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분만 더>
늘 곁에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는 왜 언젠가 이 시간이 끝난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어서야 더 소중해지는 걸까. 항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챙겨주던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야, 늘 집에서 나를 기다리던 강아지가 어느 날부터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해서 현관으로 나를 반기러 나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이 존재가 영원히 내 옆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깨닫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골든 리트리버는 천사견이라고 불릴 만큼 사람들에게 다정한 성격 덕분인지,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은 물론 영화나 CF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의 삶에 함께해주고 있는 견종이다. 그중에도 나는 겨울이 사르르 녹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강릉의 펜션에서 지내고 있던 한 골든 리트리버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나는 그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래되기는 했지만 꼼꼼한 손길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고, 직원들은 모두 친절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방에서 창문 밖을 보면 멀지 않은 곳에 말없는 수평선이 그어져 있다. 북적이는 서울과 멀어져 다른 도시에 조용히 불시착한 것 같은 기분, 이 낯선 침묵을 듣기 위해 여행을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물끄러미 먼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바다를 곁에 두고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이 펜션에는 나이 많은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었다. 겨울에 태어나서 계절의 이름이 붙었다는 겨울이는 다리 한 개가 없었다.
펜션에 들어서면 1층 로비에서 웰컴 티와 와플을 준비해 준다. 달콤한 냄새가 코끝에서 살랑일 때면 어김없이 겨울이는 어디에선가 타박타박 걸어와 손님을 반긴다. 그리고 소파 옆에 앉아서 하나뿐인 앞발을 무릎 위에 턱 하니 올려놓으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 방에 끝낸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그렁그렁한 눈빛을 보면 누구나 겨울이의 마음을 오해하며 와플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이 강아지는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봐! 하지만 와플을 다 먹고 나면 진실은 밝혀진다. 접시가 비워지자마자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가 버리는 겨울이의 뒷모습이 아쉽다면 저녁의 야외 바비큐를 기약할 수밖에.
내가 겨울이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10살이었다. 엄마 봄이가 펜션 지하에서 낳은 열한 마리의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바로 겨울이라고 했다. 당시 4년 전에 대로변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발목을 심하게 다쳤고, 결국 다리 하나를 통째로 절단해야 했다고 한다. 앞다리 하나는 없지만 겨울이는 씩씩하게 잘 걷고, 잘 뛴다. 인상 좋은 펜션의 실장님은 나이 먹으며 기력이 약해진 겨울이가 걱정이라고 했다. 항상 점잖고 잘 참는 성격의 겨울이가 점점 나이 먹는 것이 느껴진다고.
“제가 늙는 건 안 슬픈데, 겨울이가 늙는 건 슬퍼요.”
앞다리 하나가 없다 보니, 앉거나 걸을 때마다 다리 하나가 두 개의 역할을 해야 해서 다소 근육에도 무리가 되는 듯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관절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실장님은 겨울이의 시간을 세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 물론 몸에 안 좋겠죠, 하면서도 당장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외면할 수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랑 방식이라며 그는 웃었다. 지금 함께 있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아는 따뜻한 눈빛 때문에, 나는 소중한 것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문득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겨울이를 닮은 골든 리트리버가 나오는 영화 ‘일분만 더’는 제목처럼 곁에 있는 1분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완전’은 취재를 하러 펫숍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골든 리트리버 강아지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손을 내밀자 하이파이브를 해오는 강아지에게 리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녀는 리라를 같이 살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선물하듯 안겨준다. 남자친구 ‘하오졔’는 그녀가 늘 바빠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외로움을 덜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데려왔던 강아지가 펼쳐놓는 현실은,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한 적나라한 고충이었다. ‘이렇게 작은 강아지잖아, 말도 잘 들을 거야’라는 완전의 낙관적이었던 말과 달리 리라는 아무 데나 오줌을 누고, 집안을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식탁에 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물론 대형견이니 몇 개월만 지나면 작지도 않을 예정이다.
