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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Jul 25. 2022

도깨비풀처럼 달라붙은 말들

지난 수요일, 이혼소송을 맡아주고 있는 변호사들을 만나고 왔다.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곳을 나서는 순간까지 나는 한껏 움츠러들었다. 인권활동을 하면서 종종 마주치기도 한 사람들이고, 들르기도 한 공간인데, 이번엔 그곳이 너무 버거웠다. 수치심. 나는 깊은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배우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가정폭력 생존자, 그 정체성이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한다. “사랑받지 못했어”, “그럴만했나 보지”, “성격이 좀 세더라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만 같다. 사실은 내가 나에 대해 하는 말들이다. 실은 매 순간 나를 의심한다. 활동가 치고 사치스러운 취향인가? 활동가 치고 너무 많은 약속을 잡는 건가? 활동가 치고 여행을 너무 자주 가는 건가? 활동가 치고 너무 많은 걸 사는 걸까? 그가 나에게 쌍욕을 섞어했던 말들을 아직도 듣고 있다. 다른 누구로부터도 아닌, 나로부터.


그는 내가 최저임금을 받는 주제에 너무 많은 소비를 한다고 했다. 발레와 여행이 내 분수에 안 맞는 취미라며 그의 희생(경제활동) 덕분에 내가 그것들을 누리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런 주제에 집안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물건을 던졌다. 그리고 내가 박사과정 진학을 계획하거나, 작은 평화단체에서 미래를 꿈꾸는 것이 사치라고 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주변의 활동가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지 보라고 했다. 그들이 은퇴하고 나면 뭐가 남겠냐며, 그렇게 살고 싶냐고 물었다. 그의 말을 온 힘 다해 부정하고, 반박도, 싸움도 했다. 아주 맹렬하게 싸웠다. 다행히, 싸우는 건 내 직업이었다. 싸움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인터넷과 책을 뒤져 논리를 모으고, 전략을 세워 설득을 시도하고, 나의 말에 힘을 실어줄 친구들과 상담사를 만났다. 깊게 심호흡을 하며 설명을 해냈다.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것이 나의 일상을 망가뜨리고 있고, 그런 행위가 바로 폭력이라고. 근데, 보기 좋게 실패한 거다.


그의 말에 굴복한 순간은 단언컨대 단 한순간도 없다. 그렇지만 의심과 자기 부정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그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선 그 말을 곱씹어 봐야 했다. 그의 말을 수없이 ‘다시 듣기’하는 과정에서 그 말들이 나에게 끈적하게 달라붙어 버렸다. 마치 수많은 돌기가 달린 도깨비풀처럼.  어릴 적 동네 뒷산으로 등산을 다녀오면 언제 붙었는지도 모르는 도깨비 풀이 옷에 달라붙어 아무리 털어내도 끈끈하게 붙어있곤 했다. 그의 말이 산행 후의 도깨비풀처럼 끈질기게 따갑다. 그와의 결혼 여정이 끝난 지 6개월이 훌쩍 넘었는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한 문장씩 천천히 적는다.

나는 게으르지 않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한다.

나는 도전과 활동을 사치라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행과 발레를 취미로 삼아도 괜찮다.

나는 책을 사서 읽어도, 빌려서 읽어도 괜찮다.

나는 동료 활동가들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고 싶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퇴근시간의 만원 지하철에서 연신 눈물을 훔친다. 내 삶에 그의 말이 없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20대 초중반이었던 나는 나의 모든 선택에 자신이 있었다. 기숙사 방을 빼서 도서관에 거주하며 논문을 썼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여행을 다녔다. 식빵 한 봉지와 잼 한 병으로 며칠을 버티면서도 마냥 행복했고,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옥탑에 살았던 봉천동 달동네에서는 역시 가난한 이웃들과 부대끼고, 사랑했다. 가끔 미워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삶이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비참하거나 불쌍해지진 않았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작은 풀뿌리 단체에서의 활동을 감사히 선택했고, 선배 동료들이 만든 세상을 신나게 누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신의를 다하고 싶었고, 내가 보살핌 받았던 만큼  다른 이들에게 내 몫을 내어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자신만만했던 내가 우습게, 도깨비풀처럼 내게 달라붙어버린 그의 말은 나를 자꾸만 비웃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아내 폭력을 겪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가슴이 쿵 내려앉고, 조그만 소리에도 움찔하는 순간들,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순간들을 무수히 많이 만나겠지. 어떤 선택 앞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주춤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앞으로도 종종 나를 괴롭힐 거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평가하는 질문들에 끊임없이 변명을 늘어놓게 될 거다. 정말 애석하게도 피하거나, 없애버릴 수 없는 기억의 작용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이제는 이 기억들을 가진 몸과 어떻게 잘, 사이좋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한다. 썩 맘에 드는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진 않지만. 시간이 아직 많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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