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곤 Apr 14. 2017

종양이 나쁜지 항암이 나쁜지 모를 날들

항암치료 25주차를 앞두고 

이 글은 제이의 항암치료기 중 아래 글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https://brunch.co.kr/@cats-day/30 

그간 조금 남아 있던 뒷이야기를 미루고 다른 이야기를 써왔는데, 얼마 전부터 제이에게 또 새로운 일들이 생기면서 이전 25주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배경은 작년 7월입니다. :) 

제이를 걱정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이의 식욕은 겨우 회복되나 싶었다가도, 그 다음 항암치료가 지나면 또 도돌이표처럼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왔다. 치료를 멈추면 그나마 활기가 생기는데, 치료를 받고 오면 3일에서 5일가량은 기운이 없고 식욕도 시원치 않았다. 25주차 치료가 거의 끝자락에 이르렀는데 제이의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럴까. 치료 막바지에 제이가 주사만 맞고 오면 눈에 보일 만큼 활기가 없어지니 나로서는 너무나 고민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건강이 조금 좋아졌는지 항암치료를 건너뛸 때는 정말 건강한 고양이처럼 생생하게 날아다니다가, 치료하고 오면 다시 식욕 없이 축 쳐진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이라고 생각해봤지만, 치료 후 오히려 시들시들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았다. 


힘이 넘칠 땐 늘 제이가 먼저 아리에게 시비를 걸며 싸우거나 뛰어다니기 시작하는데, 제이가 얌전하니 두 고양이가 별로 소란피울 일이 없어 집안이 몹시 조용했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외출하기 전에 봤던 바로 그 자리에 제이가 아직도 그대로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아리는 원래 골격이 큰 품종이라 그런지 제이와 아리가 있으면 확연히 덩치 차이가 났다. 나이로 치면 성장이 다 끝날 때가 됐는데 아직도 3kg대로 몸집이 작고 살이 찌지 않는 제이를 보면 안쓰러웠다. 이 작은 몸으로 항암치료를 몇 달 동안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이도 이제 몸이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디다 지친 걸까 싶었다. 


이때쯤 한 번은 입원실에 있는 제이를 데리고 퇴원하려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 한 분이 와서 제이를 직접 꺼내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입원실 쪽으로 가보니 제이가 자기를 꺼내주려고 하는 선생님들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질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제이가 사납다고 치료를 힘들어하시는 게 이해가 가는 한편, 한껏 예민해진 제이가 안쓰러웠다. 내가 다가가서 목덜미를 쓰다듬어주니 하악질을 멈추고 내 손에 안겼다. 



25주를 꼭 다 채워야 의미가 있는 건가요?


정확히 24주차 때였다. 마지막 치료를 앞두고 고민하다 병원에 물었더니 일단은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컸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25주를 깔끔하게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20주를 넘어서며 탈모, 식욕부진이나 활기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항암치료 한 번, 한 번이 치명적인 무게감으로 와 닿았던 것이다. 제이의 컨디션 때문에 25주차 치료로 넘어가지 못하고 자잘한 문제로 병원을 몇 번 오가면서도 최종적으로 결심이 서지 않았다. 제이의 등에서는 아직도 털이 벗겨지고 있었다. 제이를 위해 어떤 것이 현명한 방향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병원에서 선생님의 소견을 물어보니, 치료는 끝까지 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제이가 워낙 격렬하게 치료를 거부하는 문제도 있어 최종적으로는 보호자의 결정에 맡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뭐, 너희 고양이 키우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