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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Nov 06. 2017

신혼부터 빚더미…… 집을 꼭 사야 할까

모두에게 강요되는 장거리 레이스

연애할 때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국내 여행을 다니던 우리 부부는 결혼 후에는 안심하고(?) 종종 해외 여행을 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여행을 갔다 오면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 슬금슬금 눈치를 보게 되었다. 여행을 갔다는 건 돈을 쓰고 왔다는 말이고, 그 얘길 하면 빠지지 않고 들어야 하는 잔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돈 펑펑 쓰지 말고, 빨리 돈 모아서 집 사야지.” 


결혼한 딸이 매달 월세 내는 게 아까운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결승점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마라톤의 출발선에 내던져진 것처럼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마치 집을 사는 게 내 결혼생활의 최종 목표이며, 우리는 그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야만 한다고 모두가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닌데, 난 이 집이 내 집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지금 우리 부부는 50년 넘는 시간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고, 그 앞에는 집보다 중요한 문제도 수없이 있을 게 분명한데.


이건,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네


신혼집 월세 계약 만료가 아직 1년이나 남아 있을 때부터 신랑과 나는 종종 실랑이를 했다. 애초에 신혼집을 구할 때부터 우리는 집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랐다. 수중에 있는 돈이 적으니 그는 대출을 받아 일단 전세를 구하고, 적절한 전세가 없으면 하루빨리 매매라도 해서 고정적인 주거지를 가지고 싶다는 입장이었다. 아마 보통 집을 구하는 단계가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달 월세를 손해 보더라도 거금을 대출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우리 수중에 있는 비용 내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싶었다. 안 그래도 대학 졸업하면서 학자금을 빚지고 사회에 나오는데, 결혼하면서 또 어마어마한 대출금을 껴안고 사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신혼집에 대해서는 신랑이 양보해준 덕분에 우리는 10평이 조금 넘는 첫 신혼집에서 (우리의 결혼 자금을 탈탈 털어 만든)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 50만 원을 내며 살게 되었다. 


20대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나서야 집을 구한다는 것이 다른 쇼핑과 어떻게 다른지 차차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집을 사야 한다는 사실이 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노력하면 결혼할 때쯤 집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언젠가’가 너무나 까마득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걸쳐진 평범한 직장인 부부가 집을 사는 것은 무리였다. 월세 50만 원은 그 달의 수입으로 낼 수 있다. 하지만 전세, 매매금 1억을 어떻게 모으지? 집은 내가 열심히 일해 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빚을 져야만 살 수 있고 살아가면서 그 빚을 갚아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집을 사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매달 얼마씩을 대출 이자로 내고, 또 대출 원금을 갚으면서, 외식하고 여행 가는 일은 사치인 삶이 내 앞에 놓인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한 달에 얼마씩을 뱉어내기로 약속하며 이 장거리 레이스에 참여해야만 할까? 


집을 쿨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보통 사람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언제쯤 집을 살 수가 있을지 감이 안 왔다. 연봉이 낮아서, 연차가 짧아서, 저금을 많이 못해서…… 이 주제는 결국 화살을 내게 돌리고 나를 갉아먹을 듯했다. 어마어마한 집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부 두 사람이 지낼 만한 소박하고 작은 집이면 충분한데도 그랬다. 결혼한 또래 친구들도 모두 집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했다. 행복한 둥지가 될 줄 알았던 ‘집’이라는 것이 너무 까마득하고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성실하지 않은 삶을 살 권리 


신혼생활은 즐거웠지만 1년 동안 돈은 많이 모으지 못했다. 게다가 반려묘의 항암 치료를 하느라 결혼 전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일주일 이상의 미래는 잘 생각하지 않는 나와 달리 긴 시간을 설계하곤 하는 신랑이 슬슬 이사 계획을 의논해왔다. 지금처럼 월세를 내는 것보다 대출 이자를 내는 것이 낫다, 무리해서라도 집을 구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미적거리면서 물었다.


“살면서 집을 꼭 사야 할까?”


