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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Oct 30. 2017

부모님을 위한 결혼식, 이제 바뀌어야 한다

부부의 첫 합동 프로젝트를 응원하며

결혼식은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돌잔치를 제외하면 나를 주인공 삼아 장소를 빌리고 손님까지 초대하는 행사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최소한 30년은 없을 것이다(그래야겠지……). 다만 돌잔치와 다른 점은 그 빛나는 무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일일이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성향에 따라 그 과정은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미리 짐 싸는 게 귀찮아서 여행 당일 아침에야 짐을 챙기기도 하는 내 성격엔 결정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듯해 부담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친구들 중에서 비교적 이른 결혼을 한 편이었고, 연하인 신랑은 더더욱 친구들 중에 첫 번째 결혼이라서 보고 들은 것이 거의 없었다. 결혼의 전통과 절차도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결혼 준비에 큰 비중을 두기는 어려울 듯했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신랑에게 ‘결혼 준비 과정을 알아보지 말고, 우리가 백지 상태에서 생각했을 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만 하자’고 제안했다.


상견례 때 모든 절차를 생략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나중에 ‘그래도 이불은 해야 한다’든가, ‘그래도 최소한 예물은……’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기에 각자 부모님에게 우리의 뜻을 확실히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양가 부모님이 동의해 주셔서, 각자 집안의 의견 차이를 두고 조율하는 일 없이 둘이 함께 어색한 걸음으로 생전 처음 식장을 고르거나 부동산에 가거나 했다. 이십대의 결혼이니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둘이 돈을 모아 보증금 이천만 원의 월세 신혼집을 계약하고 나니 우리가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최대한 모든 것을 두 사람이 독립적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해도,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게 주변에서 던져주는 화두는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시간대, 그 음식, 그 위치, 그 웨딩 콘셉트 등은) 어른들이 불편해하지 않으실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축하해 달라고 손님들을 초대하는 자리이니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불편함이 없도록 챙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문제가 결혼 준비의 즐거움을 상당 부분 고민으로 대체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혼식의 방법은 부부가 선택해야 한다


결혼식 날, 식이 오후 5시에 시작이라 아침은 좀 여유가 있었다. 몇 시간 후면 내 남편이 될 남자친구를 만나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고, 미리 빌려놓은 드레스와 턱시도도 챙겼다. 평소에 머리를 잘 묶지 않고 긴 머리로 다니는 것이 익숙한 편이라 머리를 올리지 않고 웨이브만 넣어 화관을 쓸 예정이었다. 인조잔디가 깔린 작은 식장이라 그 편이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생각해 결정한 것인데, 헤어숍에서 내가 생각한 머리 모양을 설명하자 디자이너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머리 내리는 거 어른들이 싫어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아…… 그럴까요? 아마 괜찮을 것 같아요, 하하.”

“그래도 한번 물어보세요.”


어른들이 굳이 머리 모양이 어떻다고 신경 쓰실까 싶었지만, 재차 권해서 나도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봤다. 예상대로 엄마는 별 말 없이 쿨하게 OK였다. 디자이너 선생님을 안심시킨 뒤(?) 머리를 했고, 다행히 누구도 내가 머리를 묶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결혼식 날 머리 모양은 누구보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하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걸 기억하는 것도 나밖에 없을 것이다.


주례 없는 예식으로 신랑 손을 잡고 동시 입장을 했고, 함께 성혼선언문을 읽고 축사를 듣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결혼식을 마쳤다. 사실 결혼을 준비하는 데 예식 순서까지 정해야 하는 줄은 몰랐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야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신랑과 의논한 순서대로 차근차근 예식이 진행됐다. 기껏해야 15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평생 기억될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식이 끝나는 순간 신랑 쪽 어느 하객이(아마 친척 분이) 불쑥 일어서며 “시아버지가 한마디 해야지!”라고 커다랗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야 즐거운 마음으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너무 당황스러워 못 들은 척했다. 결혼식에 주례도 없고, 신랑 신부 부모님의 덕담도 없어서 어른들이 보기에는 다소 낯선 식순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커플이 부부가 되는 중요한 순간에 꼭 그렇게 큰 소리로 시아버지의 등장을 요청하셔야 했을까?


그렇잖아도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결혼식은 마치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소속을 옮겨 양도되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버지의 손에서 남편의 손으로 건네지며 소유권이 이동되는 것도, 신부만 시댁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 폐백을 하는 것도 그렇다. 그게 싫어서 나는 동시 입장을 했고, 폐백도 생략했다. 신랑이 ‘폐백하면 절 값 받을 텐데 안 받아도 돼?’라고 물었고, 돈보다 내 기분이 중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시댁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동안 우리 부모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싫었다.


