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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ug 27. 2017

집안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고정관념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루는 남편이 냉장고를 열고 훑어보더니 물었다.


“이 김치 버려야 되는 거 아니야?”

“응? 글쎄…….”


김치는 웬만하면 오래 둬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남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좀 예민했는지 몰라도, ‘그것도 몰라?’ 혹은 ‘이렇게 방치되도록 여태 뭐했어?’라는 의미가 명백하게 느껴지는 한숨이었다.


우리 집에서 같이 먹는 요리는 보통 내가 하지만, 남편만 혼자 아침을 차려 먹기 때문에 냉장고를 여는 횟수는 비등비등하다. 시댁이 가깝다 보니 친정보다는 시댁에서 받아온 반찬도 많다.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는 요리를 설계하는 내 관할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모든 반찬의 사정을 다 살피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냉장고 관리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저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서로 냉장고 사정을 꼼꼼히 살피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날 남편의 반응을 보니, 남편의 머릿속에서 냉장고 속 반찬 관리는 은연중에 내 담당으로 지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남편은 냉장고 안에서 문제를 발견했을 때 내게 제시하거나(이거 상한 것 같지 않아?) 해결하는 입장(이거 상했으니 버릴게)이 아니라, 나를 ‘지적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역할을 부여해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에, 제대로 못 챙긴 것이 미안하기보다 의아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가 반찬 몇 가지를 챙겨주실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남편에게 더 익숙할 시댁 음식과 재료를 내게 설명해 주시는 동안 남편은 거실에 앉아 있거나 어디로 사라져 있을 때가 많았다. 평소에는 옆에서 내 입장도 거들어주고, 낯선 일도 도와주는 편인데, 부엌일에 관련해서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역할이라 여겼던 것이 아닐까?


그 점을 들어 남편에게 말하자, 그는 무심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는 걸 인정하며 앞으로는 주의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남편 입장에서는 억울할 게, 집안일은 그가 나에 비해 더 하면 했지 덜 하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그 점에 있어서 서로를 고맙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설사 '냉장고는 아내 담당'이라고 정해놨더라도 서로의 부족함을 '비난'하게 되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직장에서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는 서로 지켜볼 수 없지만, 집안일은 부부가 '공동'으로 겪는 것이라 더 눈에 띄고 지적하기도 쉽다. 하지만 ‘이건 (암묵적으로) 당연히 네 일인데 왜 안 해?’라고 말하는 순간, 내 일이 많은지 네 일이 힘든지 재고 따질 수밖에 없게 된다.





내 친구는 얼마 전 아기를 낳았는데 밤새도록 2시간 이상을 연이어 잘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 품에서는 아기가 좀처럼 자려고 하지 않고 버텨서, 남편이 퇴근하고 온 밤에도 아기를 재우는 것은 엄마 몫이 됐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과 통화하던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휴대폰 저편에서 들리더란다.


- 요즘 애기 보느라 힘들겠구나.

“와이프가 고생하고 있지.”

- 걔가 집에서 뭐가 힘드니? 일하는 네가 힘들지.


친구는 ‘일’과 ‘육아’ 중에서 ‘육아’가 더 편할 것 같아서 그쪽을 ‘선택’했을까? 물론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아내가 아기를 낳아야 하고, 얼마간 모유라도 먹이려면 집에서 육아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육아는 정말 직장보다 편할까? 옛 어른들은 집안일이라는 것이 일상의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노동의 가치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노동의 영역을 ‘수익이 생기는 것’에 한정했기 때문에 집안일의 가치는 자연히 폄하했다.


‘운전 못 하면 집에 가서 밥이나 해(혹은 애나 봐)!’라는 말이 화가 나는 건, 밥 하는 것이 여자의 일이라는 전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면 밥 하는 일을 가치 없는 것으로 낮춰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집안일은 여자의 일이며, 그 일은 ‘가치 없는 것, 힘이 안 드는 것, 아무나 하면 되는 것, 당연히 바깥일과는 동등해질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대신 힘쓰는 일은 남자가 하잖아'와 맥락을 같이 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구를 갈아끼고, 못을 박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폄하되지 않는다. '너는 집에 가서 전구나 갈아!'라고 얕잡아 보는 일로는 대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못 박는 남자의 팔뚝은 섹시하게 묘사될 때도 있다. 물론 경우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느껴온 보편적인 사례를 들어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기가 없어서 그 흐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집에서 놀면 편할 것 같아서’ 육아를 선택하는 엄마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가 당연히 애야 하는 일이며, 당연히 직장 일보다 쉽고, 수익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생색도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만약 우리 부부가 아기를 갖는다면 어쨌든 출산을 해야 하는 나는 일시적이라도 경력 단절이 생기고, 일정 기간 일보다는 육아에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남편 쪽에서 ‘너는 집에서 애 보니 좋겠다’고 한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 직장에서 돈 버는 일의 어려움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적어도 부부 사이에 적용되는 말은 아니어야 한다.




시어머니와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스갯소리처럼 이런 말이 지나갔다.


“이웃 할머니는 나보고 아들이랑 며느리한테 똑같이 잘해줄 것 같다고, 며느리한테 그렇게 잘해주면 안된다고 하시더라.”

“네? 하하…….”


요즘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계세요? 하고 고개를 저으며 넘어갔지만 그날은 그 이야기가 목에 걸린 것처럼 남아 있었다. 주위 어르신이 하신 말을 굳이 내게 전하는 시어머니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해도, 요즘 시대에 많이 변하고 있다는 고부관계가 여전히 낡은 사고방식에 뒷덜미를 붙잡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며느리라는 이유로 하대하는 시절은 끝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시어머니들도 어쩌면 ‘원래 며느리는 더 편하게 대해도 되는 대상인데, 난 며느리에게 이렇게 너그럽게 대하니 좋은 시댁이다'라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여전히 ‘아들은 하늘, 며느리는 내조의 여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들도 많지만.  


여자, 엄마, 며느리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뿌리 깊게 심어져 있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폐부로 느낀다. 나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죄송하지만, 자식을 위한 엄마의 희생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이며 자랐으니까. 고부관계뿐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심지어 '아내'나 '며느리', '엄마'로서 스스로에게 씌우는 프레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 불편함을 표하니 의외로 '어른들 생각을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시댁에서 남편 체면 세워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불평등한 부부의 지위가 언제까지고 바뀌지 않는다. 서로를 위해 조금씩 희생하고, 양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무게와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적어도 당연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직장인이든 전업주부든, 힘들지만 애써서 해내는 일이라는 것을 서로가 인정하고, 적어도 그 수고와 성의를 고맙게 여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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