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소녀가 이웃집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법

- 소설 <작은 아씨들>

by 소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층간소음 문제가 아니고서야 이웃과의 접촉이 사라진 지는 사실 꽤 된 것 같다. 회사 사람들이나 거래처 인맥 관계를 머리에 넣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 ‘적절하고 무난한 인맥의 유지’ 카테고리는 꽉 찬 포화 상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점점 부담스러운 일이 되는 것 같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처음 만나는 사람과 태연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것이 나의 일이었는데도, 꽤 낯을 가리는 편이라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제법 스트레스였던 적도 많았다.


물론 ‘작은 아씨들’의 셋째 아가씨 베스처럼 모르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줄행랑을 쳐 버릴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긴장감이 곤두서는 나로서는 대화의 물꼬를 터줄 만한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과 꽤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대개 그들과 내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였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아는 사람이 많아지니 주변의 좋은 사람도 늘어나는 것이 정상일 터인데, 어째서 우리의 삶은 점점 친구를 뱉어내기만 하는 걸까. 심지어 있는 인간관계도 귀찮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기약 없이 미뤄버릴 때도 많아졌다. 휴대폰은 울리지 않고 조용히 있을 때가 가장 예뻤다. 스마트한 지배의 손길을 채 눈치채지 못하고 순진하게 깔았던 톡 어플과 함께 줄자처럼 늘어나는 업무 시간의 연장. 그 탓에 퇴근 후 친구들과 신나게 아무나 욕하며 술을 마실 때도,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다 잠들기 직전에도 업무 톡이나 메일이 온다. 혹은 친하지도 않은 선후배의 보험 권유 혹은 청첩장 전송. 뭐 그런 것들. 이쯤 되면 아무리 휴대폰이 스마트해도 귀찮아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가끔은 휴대폰을 꺼버리고 해외로, 아니 국내의 어디 이름 없는 계곡으로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앓아봤을 충동병이 아닐까.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언제 올지 모르는 '갑'의 전화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을 때도, TV를 틀어놓고 뒹굴거리는 주말 저녁 시간에도 휴대폰이 울린다. 휴대폰을 꺼버리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은 순간이 종종 오지만, 꾹 참고 상냥한 이모티콘과 함께 칼답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 일에 치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과의 연락이나 만남도 뒷전이 되었다. 그러니 이웃의 정 같은 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단어인 것 같다. 그것도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 이후로는 언제 봤는지 가물가물하다.


하기야 이웃을 운운하기도 애매한 게, 낯선 사람과는 이야기하지도 말라고 이제는 배운다. 출퇴근하는 시간에만 잠깐 지나치는 동네 길목에서 만난 사람과 인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사람이 제일 무섭기도 하고.


얼마 전에 우리 집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피부가 살짝 까무잡잡하게 탄 여자아이가 2초 정도 나를 올려다보더니 ‘안녕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쓰레기봉투를 손에 들고 있는 나에게 ‘쓰레기 버리러 가는 거예요?’ 하는 붙임성까지. 나도 기자로서의 경험을 살려서(?) 자연스럽게 ‘넌 어디 가니?’ 했더니 씽씽이 타러 간단다.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받는 것이 생소한 경험이라 나는 다소 당황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아이의 인사성이 흐뭇하기도 하고, 또 괜한 오지랖이 발동되어 ‘낯선 사람이랑 말하지 말라고 안 배웠니?’ 걱정스럽기도 한 마음이 빼꼼 생겨났다.


물론 안 그래도 외로운 세상을 혼자 살고 싶은 건 아니다.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한편으로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대체로 피곤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나이를 먹을수록 확고해져서, 빈말로 오가는 많은 만남의 약속들을 이제 빈말로도 좀처럼 하지 않게 되었다. 일로 만난 사람과 개인적인 교류를 하다 보면 언젠가 분명히 난처해질 거라는 엄포를 스스로에게 놓기도 했다. 어릴 때는 나도 엘리베이터 소녀처럼 매년 새로운 반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친구가 늘어가는 것이 즐거운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을 만나서 잘 웃지 않게 되었다. 신이 나를 만들 때 ‘다정함’ 병의 뚜껑을 잘못 닫아서 나이가 들수록 줄줄 새서 없어지게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무척 쉽게 마음이 무장 해제될 때가 있는데, 동물들이 곁에 있을 때다. 반려동물이 곁에 있으면 그 낯선 이가 한결 친근해진다. 공원이나 카페에서 동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모를 동지애 같은 것이 샘솟아 내가 말을 걸면 당연히 저 사람도 나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줄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과 용기가 생기곤 하는 것이다. 시대불문하고 동물들은 전언 한 마디 없어도 훌륭한 매신저가 되어주는 것 같다.




