‘그런데, 고양이는요?’ 물으니 이제 1층에 있단다. 가게 안에서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언제 나타날지 궁금해하며 브리또와 파스타, 라씨가 세트인 메뉴를 주문했다.


서울 사람들이 부산까지 와서 파스타라니, 싶지만 메뉴는 익숙해도 왠지 서먹한 공기가 여긴 일상을 지나쳐온 여행지라는 걸 느끼게 했다. 아니, 어쩌면 왠지 모를 긴장감은 내 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서 풍겨오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갑자기 소개팅 나온 남자처럼 반만 웃고 반은 굳은 표정으로 내 어깨너머를 쳐다봤다.


가게 1, 2층을 날렵하게 돌아다닐 거라고는 짐작하기 힘든 몸매로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낸 회색 고양이는 ‘별나다’라는 가게 이름을 목걸이로 달고 있었지만 이름은 ‘별이’라고 했다. 은근슬쩍 나타난 고양이 별이는 테이블 서너 개가 듬성듬성 채우고 있는 공간을 익숙한 듯 가로질러 걸어왔다. 그리고 우리 테이블 대각선, 빨간 방석이 놓인 의자 위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편안하게 누워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손님도 의식하지 않고 고정 자리인 듯 눕는 고양이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자리가, 원래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 그에게는 딱 적당한 거리였던 것 같다. 늘 동물을 키웠던 나와 달리 그는 고양이가 싫었다고 했다. 왠지 공격해올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라 웃어 넘겼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날 '별나다'의 고양이는 내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가볍게 긴장감을 늦춰주었다. 여행의 설렘, 낯섦, 새로움, 그런 것들 사이에 고양이에 대한 새로운 첫인상이 살짝 끼어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던 것이 나의 희망사항.


달그락거리는 포크 소리, 실내가 조용하여 덩달아 소곤거리는 우리 목소리, 그 공간에서 고양이는 우리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깨지 않고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더불어 파스타는 여러 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가 맛이 정말 풍부하고 좋았다. 가게에 대한 인상은 음식 맛 말고도 인테리어, 분위기, 메뉴 종류, 식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정해지기 마련인데, 좋아하는 도시에 좋아하는 사람과 놀러왔다는 가산점을 감안해도 내 마음속 ‘맛집’에 추가할 만했다. 낯선 사투리를 쓰는 사장님도 친절했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파스타


고양이가 있는 곳에 가는 게 꺼림칙하기는 해도 여자친구가 가보고 싶었다는 곳에 함께 가주고 싶은 다정한 남자친구였던 그는 ‘고양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끼리 친해질 수 있도록 만든 자리를 성공적으로 마친 주선자처럼 들떴다.


비록 친한 척은 없었지만, 고마워


날씨가 더운 것 같기도 하고 추운 것 같기도 한 계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손을 붙잡고 해운대 해변을 걸었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 모르는 게 많았다. 그는 내가 고양이를 왜 좋아하는지 몰랐고, 나는 그가 고양이를 왜 무서워하는지 몰랐다. 서로에게 별난 취향이었을지도 모르는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아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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