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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Dec 11. 2017

제사를 지내는 건 며느리의 전통인가요?

전통이 악습이 되는 과정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씨가 최진립 장군에 대한 사연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최진립 장군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전쟁에 의병으로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69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갔던 병자호란에는 그의 집에서 일하던 두 노비가 따라갔다. 전장에서 죽을 것을 직감한 최진립 장군이 두 노비를 집에 돌려보내려 했으나, 그들은 어찌 자신들만 돌아갈 수 있겠느냐며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진립 장군의 집에서는 그때 함께한 두 노비의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한다. 노비를 제사 지내는 것이 남들이 보기엔 흉이 될 수 있는 시대였는데도, 두 노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기린 것이다. 그 사연을 들으니 나는 비로소 제사를 왜 지내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최진립 장군의 가족들은 아마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그들의 내세에서의 행복을 기원했으리라.




나는 아마 사춘기가 왔을 때쯤부터 제사를 지내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엄마는 집에서 잘 먹지도 않는 종류의 생선이나 토란 같은 것을 사서 음식을 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다 남아 버리거나 ‘먹어 치우는’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일 년에 서너 차례 얼굴을 볼까 말까한 고모들이 집에 와서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엄마한테 심부름을 시키는 날이기도 했다. 고모들은 나한테 아빠한테 잘하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아빠가 고모들이 오기 전에 청소도 하고, 음식 준비도 돕고 그러셨지만, 고모들이 올 때쯤은 보통 아빠가 출근하고 없었다. 나는 그때 친척에 대한 제대로 된 호칭도 잘 몰랐는데, 그래도 그 만남에서 우리 엄마가 가장 약자라는 사실은 이미 알았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고모들이 집에 오는 횟수가 줄었고, 제사는 우리 가족만의 행사가 될 때가 많아졌다. 제사를 치르는 시간이나 방법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나는 고등학생일 때는 야자를 하느라, 대학생 때는 친구들과 술을 먹고 노느라 제사를 지내는 날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다. 엄마는 나를 굳이 부르지 않았다.


내가 어느덧 상견례를 하던 날, 시아버지를 처음 뵈었다. 남자친구는 결혼 전의 수많은 남자들이 시집살이를 부정하기 위해 짜인 듯이 내뱉는 ‘우리 엄마는 안 그래’를 시전했는데, 실제로 엄마는 안 그러셨다. 대신 시아버지가 전통을 아주 중시하는 분이신 것 같았다. 상견례 중에 시아버지가 나를 향해 불쑥 말씀하셨다.


다음 달에 제사 지내는데 내려 와라!


나는 서울 사는 직장인이고, 제사는 지방에서 지낸다. 우리 부모님도 계셔서 너무 민망했지만 그땐 당황스러운 마음에 ‘네?’라고밖에 대답을 못했다. 신랑은 그게 아버지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즉, 우리는 이제 가족이라는—이라고 해명했다. 결혼을 한다는 건 이제 남편 집 제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인 걸까? 나는 그날 밤 상당히 불안한 마음이 되었으나, 신랑이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과, 돈 주는 일 외에는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않는 내 성격을 감안해 마음을 안정시켰다.



결혼 전에 그에게 명절 풍경에 대해 슬쩍 물었는데, 전형적으로 여자들만 일하는 집이었다. 나는 결혼해도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신랑에게 말했다. 남자 집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여자들만 일하는 풍습은 언젠가는 없어져야 하고, 언젠가 없어질 거라면 나부터 적용해서 나쁠 것 없었다. 남편이 자기 집 제사에 참여하고 싶다면 당연히 말릴 생각은 없지만, 사실 결혼 전부터 제사에 별 관심이 없었던 건 그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내가 굳이 선언하지 않았어도, 시어머니는 당신이 고생하신 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를 제사 때 안 부르셨다. 우리는 지금 시댁 제사도, 친정 제사도 참여하지 않는다. 늘 우리 부부의 행복이 최고라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니의 사랑은 참 감사하고 든든하다. 하지만 제사에 가지 않는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갖지 않으려고 한다. 제사상을 차리는 일손을 돕지 않는다는 부채 의식은 '며느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차별적 역할 부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꼭 그렇게 칼로 자르듯 이기적이게 굴어야 하냐고?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을 참아내며 계속하면 결국 그 화살은 남편에게 돌아가고 부부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가족 때문에 또 다른 가족이 무너지는 셈이다.




애초에 제사의 취지는 물론 시댁과 며느리의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전통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까? 아마 우리 세대에서 전통을 가치관의 주된 요소에 배치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이 중요해진 요즘 시대에 많은 고집스런 전통이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데도 제삿상은 차리는 집안도 많다.


어떤 전통은 아름답게 이어져야 하지만, 어떤 전통은 변해야 한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며느리뿐 아니라 사위도 여자 집안에 가서 마찬가지로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굉장히 바쁜 일 년이 될 것이다. 꼭 제사가 아니더라도 집안 행사를 챙기는 일이 일방적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전통이라 해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얼굴도 모르고 피도 섞이지 않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 직장에 연차까지 내며 부엌일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며느리들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지 성별에 따른 희생을 강요한다면 결국 갈등만 낳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제사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형태를 고수한다면 제사는 자칫 악습으로 전락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큰 죽음은 15년을 함께한 내 강아지의 죽음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그토록 서러웠던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후세계를 믿고 싶어졌다. 내 강아지는 무지개다리 너머 어딘가 아름다운 곳으로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곁에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해줬어야 했고,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들을 후회 없이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게 가족과 죽음을 대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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