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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Nov 27. 2017

‘남편 아침밥은 해줘?’ 집밥 먹지 않는 신혼

우리에게 맞는 생활 양식이 있다 

최근에 남편이 운동을 열심히 하더니 살이 좀 빠졌다. 실제로는 그가 나의 딱 두 배 속도로, 그리고 두 배 정도 더 많이 먹는데 기본적으로 마른 체형인데다 운동을 했더니 바로 티가 나는 듯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매일 만나는 만큼 체형의 변화가 확 와 닿지는 않는데, 얼마 전 시댁 가족 행사가 있어서 갔더니 보는 친척들마다 신랑에게 살 빠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하면 살 쪄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시선이 연이어 나를 훑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기분 탓일까? 나는 ‘밥도 안 챙겨 주냐’는 의미가 생략된 듯한 뒷말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주에 만난 친정 아빠가 기어이 그 말을 표면으로 꺼냈다. 


“살이 빠진 것 같은데, 딸이 밥도 안 챙겨 주나?” 


그렇잖아도 아빠는 내가 혼자 친정에 오기라도 하면 '남편 밥은 누가 챙겨주느냐'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신랑 밥을 잘 챙겨 먹이라는 아빠의 잔소리가 흘러나오는 동안 밥을 먹느라 우물거리는 신랑에게 나는 결국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밥을 못 얻어먹은 게 아니라 운동을 해서 살 빠진 거라고 말을 해! 왜 말을 못해!” 


도대체 왜 결혼하면 모두가 남편의 밥에 집착하는 걸까? 특히 아침밥. 그야 밥은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실상 매일 반복해야 하는 중요한 일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어엿한 성인으로서 우리 둘은 각자 자기 밥 정도는 챙겨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친정이든 시댁이든, 음식을 싸주시거나 요리법을 알려주실 때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은 대개 나뿐이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이것저것 반찬을 챙겨 주시며 보관법과 요리법을 당부하시는 동안 남편이 거실에서 남 일처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너 밥해주는 사람이야? 결국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싫은 소리를 뱉었다. 


그때 정말로 나를 답답하게 한 건 온 세상이 은연중에 보내고 있는 '남편 밥은 아내 몫'이라는 메시지였다. 전반적인 집안일을 잘 챙겨주는 그와 단둘이서 생긴 갈등이었다면 그저 역할 분담을 세심하게 다시 조율해봤을 것이다. 그렇게 뾰족한 말을 내뱉을 필요는 없었는데. 


그놈의 밥…… 하기도 싫고 먹기도 싫다 


결혼하고 나서 밥에 대한 부담감은 생각보다 강렬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결혼이든 뭐든, 결국 사람 사는 집에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신랑은 요리를 거의 못했고, 그나마 자취했던 내가 조금 나았다. 그에게 빨래와 청소 등 다른 집안일을 맡기고, 나는 나라도 요리를 잘 해야겠다는 묘한 책임감과 의무감에 휩싸였다. 


