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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가는 물고기 Mar 30. 2021

#45 무현각의 실체

태평궁 바로 옆에는 궁과 연결된 작은 전각이 하나 있었다.

누구도 드나들지 않으며, 전각의 존재 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처럼 치부 되는 곳.


과거 그녀의 수많은 정인들과 밤을 보내던 곳이었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모든 악행이 저질러진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의 원주인은 태평공주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 측천무후!

측천무후가 죄를 지은 황족들을 가두는 곳으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무현각’     


측천 무후는 각 왕부마다 무현각을 짓게했다.

그들 스스로를 가둘 수 있는 감옥으로, 그 존재만으로도 여제를 떠올리게 만들었기에 대부분은 냉궁으로 사용됐다.      


 자가 된 이융기는 유년시절을 황궁에 있는 무현각에서 보냈으며, 지성은 무현각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그 중 태평궁에 있는 무현각만큼은 그 의미가 달랐다.      


주로 무후가 딸을 찾아왔을 때 머물던 곳이었기에 주변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흑치상치는 무후의 명령으로 이곳에 팔괘도를 이용한 미로를 만들었다.     


  다른 곳과 달리 유난히 은밀한 곳에 만들어진  이 전각에  태평공주는 무후를 위한 사내들을 준비시켰다. 그렇게 여제의 하룻밤 시침을 든 사내들은 이곳에 갇혀 지내다 죽거나 도망치다 죽었는데. 단 한 사람도 이 팔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무현각은 이 두 모녀의 욕망의 채워주는 곳이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인들이 만들어 놓은 타락의 분출구. 묵철은 빈 전각에 홀로 앉아 휘가 두고 간 무릿매를 멍하니 보며 비실 웃음을 흘렸다.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다.      


“돌궐의 가한이라는 사람이 고작 여인 하나를 잡지 못하다니! 실망이 큽니다.”     


반쯤은 부서진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평공주의 눈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절대 빠져 나갈 수 없는 덫이라고 여겼다.    

  

“공주께서는 그 여인을 잡아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이오?”

“그렇게 묻는 다면 제 대답은 하나뿐이오.”     


그녀의 오만한 얼굴이 묵철의 시야에 들어왔다.


“감히 내 앞에서 다시는 빳빳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묵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여 휘, 그 여인을 잡고자 하는  일이 살고 죽는 이유가 아닌 고작 그녀의 고개를 숙이게 하기 위해서.


역시오만한 대당의 공주다웠다.      


“그래서 내가 당의 공주를 며느리로 데려가고 싶은 거요!”     


태평공주의 눈이 못마땅하게 휘어졌다.      


“그 오만하고 건방진 눈이 애원과 절망으로 바뀌는 걸 보는 게 참 즐겁단 말이야! 크흐흐”     


태평공주는 마치 벌레보듯 그의 웃음을 피해 전각을 나왔다.

소름끼치게 싫은 남자다. 그 얼굴을 다 덮는 북실한 털도 싫었고, 웃을 때마다 야만인처럼 흘리는 괴상한 웃음소리도 싫었다.     


 과거에 문성이나 금선처럼 돌궐로 시집을 간 공주들은 그곳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태평공주 또한 여제가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 혼인은 이루어지지 않을 테요!”     


태평공주는 사납게 쏘아붙였다.      

그러나저러나, 지금 묵철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팔괘도를 빠져나가다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녀는  병사를 풀어 출구와 입구를 막았다.  미로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쥐새끼 같은 년.’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첫 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이 태평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있는 이가 이 대당에서 몇이나 될까.      


장안을 구석구석 뒤져서라도 잡을 것이다. 그 여자는 지성의 목줄이니, 반드시 제 앞에 무릎을 꿇리리라.           




지성은 침대에 누워 조용히 잠이 휘의 얼굴을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성이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그녀의 평안이었다.


더 이상 그녀가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생기는 것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녀는 회임중. 반드시 지켜내야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자신은 아비처럼 선택을 강요 당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태자가 황위를 이어야한다.      


“다녀오면 바로 낙양으로 갈 것이니 채비하여라!”     


자신을 따라나서려는 장소에게 명령을 내리고 지성은 객잔을 나섰다.

지금쯤 궁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장소에게 들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곳이 무현각이었다니. 태평공주는 휘를 정말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지성은 바로 태자 이융기를 찾아갔다.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 이융기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장안을 떠나 있거라.”


그의 말에 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낙양에 내려가 할 일이 있을 듯 합니다.”     


지성이 말하자 태자도 또한 그의 말에 동조했다.

    

“지금 낙양에 수해가 극심하니 네가 가보는 것이 좋겠다 폐하께 고하마.”     


최근 몇 년간 낙양에는 홍수로 피해가 극심했다. 특히 낙수범람으로 주변의 수천가구들이 침수피해를 입어 예종은 특별히 이들의 조세를 감면 시켰다. 그러나 여기서도 태평공주의 비옥한 토지는 예외였다.      


이렇게 재해가 극심함에도 태평공주는 제 땅의 조세를 감면시키거나 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단 한줄도 장안의 함원전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지성과 태자는 태평공주가 가진 낙양의 주요 상권과 토지에 대한 조세 문제를 집중 적으로 파보기로 했다.      