얘가 무슨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남편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 집은 마치 내 발목을 붙드는 무거운 사슬처럼 느껴졌다. 내게 있어서 안정된 삶이란 우리 명의로 된 집이 있는 삶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돈 이내에서 지출할 수 있는 삶이었다. 물론 집이 없으면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월세든, 대출 이자든, 계속 고정 비용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이사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바람 따라 물 따라 팔랑팔랑 낭만 좇으며 주거지를 옮길 수는 없다. 


하지만 큰 돈을 대출하여 집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내게는 뜬구름 잡는 느낌이었다. 결혼을 하기로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두 사람의 주거지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집에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걸어야 했다. 아직 벌지도 않은 돈을 약속해야 하는데, 심지어 그렇게 해서 원하는 주거 형태를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돈, 빌릴 수 있는 돈을 계산하다 보면 주거 형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살고 싶은 동네, 공동주택, 단독주택, 마당 있는 집, 혹은 고양이가 창 밖을 볼 수 있는 집…… 같은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다. 부동산에서는 우리의 자금에 맞춰 가능한 집을 소개해 주고, 때론 예산에 따라 동네도 바꿔야 한다. 


물론 안정적인 삶을 위해 집은 필요하다. 마침내 집에서 은행 지분이 없어지고 그게 온전한 내 것이 될 때, 부지런히 살아온 우리의 삶에 대한 어떤 보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빚을 져서라도 30대에 집을 사고, 10년 넘게 그 빚을 갚고, 그러면 일단 된 걸까? 무언가 이루고, 성공한 삶이 되는 걸까? 결혼 후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집'이라고 세상이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집을 사기 위해 장기 대출을 받으면 그 기간만큼의 내 삶을 못박아둬야 한다. 즉, 성실하게 살지 않을 권리가 없어진다. 그럴 거라면 나는 차라리 저 멀리 목표가 보이는 쭉 뻗은 콘크리트길을 벗어나, 불안정한 오솔길에서 상상하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걷고 싶었다. 가끔은 걷다 말고 바닥에 주저앉아 쉬기도 하면서. 


6년 후엔 뭔가 달라질까


하지만 '집이 내 건지 빌린 건지가 뭐 그리 중요해? 대출 받지 말고 이틀 벌어 하루 쓰며 자유롭게 살자!'는 소리로 남편 속을 긁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건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한숨을 쉴 때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선택지가 나타났다. 


우리처럼 집을 살 수도 없고 대출에도 한계가 있는 신혼부부들을 위해 나라에서 빌려주는 행복주택을 신청해 보기로 한 것이다. 결혼한 지 5년 이내의 신혼부부 중 기타 자격 요건에 맞는 경우에 신청할 수 있는데, 워낙 경쟁률이 세기 때문에 운도 좋아야 했다. 행복주택에 들어가게 되면 보증금의 폭이 아주 넓어진다. 적게는 1천만 원부터 최대는 1억 2천만 원까지 보증금을 조절할 수 있었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과 엄청난 대출금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우리에겐 가장 수월하게 집을 구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아직 만들지도 않은 집이라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탈락하면 또 집을 알아보고 수중에 있는 돈을 계산하고 대출 이자를 따져야 했다. 그 모든 머리 아픈 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바람이 통했는지 정말 당첨 리스트에는 우리 이름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당장은 집에 대한 고민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셈이었다. 


행복주택에 들어가면 아기 없는 신혼부부는 최대 6년까지 살 수 있다. 그 6년 후에 과연 우리는 또 어떤 집을 선택할 수 있게 될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주거 고민의 무게가 줄어들 수 있을까? 그야 우리 부부와 두 고양이들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절실한 것은 당연하지만, 내 삶에 돈과 집이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 큰 비중으로 굴러 들어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좋은 집에서 살면 좋겠지만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집을 사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집은 너무 비싸고, 집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서 내가 포기해야 하는 젊음의 기회비용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집, 어떤 형태의 공간을 빌려 살든 느긋하게 걸으며 볼 수 있는 것, 맡을 수 있는 냄새, 만질 수 있는 감촉들을 지나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서른 살에 입문한 신혼부부의 앞날에, 집을 갖는 것보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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