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림프종 진단을 받다
동물병원 치료비가 어느 나라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하고 또 어느 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저렴한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병원비도 고려해야 하는 영역인 것은 분명하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안 아파도 필수적으로 동물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각종 예방접종, 모기로 감염되는 심장사상충 예방(보통 매달, 혹은 일 년에 한 번 맞는 것도 있다), 그리고 중성화수술까지 마치고 나면 이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수의사 선생님 얼굴이 가물가물할 때쯤 한 번씩 들르면 된다. 하지만 특별한 문제가 생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도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처럼, 고양이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감안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또 한 가지, 경제적 능력과 별개로 '반려동물에게 쓰는 비용의 한계선'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동물병원에서도 검사나 치료를 무작정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하기 전에는 보호자의 의사를 물어본다. 고양이 CT촬영도 비용이 꽤 되기 때문에 처음 갔던 동네 병원에서도 촬영 의사가 있는지를 먼저 물어봤고, 옮긴 병원에서도 본격적인 치료를 앞두고 전 과정에 대한 설명과 상담을 진행했다. 치료를 진행할 의사가 있느냐는 말은, 병원을 오가고 고양이를 케어하는 부분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비싼 병원비에 대해 감수할 것이냐는 질문에 가깝다.
" 제이 종양의 위치는 가장 예후가 안 좋은 부위예요."
남편은 출근했고, 일 특성상 업무 시간이 자유로운 내가 혼자 병원에 간 날이었다. 고양이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 까만 화면에 엑스레이 사진 여러 장이 비춰졌지만 내가 보고 실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을 수 있는 건가요? 그게 중요했다.
병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수술도 안 되겠다고 했다. 대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이 항암치료는 25주 동안 진행하는 스케줄이며, 문제는 치료를 한다고 해도 완전히 나아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병원에서는 항상 최악의 경우까지를 설명해주기 마련이라, 항암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중간에 부작용으로 잘못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들어야 했다. 또한 치료를 끝까지 잘 받는다고 한들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치료 후에도 기대 수명은 1년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항암치료 비용은 한 회에 30-50만 원 정도….
내가 결혼한 지 딱 4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둘 다 20대라 모아놓은 돈이 있었던 게 아니라, 따로따로 모으느니 둘이 같이 살면서 모으는 게 빠르겠다고 야심차게 결혼했던 것이다. 그나마 모아놓은 돈은 결혼할 때 다 썼다. 당연히 전세금도 없고 대출도 어려워 보증금 2천을 넣고 월세 50만 원에 새싹처럼 시작했다. 남편은 빨리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싶다고 했고, 나는 저금은 많이 못 해도 지금 맛있는 거 먹고 가끔 여행갈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은 건 아니라도 당장 커피 한 잔 못 사서 불편한 게 아니면 괜찮다고… 한가로운 마인드로 지내고 있었는데, 무슨 팔자 좋은 소리냐는 듯 현실 앞으로 질질 끌려온 것이다.
"항암 치료를 만약 시작하실 거라면…"
수의사 선생님이 바로 예약 스케줄을 잡지 않고, 치료를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설령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보호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도 느껴졌다. 당장 애가 호흡도 빠르고 잘 움직이지도 않고 식빵만 굽고 있는데(네 발을 다 몸통 아래 숨기고 엎드려 있는 것을 고양이 식빵자세라고 한다)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비용이 얼마라고요’ 물어보고 나니 또 왈칵 마음이 심란했다.
"선생님, 근데… 치료 안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25주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치료를 시작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한 확인 사살을 받고서, 머릿속으로 통장 잔액과 월급 액수 등을 헤아려보고서, 아까 들은 병원비에 25회를 언뜻 곱해보고서,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말을 꺼내고 병원을 나섰다. 치료 시작할 건데, 일단 시작은 할 건데요… 끝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꾸역꾸역 말을 끄집어내는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괜찮다고 했다. 치료를 마치지 못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는 없다는 위로였다. 상담을 마치고 병원에서 나오자 시간이 늦어 깜깜하고, 차들이 쌩쌩 달리고, 문득 더 커다란 세상 속에서 제이는 너무 작고 약한 생명이었다.
병원비에 고민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 같았다. 아니면 나쁜 사람이거나. 나 역시, 여태껏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거나 때로는 포기했던 이들을 향해 진심으로 건넸던 위로가 있었다. 그 모든 게 따끔따끔하게 떠올랐다. 누군가 날 비난하기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단지 내가 견딜 수 없는 것뿐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퇴근한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 상담해야 하는데, 남편은 뭐라고 할까? 흔쾌히 치료를 찬성해줄까? 아니면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할까?
반려동물에게 쓸 수 있는 치료비의 기준이라는 건 어찌 보면 각자의 경제적 여건 그리고 가치관에 달린 매우 주관적인 문제다. 그의 생각이 나와 완전히 같지 않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는 없는데… 버스 안에서 바람 맞은 여자처럼 눈이 빨개진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