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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Dec 25. 2017

아버님, 저도 귀하게 큰 딸이에요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아내'의 의미 

‘귀하게 키운’이라는 수식어는 참 묘하다. ‘귀하게 키운 자식’이라는 말에는 아마 집에서 귀하게 키웠으니 밖에서도 귀하게 대접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약간의 젠체하는 어조가 곁들여진다. 귀하게 키운 게 왜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일인지, 자식 입장이라 그런지 아직은 잘 이해가 안 가지만.     


하지만 어른들도 물론 아시다시피, 사회에 나와 귀하게 대접 받을지 어떨지는 집에서 귀하게 자랐는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집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요건은 성숙한 인격이 갖춰져 있는지,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사상을 갖추고 있는지 따위의 것들이다. 그래서 귀하게 대접받는 남편이 되는 것은 집에서 귀하게 자란 것과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릴 때 자주 듣던 이야기 중에서 ‘신부수업’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마 친정엄마로부터 결혼하기 전에 밥 하는 법, 빨래하는 법 등을 배워두는 것을 뜻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집안일을 잘 해내는 걸 보면 ‘시집갈 때 다 됐네’로 응용되기도 했다. 사실 꼭 신부수업이 아니더라도 다 큰 자식으로서 엄마의 집안일을 나누어 했어야 마땅했지만, 엄마는 부엌에서 내가 뭘 하려고 하면 손을 내저었다. 십 년도 전이지만 그러면서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결혼하면 평생 할 텐데, 하지 마.’      


나도 엄마에 의해 참 귀하게, 곱게 자랐다. 한편으로 아마 나는 어렴풋이 ‘결혼하면 설거지는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집안일은 누가 하거나 누가 돕는 게 아니라 집안 구성원이 함께 해야 하는 공동의 일이다. 결혼 후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내가 주로 밥을 하고, 남편이 빨래와 청소를, 설거지는 그때그때 시간 되는 사람이 한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결혼 후 시댁에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히 내게도 있었다. 시댁에 들어서는 것은 마치 준비되지 않은 무대에 올라가는 것과도 비슷했다. ‘이거 먹어봤니?’, ‘이거 할 줄 아니?’, ‘찌개는 끓일 줄 아니?’ 그렇게 누가 물어보면 ‘그럼요’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못한다고 누가 구박하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살림에 능숙해서 남편 밥도 잘 챙겨주고, 살림도 척척 할 줄 아는 며느리로 보여야 마땅한 것 같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좀처럼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꽤 모범생이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그렇게 좋은 대학교는 아니지만 가고 싶은 학과를 선택해 내 진로를 위한 이런저런 대외활동도 했다. 다만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집안을 잘 돌보는 법'에 초점을 맞춘 기억은 없었다. 그게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시댁에서 내가 내보일 만한 능력치는 오직 집안일뿐이었다. 마치 학생으로서 학업에 소홀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듯이(이를테면 시험 전날 놀면 마음이 불안한 것처럼) 아내로서 집안일에 능숙하지 못한 것이 마치 죄지은 것처럼 느껴졌다. 진작 엄마한테나 잘 하지 않고, 결혼하니 갑자기 내 안에서 튀어나온 이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생각해보면, 결혼할 때 ‘아무것도 못 가르쳐서 보내 죄송하다’고 말하는 신부 측 부모님이 쉽게 상상되는 이유는 달리 있지 않다. 남자는 못해도 되지만 여자는 할 줄 아는 것이 ‘기준’이자 ‘평균’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장면을 우리는 드라마든 영화에서든 수없이 보며 자랐을 것이다. 사실 그 암시는 온갖 곳에 있었다. 우리 엄마로부터, 시댁으로부터, 학교, 직장과 사회로부터, 사소하게 던져졌던 사소한 압력들이 나를 능숙한 아내로서 기능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게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스스로에게 어떤 역할과 의무를 부여하느냐 하는 점이다. 순응할 것과 떠맡지 않을 것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밖에 자신이 속해 있는 수많은 집단 안에서 그러하듯이. 부엌에 섰을 때 낯선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에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에게 나 역시 그걸 알려주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명절에 일찍 내려오면 괜히 어색할 테니 밤늦게 오라고 저녁 8시에 도착하는 기차표를 끊어주셨다. 그래서 차례 지내기 전날 밤 시댁에 도착하면 음식 준비는 끝났고 이미 친척 분들의 술자리가 시작되어 있곤 했다. 나도 그 사이에 앉아 맥주를 두어 잔쯤 마셨다. 슬슬 술자리가 정리되려 하니 남편이 일어나서 접시를 부엌으로 치웠다. 그걸 본 시아버지가 반쯤 농담처럼 웃으며 말씀하셨다.     


“집에서 설거지 한 번도 안 시켰는데, 부엌을 다 들어가네.”

(그런데 사실 거짓말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남편, 당시 남자친구는 보통 저녁을 혼자 차려먹고 설거지도 했다. ‘팩트’로 의미가 있다기보다, ‘결혼하니 변한 아들’을 지적하는 실없는 소리였던 것 같다.)     


요즘에는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고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시자 시아버지가 멋쩍은 듯 덧붙였다.     


“귀하게 키운 아들이라 그렇지.”     


내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버님, 저도 귀하게 큰 딸이에요. 저도 설거지 하나도 안 하고 컸어요.”      


나도 결혼 전에 집안일 속성 코스를 밟진 않았다. 당연히 자랑은 아니다. 결혼하니 끊임없이 생성되는 집안일을 모르고 자랐다는 게 이제야 엄마에게 참 미안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 사실이 마치 ‘준비되지 않은 신부감’처럼 미성숙한 의미로 느껴졌다면, 이 순간에는 오히려 ‘남편과 동등한 존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과연 그것이 어른들의 귀에는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으나.   


귀하게 큰 아들이 결혼해서도 마냥 귀한 대접을 받길 바라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냥 ‘못한다’고, ‘해본 적 없다’고, ‘남편이랑 같이 하면 된다’고 말한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바빴으니 좀 못해도 되지 않는가. 미리 준비하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으니 나랑 똑같이 집안일에 서툰 남편과 같이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일이다. 물론 남편은 내게 귀한 사람이지만, 그게 그가 애지중지 귀하게 자랐기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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