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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Dec 18. 2017

나도 없던 애교가 절로 생기진 않아

시댁을 대하는 남편과 며느리의 자세 

나는 애교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목소리가 높고 약간 혀 짧은 소리가 나는 탓인지 애교 있다는 말을 꽤 들으면서 자랐다. 물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 일부러 기분 좋은 리액션을 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낯선 이들과의 첫 만남이라 해도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것보다는 가벼운 대화가 오가는 캐주얼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 모두가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분위기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태생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을 어우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외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에 에너지가 들어가는 사람도 분명 많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남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내가 ‘애교 있는 며느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기서 애교라는 건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에게 요구하는 귀여운 표정이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붙임성 있는’, ‘사교적인’ 태도를 뜻하는 것이리라. 




원래 집에서는 나도 외출하고 오자마자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어도 별 말 없이 먹자마자 일어나 버리는 딸이었다. 엄마는 내 성격이 차갑다고 했다. 그래도 성인이 되고 독립해 혼자 살다 보니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커져 나름대로 잘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우리 엄마라고 해도 내가 해오던 성격이 있으니, 노력하지 않고서 저절로 싹싹한 태도가 나오는 건 아니었기에. 


결혼 후 시댁에서는 내가 피곤하다 해서 입 다물고 밥만 먹을 수는 없었다. 시댁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아무렇게나 대해도 용서되는 우리 가족 이외의 낯선 어른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집에서처럼 맘에 안 드는 반찬을 깨작거리거나 아무 말 없이 밥만 먹으면 당연히 편하지만, 손아랫사람으로서 기꺼이 에너지를 써서 무난한 만남이 되도록 애썼던 것이다.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할 때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시어머니가 웃음이 많고 다정하신 편이라 다행히 대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 생활을 독립적으로 존중해주려 노력하시는 분이어서 오히려 내가 잘해드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자주 찾아뵙지 않는 것도 있어서, 올 여름에는 같이 휴가를 가자고 남편을 통해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는 눈치 없이 며느리랑 여행 가도 되겠느냐며 우리끼리 가라고 몇 번 사양하시다가, 결국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기로 했다. 여행 계획 짜는 건 귀찮지만 어른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니 나름대로 여러 루트를 알아보고, 한옥집에 숙소도 잡았다. 나도 물론 시댁에서 무심코 하시는 말 한 마디에 날이 뾰족하게 설 때도 있어서 내심 걱정했던 시댁 여행이었지만 다행히 분위기는 좋았다. 첫날 부여에 들렀다가 전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시아버지가 소개한 백반을 먹고 차를 탔다. 


예쁜 걸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먹었지만, 아무래도 평소보다 많이 걷고 잠자리도 바뀌었으니 모두들 피곤했을 것이다. 올라오는 길에 시어머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건네시는데 나도 처음에는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쳤다. 문제는…… 차를 타고 오가는 동안 부모님과는 거의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아예 한숨 자겠다는 남편이었다. 생각해 보니 처음에 내려갔을 때도 비슷했다.


누가 말을 하면 누군가는 대꾸를 해야 하는데 시아버지는 운전하시고, 남편은 자고. 운전을 교대하고 나서도 똑같았다. 몇 시간을 같이 차를 타고 움직이는데 시어머니의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나에게만 대화를 맡기고 방관하는 남편의 태도가 괘씸했다. 그렇다고 즐겁게 다녀오는 여행에서 나까지 무뚝뚝하게 앉아 분위기를 죽여 마무리를 찝찝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부모님에게 있어서 남편이 말없는 거야 당연할지 몰라도, 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대답도 안 하고 있으면 괜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을 테고. 


남편 입장에서는 가족 여행이라 편하게 행동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겐 아직 어색한 가족이니 알아서 중간에서 노력해주길 바랐다. 그동안에도 몇 번인가 남편에게 ‘시댁 가면 제발 너도 말 좀 해’라고 요구한 적이 있는데…….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건 전혀 아니고, 아마 그도 몸에 배어 있지 않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걸. 나도 어색한데 노력해서 하는 거라고! 여자들이 다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결국 여행이 다 끝난 후에 집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그야 남편도 친정집에 가면 나름대로 불편하고, 노력하고, 애쓰겠지만, 나 역시 방에 쏙 들어가거나 낮잠 잔다고 남편만 부모님 사이에 남겨놓진 않는다. 그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는 내심 애교 있는 며느리가 무뚝뚝한 아들의 역할을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걸까, 하는 의구심에 마음이 조금 뾰족해졌다. 



‘효도는 셀프’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마치 무슨 캠페인성 표어 같다. 요즘에는 좀 덜하겠지만, 그래도 효도를 아내에게 미루는 아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결혼하면 다 효자가 된다는데, 그 말은 즉 며느리의 몫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부모님에게는 효도하고 싶고, 그런데 스스로 하기는 멋쩍고, 여자인 아내가 살갑게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상대방에게 얼마나 부담을 지어주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단순히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고, 시댁에 방문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댁을 대하는 싹싹한 태도까지가 며느리에게 요구되는 면모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애교가 뭘까? 국어사전에는 ‘남에게 귀엽게 보이는 태도’라고 나와 있다. 남에게 귀엽게 보여서 크게 나쁠 것은 없겠지만 또 굳이 귀엽게 보여야 할까 싶기도 하다. 며느리들도 시댁에 귀엽게 보이는 것보다는 똑 부러지게 보이고 싶고, 차라리 무뚝뚝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노력하길 바란다면, 적어도 무뚝뚝한 아들이 그 노력에 동참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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