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도망치는 중입니다.

15살부터 18살까지

by 그냥 이현정

처음 음악 학원에 간 건 열다섯 살 때였다. 다니던 중학교 근처 학원에서 노래를 배운 게 내 생애 첫 ‘보컬 레슨’이었다. 한 달 즈음 다녔을까. 엄마는 보컬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용건은 간단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처음에 엄마는 당황해서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며 멍해졌다고 했다.
​“현정이가 음악 그만둘 수 있게 도와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놔둘까요?”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서울 목동에 있었다. 전국 학군 10위 안에 드는 동네였다. 자식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음악 학원을 보내주는 부모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의 말에 엄마는 물었다.


​“현정이가 재능은 있나요? 잘하나요?”
​선생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지금 안 꺾으면 평생 음악 한다고 알짱거릴 겁니다. 애매해요.”


​겨우 열다섯 살인 아이를 일주일에 한 번, 한 달. 고작 네 번 보고 결론을 내린 선생님을 그때는 미워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당과 다름없었다. 나는 정말 평생을 음악 주변에서 알짱거리며 살게 됐으니까.


​오기가 생겨 음악을 진로로 삼겠다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선포했을 때, 가장 먼저 돌아온 건 고모의 말이었다.
​“우리 집안에서 딴따라 하나 나올 줄 알았다.”


​아빠는 20대에 기타리스트였고, 그 시절 우리 집엔 드럼 세트가 있었다고 했다. 큰아빠는 노래자랑에서 2등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당연한 내 차례가 온 셈이었다. 아빠는 내가 ‘아이유’가 되길 바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마치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줄 존재로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이유는 열여덟 살에 멈췄다. 자기 객관화가 지나치게 잘 됐던 나는, 음악으로 밥 벌어먹고살기엔 스스로가 영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대학에 가서 나보다 잘난 사람들과 함께 노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현명하게 도망쳤다.


​그렇게 열아홉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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