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내 새끼인데요
삼시세끼의 ‘쿵이’, ‘몽이’ 집사 윤균상이 자신의 SNS에 ‘몽이는 괜찮다’는 취지의 해명글을 올렸다. 삼시세끼에서 개구호흡하는 몽이를 보며 나도 ‘아이고, 어지간히 더운가 보다’ 하고 잠깐 생각했는데, 그게 아픈 고양이 방치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몽이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고 이상이 없습니다, 아무렴 제 새끼인데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데요'라는 그의 해명글이 아니더라도, 그가 두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 집사인지는 방송에서도 한눈에 보인다.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고양이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고양이는 불편한 사람에게 억지로 친한 척하는 사교성이라는 게 없는 동물이다. 평소 집사와 신뢰가 쌓여 있으니 섬이라는 낯선 공간에서의 촬영까지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게 윤균상이 꼭 해명까지 해서 몽이를 방치한 적 없다고 설명해야 할 일이었을까?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속담까지 있는 걸 보면 옛 조상들 중에도 오지랖 넓은 이들은 심심찮게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고양이 사진이나 영상을 다양하게 즐기게 된 건 반길 일이지만, 고양이로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사진에서까지 ‘저거 동물 학대 아닌가요?’ 하는 불편한 댓글을 발견할 때가 자주 있다. 그 사람은 과연 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오죽 불쾌했으면 2년 전 일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생각난다.
제 고양이 불쌍하지 않아요
내가 아리를 입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리는 대학가에 유기된 고양이였다. 품종묘라 유난히 눈에 띄는 길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그 동네 캣맘이 다시 집고양이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입양 글을 올렸던 것이다. 그걸 나와 신랑이 보고 아리를 입양하기로 했다. 둘째를 입양할 마음은 있었지만 아리를 만난 건 정말 묘연이었다. 아기 고양이도 아니고 다 큰 성묘였던 아리를 보고 우리 부부는 둘 다 마음을 빼앗겼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걸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지만, 아리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나타난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리도 우리 집에 금방 적응해 돌아다니더니, 며칠 만에 거실 가운데서 발라당 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아리가 사료를 먹다가 물그릇에 사료 한 알을 빠뜨린 모양이었다. 코숏 아기 고양이 제이보다 훨씬 큰 앞발을 물에 넣고 휘휘 저으며 그 사료를 꺼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그걸 SNS 계정에 올렸는데,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 애가 너무 말랐네요. 얼마나 배고프면 사료 한 알에 집착하는 게 안쓰럽네요.
그 댓글은 악플과는 달랐다. 동물 입장에서 쓴 글처럼 보이지만, 악의적이거나 공격적인 댓글보다 나로서는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빴다.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고양이를 ‘밥도 못 얻어먹는 불쌍한 고양이’ 취급하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아리는 지금도 내가 물 먹다 남긴 컵이나 얼음을 띄워둔 물그릇에 앞발을 자주 집어넣어 물을 찍어먹는다. 신랑이 우리 집은 사람보다 고양이 중심이라고 할 정도로 아끼는 아이들인데, 설마 집에서 키우는 애를 굶기기라도 한다는 건가……. 물론 그 사람은 그저 측은지심에,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긴 댓글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뒤 사정도 모르고 남의 귀한 고양이에게 하는 말 치고는 너무 성급한 오지랖이 아니었을까?
요즘 젊은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상상 이상으로 많은 훈수를 듣는다고 한다. ‘옷을 그렇게 입히면 춥다’, ‘우리 땐 아무 거나 다 먹였는데 이것 좀 먹으면 어떠냐’, 심지어 ‘모유 수유는 하고 있느냐’까지……. 어느 정도는 관심이고 애정이지만, 선을 넘으면 지나친 오지랖일 뿐이다. 예전에는 이웃 간에 공동 육아를 하다시피 했다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검색 한 번만 해도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삶의 형태도 다양해지다 보니 아기마다 상황이 다르고 엄마마다 가치관이 다를 것이다. 이제는 각자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게 오히려 그들에 대한 애정 표현이다. 그들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행동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일이 자주 있다. 처음 간 해외여행에서 딱 한 번 만난 외국인이 친절했다면 '그 나라는 우리나라랑 달리 낯선 사람한테도 참 친절하더라'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경험은 그 영역의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보다 자신이 (이미 겪어봤기에) 더 잘 알고 있다는 무의식에서 오지랖이 발휘된다. 하지만 겨우 잠깐 스친 것만으로 '진짜 보기에 걱정돼서', '애정을 기반으로' 했다고 하기엔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물론 정말로 학대받는 동물이나 아이를 봤을 때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너무 섣불리 학대라고 단정 짓는 것도 곤란하다. 고양이를 키우는 데 기본적인 매뉴얼이야 있지만, 고양이도 사람처럼 모두 성격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내 고양이가 무엇에 스트레스 받는지, 또 어떤 장난을 즐거워하는지 가장 잘 알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누구보다 그 보호자다. 그리고 그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학대', '방치'라는 표현은 조심스럽게 꺼내는 사려 깊은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선의에서 건넨 말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