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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Nov 20. 2017

나는 결혼과 자유를 맞바꾸지 않았다

사회가 원하는 아내, 며느리가 되기를 거부하며

“결혼하니까 좋아? 남편이 속 썩이지는 않아?”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한 친구가 불쑥 물었다. 그 질문에 포함된 부정적인 뉘앙스를 읽은 나는 조금 당황했다. 요즘은 비혼이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이미 사랑을 기반으로 결혼한 부부에게도 어쩐지 그 결혼이 평탄하지 못하리라는 안쓰러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해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속 썩이지 않아?’, ‘시댁에서는 잘 해주셔?’, ‘이번 명절에 안 힘들었어?’ 같은 질문은 우리가 여태까지 봐온 결혼 생활에 대한 정보가 기반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결혼 후 많은 가정에서 맞벌이를 해도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 된다는 걸, 시댁에게 또렷이 기울어진 양가 불평등에 대해 남편에게 말해도 잘 이해받지 못한다는 걸 ‘요즘 애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그런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그런 책과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결혼하면 좋아?’라는 질문은 ‘연애하니까, 취업하니까 좋아?’ 같은 질문이랑은 조금 다른 의미를 품고 있을 때가 많다. 그 의도와는 별개로, 대부분 결혼 생활의 순수한 장점보다는 결혼의 불편에 대한 화두로 이어진다. 언제부터 결혼이 남편이 속 썩이고 시어머니가 구박하는, 불쌍해 보이는 일이 됐을까. 더 행복해지려고 결혼하는데, 왜 때로는 오히려 동정의 시선을 받게 됐을까.


결혼하니까 좋은 점은 분명히 있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분명히 더 행복해졌고, 평생 사소한 일까지 조잘거릴 수 있는 완벽한 내 편이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많은 부부들이 각자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선뜻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심하게는 ‘결혼해서 좋다’는 말이 마치 은연중에 사회 금기를 깨뜨리는 느낌마저 든다.


다들 겪고 있는 공통의 고통에서 나만 빠져나와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왠지 나 역시 그게 마찬가지로 힘들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들이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를 깨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충족시켜주고 결혼을 할 만한 게 못 된다는 그들의 생각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역할인 것 같은 묘한 기분이 종종 들기도 했다.


결혼 후에 달라지는 것들


결혼에 대한 인식이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고, 비혼이 늘어나는 동시에 출산율이 낮아지는 원인을 황당하게도 ‘고스펙 여성’에게서 찾았던 국책 연구원이 비판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층 취득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고지하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하게 만들자는 게 요지였다. 물론 황당한 얘기다. 공부하지 말고 결혼을 하라고 떠민다든가, 출산 연령대의 여성 분포도를 만들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한숨 한 번 쉬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 아기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이유를 살펴봐야 할 것이 아닌가.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이유 대부분이 결혼 후 달라지는 성 역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마 ‘여성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안을 돌봐야 하고, 시댁에 잘해야 하고, 아기를 낳으면 주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때 많은 남편들이 여성의 일을 옆에서 ‘돕는’ 역할을 맡는다. 요즘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나면 좋은 아내, 며느리, 엄마의 역할을 각각 수행하길 요구받는 동시에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슈퍼우먼이 되지 않는 이상 ‘모성애 부족’, ‘가정적이지 않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요즘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다, 페미니즘이니 뭐니 남자를 귀찮게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결혼 후 남성에게도 당연히 변화는 생긴다. 특히 많은 남성들이 앞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경제적인 무게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의 변화는 여성의 것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남성은 사회적인 커리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여성은 커리어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역할 변화가 요구될 때가 많다. 그 방향이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문제는 이 와중에 가정에서 ‘돈을 버는 것’을 역할의 우위에 두고 ‘가정을 돌보는 것’은 얕보는 경우다. 우리는 남녀 성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논의해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역할 배분을 해야 하며, 그중 하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서로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한 사람이 무엇을 100프로 포기하거나 희생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삶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남편이 개인의 즐거움을 포기하거나 나의 미래를 책임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에게 덜 힘든 일을, 그리고 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내 삶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프레임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결혼은 물론 삶의 큰 터닝 포인트이자 중대한 사건인 것은 사실이다. 이제 우리 부부는 개인의 판단만으로 보증을 서거나, 혼자서 명절 휴가 일정을 정할 수는 없다.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나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 공동체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유로운 일상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오히려 결혼 후 주변에서 친구 관계나 삶의 형태에 대한 경계선을 긋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혼하면 자주 못 보겠네’, ‘결혼 전에 많이 여행 가자’, '남편은 허락했어?' 같은 말이 어쩌면 결혼 후 삶의 형태가 달라져야 한다는 프레임을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는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나고, 외박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내 시간에 대해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즉 자유가 사라진다는 것을 결혼 전에 모두가 은연중에 못박아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혼 후의 삶이 남편 저녁을 차려줘야 하기 때문에 저녁 약속을 잡지 못하고 일찍 들어가야 하거나, 주말에는 시댁을 가야 하니 친구들을 만날 수 없거나, 결혼한 유부녀가 남편 없이 감히 외박을 꿈꾸거나 여행도 갈 수 없는, 그런 모습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는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고, 약속이 있는 날은 각자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각자의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당연히 부부로서 그리고 동거인으로서 상식적인 예의는 지켜야겠지만, 결혼식 이후로 갑자기 서로의 자유를 까다롭게 구속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결혼이라는 관습 속에서 우리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 후 한 집에서 살게 된 남편과 웬만하면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아니면 각자의 저녁 시간을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존중할 것인지, 그건 부부의 성향마다 맞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된다. ‘결혼하면 아기를 낳아야’ 하고, ‘시부모님을 잘 모셔야’ 하고, ‘남편을 내조해야’ 하며, ‘유부녀가 외박이 웬 말’이냐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우리가 힘겹게 맞춰야 할 필요는 없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나는 그가 ‘가장으로서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길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삶의 형태는 이렇게 다양해지고 있는데, 결혼 후 일관된 변화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혼에 대한 불편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납득한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에서 부여한 결혼에 따른 의무를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다 지키면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남편이나 시댁에 대한 의무, 그리고 그로 인한 자유의 박탈 등은 요즘 세대에서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것 같다. 심지어 사회는 나에게 '그게 싫으면 결혼은 왜 했느냐'고 되묻는다. 내가 결혼을 한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결혼과 패키지로 따라온 불편과 불평등을 평생 감수하고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혼뿐 아니라 삶의 모든 크고 작은 변화에 대처하는 보편적인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린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 각자의 방법대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제로 한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리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나는 결혼과 자유를 맞바꾸지 않았다. 그게 때로는 사회의 통념과 맞지 않고, 불성실한 아내처럼 보이는 일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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