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를 향한 시댁 어른의 말씀
지난 추석, 시댁에는 아직 내겐 낯선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결혼 후 첫 추석이었지만, 다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라 시골집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늦은 술자리를 이어갔다. 그 사이에 새내기 며느리가 끼어 할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나도 그냥 조용히 앉아 맥주를 받아 마시며 밤하늘 별 구경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다녀온 대만 가족여행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어머니가 대만에서 본 길고양이들은 사납지도 않고 얌전하더라고 신기해하셨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키워왔던 나와 달리 동물을 무서워하는 시댁에서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 내가 신혼집에서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자 고양이는 복수하지 않느냐고, 무섭다던 시어머니는 그래도 며느리가 좋아한다고 TV에서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면 이제 멈춰서 본다고 하신다. 원래 고양이들이 사나운 게 아니라요, 우리나라에서 워낙 사람들이 괴롭히니까 경계하느라 그런 거예요, 한마디 끼어들다 보니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삼촌 한 분이 너희 고양이 키워? 되물으시기에 나는 내심 다음 나올 말을 예상하고 야무진 답변을 머릿속으로 장전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만나던 어른들마다 ‘고양이 키우지 마라’, ‘아기 낳으면 고양이는 다른 데 보내라’ 하셨던 터라 이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신혼부부가 고양이를 키우는 데에 다들 어쩜 이리 관심이 많은지.
삼촌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맥주를 한 모금 넘기시곤, 일하시는 공장에도 고양이가 있다고 말을 꺼내셨다. 그 고양이가 사람 얼굴도 다 알아보고 따르는데, 거기서 새끼를 낳아 닭가슴살 먹이며 보살폈더니 새끼들이 다시 자라 그 공장에서 벌써 몇 세대가 살았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모성애까지 가까이서 지켜보셨던 삼촌은 나와 신랑에게도 ‘고양이 기껏해야 10여 년밖에 못 살아. 버리고 그러면 안 돼’ 하고 당부하셨다.
왠지 내가 하려던 말을 뺏겼지만 어른들에게 ‘고양이 버리면 안 된다’ 잔소리를 들은 게 처음이라 괜히 웃음이 났다. 사실 고양이를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고양이를 예뻐하거나 측은하게 여겨줄 것까지도 없고, 그냥 딱 그 정도의 공존이면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먹을 것이 없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새 생명이 태어나면 바람 피할 곳을 마련해 주고… 혹은 정말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못 본 척, 해를 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댁에서의 낯선 술자리에 갑자기 익숙한 애묘인이 등장하니, 왠지 첫 명절이 썩 낯설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네, 고양이 절대 안 버릴게요. 얌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