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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Dec 04. 2017

신혼부부가 고양이? 아기 낳으면 어쩌려고!

걱정과 오지랖 그 애매한 경계

내가 이미 겪어서 알고 있는 것을 아직 겪지 않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고 싶은 상냥한 마음에서 발현되는 것이 기본적으로 걱정 어린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엔 내가 살아본 것과 같은 유형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아 모르는 영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 하는 조언은 결국 오지랖이 된다. 발화될 때에는 좋은 의도일지 몰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간섭일 뿐인 셈이다.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는데, 불편한 사람이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오지랖 중에서도 가장 쓸데없는 것이 가족 구성에 대한 간섭인 것 같다. 신혼일 땐 아기 낳아라, 첫째를 낳았으면 둘째는 ‘아들/딸’로 낳아라, 아들 둘이면 딸 하나는 있어야 한다더라, 딸만 있는 집에는 아들이 있어야 든든하다……. 남의 가정사처럼 조심스럽고 사적인 영역이 없는데도, 가족 구성에 대한 참견은 서슴없이 일어난다. 그나마 사람의 경우에는 ‘더 낳아라’ 하는 방면의 참견이 많아 웃고 넘길 수라도 있지만,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반대로 ‘내다 버려라’ 하는 종류의 참견이 많다. 듣는 가족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히는 얘기다.


아기 낳으면 고양이는 다른 데 보내라


나는 오랫동안 반려동물을 키워왔고, 주변에도 반려인들이 꽤 많았다. 고양이에 대한 편견 어린 시각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일을 내가 직접적으로 접할 일은 거의 없었다. 관련 업종에서 일하면서 도리어 동물과의 공존을 위해 애쓰는 이들도 여럿 만났다. 적어도 길고양이를 보면 ‘어머, 귀여워’ 하는 부류의 사람이 더 많은 세계에 나는 속해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핍박과 학대가 점점 없어지고, 길고양이의 삶이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결혼 이후로 내가 속한 세계의 범위가 넓어지며, 그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도 달라졌다. '결혼과 고양이가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결혼과 동시에 주변 이들이 내 가족 구성과 미래 계획에 대해 깃털처럼 가벼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고양이는 안 돼!'를 접한 것은 결혼식 바로 전이었다. 결혼 소식을 알렸더니 고모가 이불을 사준다고 하셨다. 친척들과 자주 교류하는 편이 아니라서 어색한 마음에 몇 번 사양했지만, 재차 권하시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고모가 강력 추천한 것은 레이스 장식이 달린 아이보리색 이불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나는 '이건 좀……' 하고 몇 번 머뭇거리다가, 결국 '레이스는 고양이들이 물어뜯을 수도 있어서요' 하고 핑계를 댔다. 당시 두 마리 고양이들이 기운이 뻗쳐 매일 밤 격렬한 우다다를 해대는 시즌이라 레이스가 발톱에 걸릴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모가 '고양이 키우니?' 하고 화들짝 놀라시는 것이었다. 그러곤 얼른 한 마디 덧붙이셨다.


아기 낳으면 고양이들은 다른 데 보내라!


네……?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말을 듣게 된 것 자체가 적잖이 충격이었다. ‘동물도 생명이며,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지니고 있고, 한번 책임지기로 결심했으면 버려서는 안 된다, 고양이를 키우면 임신이 안 되거나 유산한다는 것은 루머에 불과하고, 얼마든지 아기와 동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라고 세상을 향해 열심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와 아기를 함께 키우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내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에게 특별히 악의가 있거나 개인적인 앙금이 있어서 한 말씀은 물론 아니겠지만, 집에 있을 두 고양이들을 대변해서 속이 상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결혼 초에 고양이털이 엄청나게 날리는 통에 신랑이 공기청정기를 쓰자고 하여 렌탈했는데, 그래서 집에 정기적으로 공기청정기 매니저님이 방문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통 낯을 가리지 않아서, 새로운 사람이 집에 오자 숨기는커녕 두 마리가 공기청정기 근처로 모여들었다. 다행히 그분도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나 피하시는 것 같진 않았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고양이들을 낚싯대로 유인해 놀아주는 동안에 금방 점검이 끝났다. 그분은 슬쩍 고양이들을 보더니 붙임성 있는 말투로 물었다.


“고양이는 누가 좋아해서 키우는 거예요?”

“네? 뭐…… 제가요.”

아이고, 아기 낳으면 어쩌려고요.


……괜찮아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소극적으로 변명했지만 그분은 아기 생기면 고양이들이 샘을 내서 안 된다, 강아지랑 달라서 아기한테 문제가 된다, 하며 뜬금없는 고양이 음모론을 펼치며 돌아가셨다.


심지어 우리 시어머니는 결혼 절차부터 신혼집까지 우리 부부의 방식을 전혀 간섭하지 않고 존중해 주시는 분이었는데도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에는 깜짝 놀라신 것 같았다. 한 번은 전화통화 도중에 갑자기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고양이는 나쁜 일 당하면 복수한다던데……. 주인도 못 알아보지 않니? 두 마리 키운다며? 고양이 더 많이 키우지는 말아.”  


에이, 못 알아보긴요. 현관까지 마중도 나오고, 얼마나 귀여운데요(더불어 셋째 계획은 아직입니다……).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고양이에 대한 편견에 다시 한 번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벽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들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의 낯선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맞춰가는 일이고, 그 삶의 방식은 대개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항상 동물을 키웠던 우리 집과, 한 번도 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심지어 무서워하는) 시댁은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시댁에서는 이후 며느리가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에게 오히려 관심이 생겼다며 마음을 조금 열어 주셨다.



아기든 고양이든, 제 가족인데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존중받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아기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누가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므로 그저 원하는 대로 결정하여 살면 그만이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아기와 같은 공간에 두기는 찜찜하다고 생각하는 부부라면 동물을 안 키우면 되고, 오히려 아기에게 동물이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은 부부라면 동물을 키워도 좋을 것이다.


즉, 반려동물을 키우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어디까지나 각자가 성향과 가치관과 삶의 방향에 맞춰 결정하면 된다.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에게도 당연히 미래에 대한 기준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아기와 고양이가 공존할 수 없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아기 낳으면 고양이는 버려야' 한다는 조언의 근거는 궁금하지도 않고, 오히려 내 삶의 가치관을 무시하는 폭력적인 훈수로 들린다.


다른 사람이 선택한 삶의 모양에 대해 좋고 나쁨을 평가하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조심스러우며,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일이다. ‘나만의 일반적인 기준’을 모든 경우에 통용하면 곤란하다.


상대방의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평소에는 그럭저럭 잘 지켜지다가도, 어쩐지 결혼과 아기와 고양이의 문제에서는 당연한 조언과 오지랖으로 여겨지며 거침없이 발현되는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이라서, 먼저 겪은 자들의 조언이 당연히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삶의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 있으며 그중 정답은 없다.


참견하는 이들의 마음이 때로는 걱정과 호의지만 때로는 불편한 간섭인 것은 분명하다. 나도 그때마다 일일이 발끈하곤 했지만 아직 주변의 수많은 오지랖이 닿을 일이 남은 신혼이라, 이제 내 정신건강을 위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흘려듣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정말 이 말만은 해두고 싶다. 결혼과 아기와 고양이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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