작은 아씨들의 시대는 아마 지금과는 꽤 다르다. 이 작은 네 자매의 어머니는 이웃과는 친하게 지내고 어려울 때는 도움을 주도록 가르쳤을 것이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네 자매는 각각 성격은 다르지만 서로를 의지해주거나 혹은 의지하는 법을 아는 소녀들로 자랐다. 첫째 언니 메그는 여성스러운 성격으로 엄마가 안 계실 때 동생들에게 엄마 역할을 해주고, 여성스러움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아볼 수 없는 둘째 조는 털털하면서도 사교적인 성격으로 까다로운 고모님의 시중을 참을성 있게 들어준다. 셋째는 수줍고 얌전한 베스, 막내는 다소 허영심이 있지만 야무지게 장래에 대한 꿈을 꾸는 에이미다.


어릴 때, 공주님이 주인공인 디즈니 동화를 떼고 어린이 세계명작으로 넘어오면서 작은 아씨들의 베스가 마음에 쏙 들었던 건 그녀가 얌전하고 소녀다운 공주님의 이미지와 제일 가까웠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네 자매 중 셋째라는 동화적인 서열의(!) 베스는 조용히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로, 낯선 사람 앞에서는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언니들이 버린 인형이나 약한 동물, 고양이를 돌봐주는 상냥함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심하게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온 가족이 다 친해진 이웃집 소년 로리와 인사하는 데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내성적인 베스 대신 그녀의 고양이가 로리와의 메신저 역할을 해주었다. 형제가 아무도 없어 늘 집에서 혼자 지내던 외로운 소년 로리도 베스의 도망친 고양이를 잡아다 주며, 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웃집 소녀들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로리와는 그럭저럭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베스는 여전히 무서운 포스를 풍기는 로리의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도망치기 일쑤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왠지 혼날 것 같고. 하지만 무섭게만 느껴졌던 이웃집 할아버지는 베스가 마음대로 자신의 집에 있는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슬쩍 자리를 피해주더니, 어느 날은 아예 피아노를 마치 집안에 선물로 보내버린다. 물론 받는 사람 이름은 베스로 되어 있다. 베스는 앞뒤 생각할 것 없이 로리의 집으로 달려가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고양이처럼 조용히 인형과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기던 소녀 베스도, 진심 어린 사랑을 느끼면 그 또래답게 솔직하게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아는 소녀다. 베스네 자매는 로리와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풀어주고, 로리와 할아버지는 이 자매가 곤경에 처할 때 주저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준다.


낡은 피아노를 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던 베스는 그러고 보면 예술가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예민하고 섬세한 면이 베스가 돌봐주고 있던 고양이와도 잘 맞았을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상대방에게 위로를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베스는 로리의 병문안을 가는 조 편에 고양이를 보내기도 한다.


동물이 어색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매신저가 되어줄 때는 왕왕 있다. 실제로 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에게 여자들이 더 쉽게 말을 걸고 번호를 줬다는(?) 몰래카메라도 있었다. 여전히 현대인들 사이에서 이웃 간의 정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따뜻한 마음의 교류가 필요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제일 어려우면서도 사람이 가장 필요한 시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안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에너지를 다 쓰고 방전되어 무너졌을 때에는, 뜻밖의 사람이 보내온 다정한 말 한 마디가 의외로 나를 충전시켜줄 때도 있다. 비록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딱 들어맞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만 곁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만큼 귀하다. 드물게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을 때, 가끔은 집으로 초대해 내 고양이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