내내 사고를 치는 강아지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녀는 리라를 펫숍으로 다시 데려다준다. 하지만 며칠간 함께했을 뿐인 그녀를 주인으로 알아보고 쫓아오려는 리라의 모습에,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금 결심한다. 부모가 되는 법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으니, ‘우리가 함께’, 리라를 키우자고. 작고 어렸던 리라는 금방 자라서 대형견다운 면모의 몸집을 갖추게 되었고, 리라를 키우기 위해서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점차 깨닫게 된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온 가족이 함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사람의 규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이 천진난만한 아기 동물에게,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통의 규칙을 알려주고 가족들 모두가 지켜주어야 한다.
하지만 다니던 잡지사의 편집장이 되는 등 바빠진 일정 탓에 점점 남자친구와 리라에게 소홀해지는 완전. 결국 그들은 헤어지게 되고, 하오졔가 동거하던 집에서 떠나는 날 리라는 완전을 선택한다. 리라를 더 챙겨주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준 것은 오히려 하오졔인데, 처음 펫숍에서 만나 그녀의 손에 하이파이브를 했던 그 순간부터 리라는 완전을 가족으로 선택했던 것일까?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던 완전은 어느 날 리라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아지가 사람보다 빨리 늙어가듯이, 리라는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병세가 악화된다. 리라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는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 했다. 더 자주 산책하고, 정성을 담은 밥을 더 자주 만들어줬어야 했다. 천둥소리를 무서워하는 리라의 곁에 있어줬어야 했고, 리라가 하루 종일 그녀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줬어야… 갑작스럽게 이별을 예고 받은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을 것이다. 완전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리라를 돌봐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다가온 마지막 순간, 하필이면 완전이 편집장의 자리를 포기하고 짐을 정리하러 회사에 간 사이에 리라의 생명은 까무룩 꺼져가고 있다. 엄마가 지금 가고 있어, 착하지, 언제나처럼 조금만 기다려 줘… 전화기 너머로 완전의 애타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리라는 그녀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려줬다. 그리고 처음 만났던 날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하이파이브를 끝으로 리라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완전과 리라의 첫 만남과 마지막 순간에 나오는 하이파이브가 왜 이렇게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지는 모르겠다. 남자친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가쁜 시간을 살아오던 그녀에게 리라가 앞발을 맞부딪쳐 주는 순간, 둘만 알 수 있는 커다란 교감이 오갔던 것은 아닐까.
곁에 있는 것이 허락되는 시간은 앞으로 5년, 10년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남은 시간이 단 10분, 1분일 수도 있다.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허락된 이들의 1분은 눈으로 메시지를 나눌 수 있는 고맙고 귀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말없이 언제까지나 옆을 지켜줄 것 같았던 리라와의 시한부 생활 이후, 그녀는 리라와 함께 늘 집에서 기다려주던 남자친구 하오졔에 대한 소중함의 무게 역시 다시금 느끼게 된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이별의 장면이지만, 몇 번을 깨닫고 생각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가까운 이들의 고마움을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강아지와의 산책 약속을 나는 또 내일로 미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약속과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내야겠다고 오늘도 다짐을 한다. 늦은 밤 불이 꺼지고 세상이 고요해지면 들리는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되새기듯 말해본다. 너를 정말 사랑하고, 지금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가장 당연한 존재에 대한 고마움은, 어째서일까, 가장 흔하고 식상한 말로만 표현할 수 있다.
다리 하나가 없이 아빠 마음을 짠하게 하면서 늙어가고 있는 동쪽 펜션의 겨울이도, 변함없이 씩씩하게 더 많은 겨울을 맞이해주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본다.
+ 이 글은 약 2년 전에 쓴 것이라서, 이후에 겨울이는 수명을 다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행 중 두세 번 만났을 뿐이지만,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준 겨울이에게 참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