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중요한 일을 다른 사람과 의논하는 습관은 없었다. 사춘기 시절에도 나름대로 무겁게 느껴지는 고민들을 가능한 혼자 담아두었고, 고3 때 대학교 1지망을 정하는 일도 가족과 의논하지 않았고, 남자친구와 싸우고 나서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무거운 문제를 누군가와 의논하고 나누는 일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내 결정이 흐려지고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이 싫었고, 또 힘든 일을 표면으로 꺼내면 정말 하나의 심각한 명제가 되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차피 이건 내가 견뎌야 한다, 누군가와 진짜로 나눌 수는 없으니 호들갑떨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은 달랐다. 혼자서만 방향을 정하며 살아가던 것을 그만두고 앞으로는 둘이서 손을 잡고 하나의 길을 걸어가기로 약속하는 것이 결혼이었다. 그 와중에도 각자의 꿈, 각자의 방식, 각자의 삶은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함께’ 한다는 대명제를 인정하기로 약속한 거였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키우기로 결정한 반려동물, 고양이 제이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제이가 림프종 선고를 받고 만만치 않은 병원비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혼자 키우는 고양이였다면 기꺼이 다른 여러 가지를 포기했을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건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아주 익숙한 삶의 방식이었다. 맛있는 걸 덜 먹고, 여행을 안 가고, 저금을 과감하게 그만두었을 것이다. 당장 큰돈을 모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내 가치관에서는 제이가 첫 번째 우선순위였으니까.
하지만 몇 달 전 결혼을 해서 달라진 점 중의 하나가 바로 경제적인 부분을 합쳤다는 것이었다. 같이 사는 집의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보험료, 휴대폰 요금, 교통비 등 꼭 써야 하는 고정 지출 부분이 있었고, 나름대로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결정했던 생활비나 저금 계획도 있었다. 그 모든 걸 뒤로 미루거나 변경하고 병원비를 첫 번째 우선순위로 두는 것에 대해서, 남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실은, 그렇게 한다고 한들 우리 경제력으로 가능한 선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는 지금의 상황이 제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물론, 돈을 어떻게 생명의 가치에 비할까.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외면해도 어느새 또 눈앞에 있었다. 내가 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말인 것 같아서, 우리가 상황이 힘들어도 제이가 우선 아니겠냐고 신랑이 단호하게 말해줬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 설령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언젠가 한계가 보일지라도 당장은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 내 마음에 공감하고, 내가 하고 싶은 노력에 당연히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가 되어주었으면 했다.
"제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그렇게 말해주면 안 돼? 너한테는 제이가 안 소중해?"
그에게도 제이는 생전 처음으로 친해진 고양이였다. 하지만 불과 2,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반려동물이 있는 삶을 겪어보지 않은 그는 아직, 동물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을 흔쾌히 이해하지 못했다. 또 만약 완치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몰라도, 25주차 치료를 다 끝내도 기대 수명이 1, 2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나는 그때 이성이고 뭐고, 그런 방식으로는 계산할 수 없었다. 천 만원에 한 달을 더 산다고 해도 나에게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돈이 엄청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윤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며칠 내내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가끔은 입씨름을 하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밤을 보냈다. 선뜻 대답해주지 못하는 신랑의 망설임에 내 죄책감을 털어내듯 나는 더 날카롭게 그를 질책했다. 그가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고, 또 제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현실적인 수치를 꺼낸다는 이유만으로 자꾸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 어떨 땐 미안해서 더 많이 울었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그에게 내 방식을 강요하는 듯한 죄책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의 양심을 찌르고 망설임을 탓했다.
내 마음이 힘든 만큼 그도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다. 계획적인 사람이라 종종 10년 뒤, 20년 뒤의 일까지 설계해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곤 했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의 월급에 가까운 돈을 매달 지출해야 하니 계획과 달라지게 된 것은 물론, 모든 게 큰 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결혼 후 공동 비용을 지출하는 것에 대해, 결국은 두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음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조금씩 양보해 타협을 해야 하는데, 경제적인 부분에서 때로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양보가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든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해에 기반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비싼 치료비에 대해서 이해하진 못해도, 나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결국 이해해줬다(아마도). 물론 무엇보다 제이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이 긴 항암치료를 해나가기로 결정했다. 이후 매달 통장에 1000원도 남지 않는 빽빽한 생활이었지만, 아직 어린 제이에게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믿기로 했다.
다음 메인의 힘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이의 항암치료기, 위 글의 시대적 배경(?)은 올해 1월입니다.
그때는 뭘 적고 기록할 정신도 없었지만, 지금은 치료를 시작할 즈음을 되새겨볼 수도 있게 되었어요.
제이는 여전히 저희의 노력뿐 아니라 희망과 응원과 기적을 필요로 하는 중입니다.
림프종 등 반려동물의 심각한 질병으로 광활한 인터넷을 헤매이고 계실 저 같은 분들이 가능한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정보 혹은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으면 합니다.
돌이켜보는 동안 저 역시 마음이 무거워, 가끔 밝고 즐거운 이야기도 남길게요 :)
현재는 두 마리 고양이와 잘 지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