진짜 축하할 수 있는 하객은 누구일까?


결혼식의 주인공은 부부가 되는 두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모일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 역시 직장을 다니며 곤란하던 순간 중 하나가 애매한 직장 동료에게 청첩장을 받을 때였다. 결혼은 당사자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반복되는 남의 행사일 뿐이다. 물론 좋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기뻐하고 축하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간관계가 협소한 탓인지 청첩장을 받으면 주말 하루 시간을 투자할 만한 사람인지, 축의금이 아깝지는 않은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나 역시 내 청첩장이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싫었다. 애초에 나에게나 중요하지 남들에게는 그렇지도 않은 내 결혼을 위해 시간을 내어 참석해 달라고 누굴 초대하는 것 자체가 내 성격에는 참 민망하고 어색했다. 그래서 직장 동료나 학교 선후배 등 애매한 지인들은 초대하지 않았다. 당시 스몰웨딩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스몰웨딩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까운 가족 친지들만 초대해 스몰웨딩을 합니다’라고 공표를 했다. 초대하지 않았다고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뜻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요즘은 다들 결혼식을 소규모로 하고 싶어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내 결혼식을 정말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만 부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의 부부로서 결합을 축하하는 진정한 의미의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허례허식을 불편해하는 젋은 세대의 변화에 발맞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 그 소규모 웨딩의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부모님 손님’, ‘축의금 회수’ 문제다. 결혼식은 사실상 부모님 행사이기 때문에 부모님 손님을 초대해야 하고, 부모님이 여태까지 나눈 축의금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데 있어 ‘두 사람이 원하고 꿈꾸는 결혼식’의 모습 외에도 고려해야 하는 사소한 문제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정말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라면, 위치가 좀 외지거나 주차가 좀 불편한들 그게 축하의 마음에 걸림돌이 될까? 밥이 좀 맛이 없고 예식 시간이 좀 마음에 안든다고 한들 어떻겠는가? 친구가 하얀 드레스가 아니라 빨간 드레스를 입는다 해도, '역시 너답다' 하고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소중한 친구들의 결혼식은 예식이 아무리 길어도, 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그 자리에 함께하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다.


초대받은 하객들이 결혼식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결국 결혼식 당사자와 얼마나 가까운 사람들인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에 참석하고도 신부의 머리 모양이 보기 안 좋다느니, 시간대가 별로라느니 하는 소소한 부분에도 불평을 할 만큼 그 부부에게 애정이 없는 이들이라면 애초에 초대하지 않고, 가지 않는 게 서로의 주말을 위한 일이 분명하다.



꿈꿔온 결혼식, 왜 불가능한가


‘나의 결혼식은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 번쯤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해외의 한적한 해변에서 하는 결혼식, 펜션에서 친구들과 파티처럼 하는 결혼식, 아무도 없이 단 둘이서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하는 결혼식……. 상상에서도 각자의 성격과 성향이 나타나는 게 재미있다. 그런데 그 꿈을 꺼내놓다 보면 꼭 누구 한 명쯤은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현실로 끌어내린다.


야, 결혼식을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결혼식은 그 누구보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행사다. 결혼식에 대한 그 많은 상상, 그리고 꿈은 왜 ‘당연히’ 이룰 수 없는 것이어야 할까? 예비부부가 함께 원하고, 돈과 시간만 갖추어진다면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결혼을 기피하는 요즘 세대에 결혼식의 의미는 더더욱 순수한 결합과 축하의 과정에 가까워져야만 한다. 첫 단계에서부터 전통과 절차와 부모님의 체면에 휩쓸리다 보면 결국 결혼 생활 전체가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아니라, 번거로운 사회적 규율을 맞춰나가는 불편한 과정이 되기 쉽다.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효의 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인으로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부모님으로부터 선택의 독립이 이루어질 필요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 '자유로운 결혼식'의 이면에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 하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결혼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신혼부부로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집값이 또 문제고……. 하지만 결혼은 결국 '두 사람이 각 집안 어르신들의 니즈와 취향을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의 의견을 듣고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말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두 사람 사이에 더 많은 관문과 갈림길이 놓여 있다. 다소 실수하고 어설퍼도 같이 상의하고 결정해 나가도록 두 사람의 첫 합동 프로젝트를 담담히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것이 어떨까? 부모님 손님을 위한 결혼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꿈꾸는 미래를 설계하는 첫 단계로서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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