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곤 Apr 15. 2017

치료가 끝난 후에 시작되는 것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치료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 적어도 1년은 걱정 없이 지내다가 1년쯤 후에 건강검진을 받아보면 되는 건가? 그리고 그때는 또 지금 같은 상황이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걸까? 치료가 끝나갈 때쯤 나는 계속 치료 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단 치료가 끝나면 경제적으로는 한숨을 돌리는 셈이었다. 결혼하면서 세웠던 지출 계획이 무너지고 나서 제이 치료가 끝나는 달을 기점으로 다시 새롭게 재정적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제 저금도 하고, 좋아하는 여행도 가자, 하면서. 빠듯한 경제적 생활을 함께해준 신랑에 대한 마음의 짐도 이제는 조금 덜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때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저 깊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쯤 병원에서 항암치료 종료 후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요즘 외국에서는 한 차례의 프로토콜이 끝난 후 간격을 3주에 한 번, 4주에 한 번, 5주에 한 번 식으로 늘려 치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는 한편으로는 무언가 잡을 지푸라기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치료가 끝나는 게 진정한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나보다 우리 집 경제생활에 더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신랑은, 내가 이에 대해 전해주자 단박에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 이제 긴 치료 일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계속해서 이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느낀다는 반응이었다. 


반복해서 겪어온 이런 상황에 대해 나도 내성이 생겨 서운함을 크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나 역시 여러가지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제이의 몸 상태도 치료 때마다 점점 버티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여 이 지푸라기 같은 동아줄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 외에도 항암치료 이후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유명한 2차 동물병원에서 일하시다 최근 개원하셨다는 병원 원장님에게 상담을 청했다. 원장님도 제이의 엑스레이는 처음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25주 프로토콜이 끝난 후 외국처럼 간격을 두고 치료를 이어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프로토콜이 끝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해 주셨다. 이쯤에서는 나도 우리의 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고, 제이의 컨디션이 워낙 좋지 않아 결국은 고민하던 마지막 25주차의 치료도 받지 않고 프로토콜을 종료하기로 했다. 


그렇게 거의 8개월에 걸친 제이의 주말 일정이 끝났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약을 먹는 생활도, 주말에 외출하려고 하면 벌써 눈치를 채고 침대 밑으로 쏜살같이 도망가는 것도(간식 선반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1초 만에 나온다), 병원에서의 하루 외박도……. 



아직도 제이의 뱃속에는 엑스레이에 보였던 그 하얀 덩어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처음보다는 확연히 크기도 작아지고 밀도도 조금 희미해져 보였다. 제이에게도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을 텐데, 치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치료를 끝마칠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무사히 치료가 끝나고 얼마 지나자 제이는 이제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회복한 평범한 고양이 같았다. 


일단 치료는 끝났지만 집에서 자주 호흡수를 체크해 보기로 했다. 고양이가 골골송도 부르지 않는 채로 편안하게 누워 있는 상태에서 배가 한 번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1회로 체크해서, 1분에 20~30회 정도가 정상이다. 호흡수가 정상일 때보다 빨라지면 병원에 가야 했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제이가 또 힘이 없어지고 병원에 데려가 듣고 싶지 않은 진단을 또 듣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걸 상상해보면 나는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 또 어찌할 바를 모를 것 같았다. 재발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막상 닥치면 또 막막해질 것이다. 고양이의 암에 대해서 어쩌면 조금도 의연해지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차례의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친 건 아직 제이가 떠날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평소처럼 아리에게 다가가 이기지도 못하면서 먼저 퍽 하고 주먹을 날리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내 얼굴에 털을 다 묻히며 어깨를 베고 자고 있거나, 화장실을 치워달라고 냥냥거리며 따라다니는 평범한 일상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매 순간 감사하고 소중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발뒤꿈치를 무는 못된 습관이 있는 고양이지만, 제이에게 나는 평생 약한 엄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양이 나쁜지 항암이 나쁜지 모를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