그가 다시 객잔에 도착했을 때, 장소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여염집 여인처럼 평민복을 입은 휘가 말끔한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셨던 일은 잘 되었는지요?”     


자성은 따뜻한 미소로 자신을 반기는 그녀를 포근히 안았다.      


" 이곳을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왕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왕부로 돌아갑니다. 낙양으로.”     


낙양이라는 말에 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고 싶은 곳이었다. 마치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영노와 무천.

이제는 볼 수 없는 이들이 하나씩 눈 앞어 어른거렸다. 마차 앞에 이르자 지성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마차정도는 혼자 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니되오.”     


마차에 오른 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그녀가 앉을 자리에 푹신한 방석을 깔아주고, 비단으로 만든 무릎덮게로 그녀의 아랫배와 다리를 감쌌다.      


객잔을 출발한 마차는 부지런히 주작대로를 달렸다. 대로는 분주한 사람들과 화려한 마차들로 북적였기에 아무도 그들을 태운 작은 마차를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군사들이 곳곳에 많이 보이는군요.”

“태평궁에서 그대를 찾는 탓이라오.”

“흠!”     


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태평공주가 보인 그녀에 대한 적의,      


“태평궁에 숨어들었던 자객을 찾는다 합니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장소가 조용히 그들에게 알렸다. 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멀쩡한 얼굴로 다시 마주한다면 그녀는 저를 어떻게 볼까.      


“무현각이 그곳에도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무현각은 장안과 낙양의 모든 황궁과 왕부에 있소.”     


대답하는 지성의 얼글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왕부의 무현각이 불에 타던 날. 회한에 잠기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많은 서고와 무기들이 불에 타버렸음에도 그에게는 한 점의 아쉬움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이유의 답이 태평궁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팔괘도.     

마차는 그들을 찾는 군사들 사이로 유유히 지나쳐 갔다. 도성을 빠져나온 마차는 낙양으로 방향을 틀었다.      

휘는 내내 창밖을 보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서 지성은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 이름을 생각해 보았소.”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던 그였다. 지성의 크고 아름다운 황갈색 눈빛이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그런 지성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와 숱한 밤을 보냈고, 지금은 그의 아이를 배태했음에도 아직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을 오롯이 기쁨으로 받아 들여 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남자는 아직도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여겨졌다.      


“남자 아이면 거(巨), 여자아이면 려麗라고 짓고 싶은데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저는 무조건 좋습니다.”     


휘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그녀의 가슴이 기쁨으로 꽉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있었다.


부디 이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이번에는 태자께서 양위를 받으실 거요!”    

 

양위라는 말에 휘는 다시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혹여 위험한 일에 가담하십니까?”

“내가 아무리 위험한들, 지금까지 그대가 겪은 것보다는 덜하겠지.”     


 그는 땅이 꺼저라 한숨을 쉬었다. 생각할수록 피가 마르는 기분을, 이 여자는 알까. 세상이 무너진다해도 조정이나 정치에 가담하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 믿어왔다.      

결국 이 신념을 깨버린 것은 모두 다 이 여인 때문이었다.     


태양보다 빛나는 아름다운 나의 신부.


태자는 지성의 변화를 매우 반겼다.

언제나 그가 정치에 깊이 개입을 하기를 원했다.      


황족이 정치를 해봤자 명만 재촉하는 거라 말하며 슬금슬금 피하던 예전의 그의 모습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이다.


드디어 멀리 북망산이 병풍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낙양성 초입에 들어 왔을 무렵, 이곳을 떠나기 전과 풍경이 사뭇 달라져 있었다.      


온통 홍수의 피해를 입은 남시(南市)는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는 복구작업이 한창이었다.


작년까지는 강 하류의 이천호 남짓이었던 피해 규모는 만호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낮게 깔린 하늘만큼이나 민심은 흉흉하고, 서로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음산했다.     

 

물 위에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던 놀이배도 사라졌고, 곳곳이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여기저기 패여, 자칫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휘는 석달만에 다시 백목당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주인의 세심한 손길을 받던 꽃과 식물들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정원을 바라보는 방문을 열어놓자 매혹적인 꽃향기 대신 푸르른 초록의 향기가 폐 속 깊숙이 들어왔다. 곳곳에 여름의 향기가 짙게 배어 나고 있었다.      


“마마!”     


밖에서 급한 발걸음과 함께 들어온 이들은 홍비와 찬비였다.      


“어서들 오시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온 두 시녀는 홍수를 보자 눈물부터 터뜨렸다.

특히 저를 평강리에서 잃어버린 홍비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전하께서 저희들을 미리 보내셨습니다.”

“마마께 정말 송구합니다!”     


가뜩이나 없는 살이 홀쭉하게 빠진 홍비와 달리, 달덩이처럼 환한 천비는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얼굴에서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어서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마! 감축드립니다! 이제 회임을 하셨으니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특히 뱃속의 아기씨를 생각하셔서 정말 잘 드셔야 합니다!”     


휘는 울먹이는 홍비나 혼자 신나게 떠드는 찬비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때 누군가 급하게 백목당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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