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의 부작용 ②
사람은 일부러 굶어서 다이어트도 하지만, 고양이가 입맛이 없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고양이라는 동물의 특성상 사나흘만 굶어도 지방간이 생겨 급격히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참 예민한 고양이답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이중으로 걱정할 만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안 그래도 항암치료 부작용인지 털이 빠지고 수염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급기야 제이가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프기 전에는 아침 7시만 되면 기가 막히게 알람처럼 밥 달라고 날 깨워대곤 하던 제이였는데, 이제 밥을 줘도 아무 관심 없이 스크래처 위에 꼬리를 말고 멀뚱멀뚱 누워 있을 뿐이었다.
선반에 넣어 놓았던 간식을 하나씩 하나씩 방출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고양이들은 입맛이 까다로워 제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간식을 줘도 먹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개중에는 집사가 제 입맛에 맞는 캔을 찾을 때까지 몇 개나 따서 버리는지 느긋하게 관람하는 듯 보이는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제이는 어릴 때부터 크게 간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었는데, 평소라면 99.9% 확률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먹으러 왔을 츄르나 캣만두를 꺼내줘도 제이의 반응이 없었다.
사흘 정도 지켜봐도 제이는 겨우 먹을 것 앞에서 냄새나 맡다가 한두 번 할짝거릴 뿐이고, 연이어 개봉하는 캔의 향연에 아리만 신이 났다. 두 마리가 자율급식을 하다 보니 밥이 줄어도 제이인지 아리인지 알 수 없어서 최대한 외출도 하지 않고 제이가 먹는지 안 먹는지 지켜봤다. 제이는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줘도 그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관심만 보일 뿐 이내 밥그릇 앞을 떠났다. 나는 사료와 간식을 종류별로 시도해보고, 살살 달래고 구슬려보고,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마침내 츄르를 입에 대주는데도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아 결국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도 별다를 게 없었다. 선생님이 간식을 코에 묻혀주자 코에 묻은 것만 마지못해 핥아먹었다. 식욕촉진제를 처방받아 왔고 항암치료는 당연히 중단되었다. 그날부터 바로 식욕촉진제를 먹였지만 그러고도 이틀 동안 여전히 밥을 먹지 않았다. 아예 먹기 싫은 것 같기도 했지만 먹고 싶은데 입맛이 돌지 않아 못 먹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밥을 안 먹는 원인을 알고 싶은데 아무도 그걸 알려주질 않았다. 치료 중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 예상되는 원인은 너무나 많거나 혹은 없다.
선생님과 상담 후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이미 너무 오래 굶은 것 같아 그날 밤이라도 안 좋은 소식이 날아 올까봐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아무튼 언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별 상상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날 두근두근 초조한 맘으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태연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이 녀석이 간식만 먹네요’ 하는 답변. 나는 안도했다. 간식이라도 먹는 게 어딘가, 그래도 죽지는 않으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염려했던 지방간에 대한 검사 결과도 다행히 깨끗하다고 했다.
퇴원 허락을 받고 제이를 데리러 갔다. 활발히 먹는 건 아니지만 병원에서 놔준 사료 양은 조금 줄었다고 했다. 식욕 부진으로 항암치료를 거른 덕분인지 집에 온 제이는 오히려 움직임이 늘었다. 마침 선물 받은 새 스크래처가 도착해 택배 상자를 열자 제이가 바로 그 위로 올라가 몇 번 발톱을 긁었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갑자기 밥그릇 앞으로 직행해 사료를 아작아작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기분은 아마 엄마들이 알아줄 것 같다. 다른 건 아무 것도 안 바랄 테니 밥만 잘 먹어줘도 다행이라고, 이렇게 또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항암치료는 한 주를 더 걸렀고 제이는 보통의 컨디션으로 돌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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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의 치료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