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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Nov 13. 2017

민망한 호칭 탓에 우린 더 멀어진다

아가씨와 도련님이 내 동생이 될 수 있을까? 

남편의 여동생, 즉 나에게는 ‘아가씨’가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를 데려와 다 같이 식사를 했다. 남편의 가족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게 나도 아직은 서먹한데, 그 안에 또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니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결혼할 배우자의 부모님 앞에서 잘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넌지시 짐작되어 처음 인사 왔을 때의 내 모습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다들 처음엔 어색한 표정이 감돌았지만 술도 몇 잔 마시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금방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다 내가 무심코 남편에게 “그런데, 여동생의 남편은 내가 뭐라고 불러야 되지?”라고 묻자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험 공부할 때 분명히 이것저것 외웠던 것 같은데, 결혼하기 전까지는 쓸 데가 없어서 다 잊어버렸다. 몇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시부모님도 헷갈리는 기색이었다. 하기야, 내가 아가씨 남편을 부를 일이 딱히 뭐가 있을까? 결국 내가 농담 삼아 말했다.


“아무래도 ‘저기요’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자 시아버지가 웃으면서도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질색을 하셨다. 결국 휴대폰으로 찾아보니 ‘서방님’이었다. 그거 참…… 기분 묘한 호칭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를 부를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참고로 '서방님'이 나를 부를 때는 '아주머니'다.) 


'아가씨'를 부를 수 없는 이유


결혼 후 남편의 여동생을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 부르는 호칭은 ‘아가씨’인데 입 밖으로 뱉으면 어쩐지 알레르기가 돋을 것 같았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들은 ‘아가씨’는 아저씨들이 내 또래 여자들을 부를 때, 아니면 사극에서 종이 주인집 딸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아가씨'를 일부러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네 살이 어린 남편의 여동생. 똑 부러지고 야무진 성격이라 언니로서 보기에 예쁜 것은 물론이고, 시댁에서 내 대신 ‘요즘 세대’를 대변하며 말해줄 때가 많아서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서로 몇 번 얼굴 본 적이 없으니 서먹하긴 하지만, 가끔 만날 땐 언니인 내가 내 남동생 챙기듯 친근하게 말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통 입이 안 떨어져서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존댓말도 써야 한단다. 그냥 '대리님', '사장님' 부르듯 큰 의미를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부르면 되는데 내가 좀 유난스러운 걸까? 하지만 최근 가족을 부르는 호칭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호칭에 불편을 느낀 건 역시, 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댁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이 어쩐지 껄끄럽고 썩 내키지 않는 이유는 그 언어 안에 답이 있다. ‘아가씨’, ‘도련님’ 등이 사실은 남존여비사상의 잔재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친정에서 출가외인이 되어 시댁으로 들어오고, 그 안에서 기존의 시댁 식구들을 높여 부르던 호칭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댁은 '~댁'이라고 높여 부르고 처갓집은 '~가(家)'로 부르는 것이나, 남편이 아내의 동생을 부를 때는 존칭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까지 비교해서 짚고 넘어갈 것도 없다. 


얼마 전 외국인들이 토론하는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한국에서 상사에게 무언가 제안할 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합시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라는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는 아랫사람이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고, 윗사람에게 결정권을 넘겨줘야 예의 있게 여겨지는 언어다. 언어가 우리의 행동 방식을 결정 짓는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너무 낡은 '표준 언어 예절'


얼마 전 호칭의 대안이 없을까 궁금해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고 놀랐다. 남편이 아내의 부모님을 부르는 호칭은 ‘장인’, ‘장모’다. 이 자체는 높임말이 아니기 때문에 ‘장인어른’,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남편이 자신의 부모님이나 아내, 친척 등에게 처부모를 지칭할 때 존칭하지 않고 ‘장인, 장모’라고 말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아니, 어른을 존칭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니? 그렇다면 남편은 시부모님이나 나에게 말할 때 “장인은 이런 일 하셔”, “오늘 장모가 전화를 했는데~”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21세기에도 적용되는 원칙인지, 국립국어원에 문의해봤다. 


“'장모'는 '아내의 어머니/아내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의 의미이며, '장모'의 높임말이 '장모님'입니다. 따라서 '장인/장모'는 높임말은 아니며 아내에게, 부모와 동기, 친척에게, 그 밖의 사람에게 '장모'라고 지칭할 수 있는 지칭어라 하겠습니다.”


“표준 언어 예절"에 따르면 장모에 대한 호칭어는 '장모님'이라고 하는 것이 바르나, 아내에게, 부모와 동기, 친척에게, 그 밖의 사람에게 지칭할 때는 '장모'라고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처부모의 나이가 친부모보다 훨씬 많거나 그 밖에 처부모를 대접해서 말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장모님'이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결국 원칙상으로는 남편이 아내나 부모, 동기, 친척에게 처부모를 존칭하여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간혹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수정되거나 새로운 단어로 대체될 때가 있는데(흔히 아는 ‘짜장면’처럼), 어떤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인지 다시 물었다. 


“여러 기준이 종합적으로 고려되므로 명확한 답변은 어렵습니다. 대체로 의미가 어원과는 멀어지거나, 어원이 불분명해진 경우, 새로운 문법적 기능을 획득하게 된 경우와 같이, 기존의 형태들과 괴리가 생긴 경우 맞춤법이 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장면'의 경우 원 형태인 한자의 발음이 영향을 미친 것이었으나, 어원을 인식하기 어려워졌으며 '자장면' 역시 어원의 발음과 괴리가 있는 상태였으므로 '짜장면' 역시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정말 좋아해서 취업도 안 된다는 국문과에 진학했던 나는, 우리의 존댓말이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존댓말과 반말 가운데를 슬쩍 오가는 연인 사이의 간질거리는 대화를 어떤 언어로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송혜교가 ‘선배, 너는 그게 문제야’ 할 때에는 ‘선배는 그게 문제예요’도 아니고 ‘야, 넌 그래서 안 돼’도 아닌, 그 어디쯤에서 줄타기하는 아슬아슬한 언어의 매력이 느껴졌다. 외국에서 번역된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하지만 언어가 우리를 불평등하게 옭아매는 도구여서는 안 된다. 특히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 간의 호칭, 이미 우리에겐 너무 낯선 낡은 단어들의 조합 앞에서 나는 자꾸만 그들을 부르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가족을 대하는 호칭에 계급이 나뉘는 것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호칭이 어렵거나 껄끄러우면 그 사람을 부르지 않게 된다. 안 그래도 아직까진 며느리들에게 어려운 시댁인데, 호칭이 그 사이에 한층 더 두꺼운 벽을 쌓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언어가 바뀌는 데에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안을 생각해볼 의미는 충분히 있다.


가족 간에 일어나는 많은 양보와 희생은 ‘가족이니까’라는 한마디로 일축된다. 하지만 내가 ‘아가씨’와 ‘도련님’을 존칭하면서 그들을 정말 내 동생처럼 친근하게 여길 수 있을까? 좋아하는 마음과 별개로,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민망한 호칭의 벽이 세워져 있다. 아마 난 ‘서방님’을 결코 부르지 못할 것이고, 그를 가족으로 여기는 일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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