결혼하고 나서 우리도 여느 신혼부부처럼 처음으로 우리 집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같이 장을 보러 갔다. 음식 재료를 골라 담고 우리 집 밥상을 그려보는 과정은 소꿉놀이처럼 알콩달콩 즐거웠다. 마트를 한 바퀴 돌고 나서 계산대에 올리니 10만 원쯤이 나왔다. 나는 '꼭 엠티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해 조금 놀랐다. 장을 얼마 만에 한 번 봐야 하는지, 한 번에 얼마만큼을 사야 하는지 영 감이 오질 않았다. 어쨌든 집에는 자취할 때처럼 내 무릎 높이만큼 오는 미니 냉장고가 아니라 엄마 집에 있는 것 같은 어엿한 냉장고가 들어와 있었다. 신혼이란, 집밥 먹는 생활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예능 '삼시세끼'처럼 '삼시세끼를 챙겨먹으면 하루가 다 간다'는 현대인의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던가. 밥을 짓는 일에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갔다. 엄마가 분명 밥은 밥솥이 다 해준다고 했는데…… 하지만 솥과 쌀을 씻고 다 된 밥을 주걱으로 저어주는 것은 사람의 일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가 시들지 않게 하고, 요리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부족한 재료를 사고, 다진 마늘과 얼린 파와 간장, 고춧가루를 줄줄이 늘어놓았다가 다시 정리하는 것은 일일이 머리와 손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살림이 어설픈 초보 부부가 매번 능숙하게 집밥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침은 각자 적당히 먹었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으니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은 저녁밖에 없는데도 그랬다. 처음에는 같이 집밥을 먹는다는 것이 꽤 신혼부부답다는 기분에 젖어 나름대로 의욕이 있었다. 게다가 집밥이 맛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재료를 사면 며칠 동안 여러 개의 반찬을 만들 수 있으니 실제로 외식보다는 저렴한 셈이었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정경제를 위해 제공해야 하는 것은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노동'이었다. 또한 우리는 신혼부부이기 이전에 저녁 약속도 많고 술집 가는 걸 좋아하는 20대 직장인들이었다. 일정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냉장고 속 재료를 썩히지 않고 관리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었다. 때로는 버리는 것이 먹는 것만큼(어떨 땐 먹는 것보다) 많았고, 전기밥솥의 밥이 보온 100시간을 넘길 때도 종종 있었다. 둘 다 요리에 썩 실력이나 취미가 있지도 않았다. 머릿속에 언뜻 그렸던 신혼 밥상이 실현되려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요리를 좋아해야 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집밥에 대한 이유 모를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집중해서 일을 하다가도 신랑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메뉴에 대한 고민으로 일의 맥이 끊겼다. 뭘 먹을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요리 실력은 느는 것도 같은데 흥미는 빠르게 떨어져갔다. 


illustration by JA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그때쯤 신랑이 여름을 맞아 몸 관리를 하겠다며 저녁을 고구마나 과일, 단백질 보조식품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겠다고 말해왔다.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라는 티는 많이 내지 않고, 장을 보러 가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고구마나 바나나 같은 것들을 사왔다. 나는 원래 한식보다 양식을, 또 그보다는 간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혼자 내키면 파스타를 삶아 먹거나 간단한 군것질에 맥주를 먹거나 했다. 그러는 와중에 물론 종종 외식도 했다.


집에서 밥을 안 하니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이렇게 세상 편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맞춤형 생활 방식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결혼했다고 내가 갑자기 엄마처럼 주부 9단이 되는 건 아니었다. 억지로 식재료를 계산하고 집밥을 하려 애쓰는 것보다 그때그때 편한 방식으로 먹고 싶은 걸 먹는 게 좋았다. 냉장고는 최대한 단출하게 유지하려 했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김치, 그때그때 먹어야 하는 과일이나 요거트, 그리고 늘 우리 집에 있는 맥주 정도만 보관했다. 채소는 먹고 싶을 때 한 종류씩만 사서 바로바로 먹었고, 여러 재료가 들어가야 하는 찌개 같은 것은 반찬가게에서 사 먹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12팩씩 포장된 도시락을 주문해 냉동해 놓기도 했다. 건강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대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탐색했다. 


그래도 내심 신랑이 집밥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한 번은 장을 보러 가서 신랑이 먼저 말했다. "집밥을 굳이 해먹는 것보다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 챙겨놓고 간단히 먹는 게 나은 것 같지 않아?" 내 음식이 맛이 없어서 고통스러웠던 걸까…… 까지는 모르겠지만(자세히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의견이 일치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집안일을 나누어 하는 것은 자신과 서로를 위한 배려와 노력이지, 한 사람의 생존 유지를다른 사람에게 짐처럼 얹어준다는 뜻이 아니다. 남편이니까, 아내니까 하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하는 방향이 옳다. '원래 결혼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생활양식을 찾아가는 것이 결국 편안한 결혼 생활을 위한 방법이지 않을까. 빠르면 체하는 법이고, 무리하면 쉽게 지치는 법이니까. 물론 살다 보면 또 식단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될 날도 올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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