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탈출 이후 나에게 찾아온 많은 변화 중에 가장 반가운 변화는 다시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욕과 물건이 날아드는 일상을 견뎌내고 있을 땐 도무지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라 애처로이 책을 만지작거리며 발만 구를 뿐이었다. 그와 함께 살던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친구집, 엄마집을 전전했다. 그러다 마침내 고양이와 나만의 작은 집이 생기고, 내 책상과 책장을 되찾아오면서, 내가 뭐 잘못한 건 없는지 점검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가지게 되었을 때, 거짓말 처럼 책이 읽혔다. 종이에 찍힌 글씨가 활자가 아닌, 의미로 읽히던 날, 나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게 뭐라고.
닥치는대로 책을 집어들고 펼쳐서 읽는다. 달리기를 하는 것 처럼 글자들을 읽는다. 다리에 힘이 돋는 걸 느끼듯, 글을 읽게 된 힘에 기쁘게 젖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책을 읽는다. 가끔 눈물 흘리고 탄성을 지르거나 욕을 내뱉으면서. 책읽기는 나에게 일종의 축하이자 정화 의식이다. 그러다 어느 날 집어들게 된 책이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 아앗. 정지 정지! 표지에 쓰여있는 ‘러브’라는 단어에서 끼이익 전력질주를 멈췄다. 목차까지 어찌저찌 읽어갔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로 가득찬 그 책을 열어볼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최대한 멀리 멀리. 너무도 읽고 싶은 그 책을 책장 한 켠 구석에 꽂아두고, 흘끔흘끔 쳐다만 볼 뿐 다시 뽑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와 사랑에 빠졌던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하고 있구나. 랜덤으로 틀어놓은 플레이리스트에 ‘사랑타령’하는 노래가 나오자 신경질을 내며 급히 다음 음악으로 넘겨버리는 나를 보고 알았다. 나는 그를 사랑한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영혼의 단짝을 만난듯 단숨에 동거와 결혼까지 휘리릭 해치워버렸던 나. 그런 내가 결혼 3년만에 가정폭력 생존자라는 이름을 달고 증오와 두려움으로 미친듯이 몸부림치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를 사랑한 나를 갈갈이 찢어 죽이고 싶다.
생각해보면 그를 향한 사랑을 멈춰야 했던 순간은 수없이 많았다. “나는 네가 녹색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명동 길거리에 다니는 여자들이랑 똑같네.” 결혼식을 위해 스몰웨딩샵에서 30만원짜리 드레스를 빌리겠다는 나에게 그가 한 말이다. 본인처럼 이미 있는 옷을 입지 않고 돈을 쓴다며 사치스럽다고 했다. 사회초년생이던 그와 나는 면접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지 얼마 안됐을 때였고, 그에게는 면접을 위해 맞췄던 정장이 있었지만, 나에겐 그런 게 있을리 만무했다. 시민단체 활동하면서 정장 입을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명동 길거리에 다니는 여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었을까. 자신의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겉모습을 꾸미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먹고 싶은 걸 먹는 여자들을 경멸하던 세상의 말들과 다름 없는 말이았겠지. 된장녀, 김치녀 같은 말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그와 같이 살던 집에서 잠시 나왔지만, 파혼을 결심하진 못했다. 사람들 앞에서 신성한 사랑의 서약을 하고 나면 달라지겠지. 그건 온전히 우리가 서로를 제일 아껴주겠다고 하는 큰 약속이니까.
그게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되기까진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쌍욕을 처음 뱉었던 날, 쌍욕을 뱉고도 그게 표현의 자유라며 비아냥거렸던 날, 그와 싸우다 피를 뚝뚝 흘리며 혼자 응급실에 갔던 날, 처음으로 1366 가정폭력 상담을 했던 날, 그가 나를 향해 처음 물건을 던졌던 날, 나는 그를 그만 사랑했어야 한다. 왜 나는 멈추지 않았을까.
‘부부싸움 칼로 물베기야’, ‘결혼하고 2년은 다 죽도록 싸워’ 이런 말들을 참고로 삼아 그를 이해하려 애썼다. 내 사랑의 힘으로 그를 바꾸고 설득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심한 가정폭력을 겪었으니까, 사랑해주고 보듬어주면 그도 나를 아껴주겠지. 별로 어려운 생각의 경로는 아니었다. 내가 십여년간 자라고 생활했던 봉천동 공부방에서는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졌다. 학대와 차별이 난무하던 그 동네에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에. 사랑은 내 전문영역인걸. 물론 그를 사랑만 한 건 아니다. 그가 물건을 던지거나 욕을 하면 나도 화를 냈다. 집안일가지고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이게 왜 당연히 내 책임이냐고 악착같이 따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자책했다. 엄마는 나에게 욕을 하는 그와의 결혼을 제발 끝내라고 애원했지만, ‘엄마, 내가 설득할 수 있어. 알잖아. 우리 봉천동에서 겪었잖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잖아’라고 답했다.
게다가 그는 ‘예사 남자’는 아니었다. 그와는 생태와 평등의 가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만났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무려 등짝에 ‘페미니스트’라고 크게 적힌 자켓을 입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girls do not need a prince’ 레터링이 프린트된 메갈 티셔츠를 선물해주었으며, 우리는 그 티를 입고 안희정 미투 집회와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해 깃발을 흔들었다. 그는 시킨 사람도 없는데 변기에 앉아서 오줌을 누는 남자였고, 그보다 10살이나 어린 내 동생에게도 반말 한번을 한 적이 없는 남자였는걸. 이론과 실전까지 되어 있으니, 이제 욕과 물건을 던지지 않게 하는 것 정도는 쉽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나 정말 오만방자한 사람이었구나. 사람들이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같은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덴 이유가 있을텐데, 고작 사랑타령 따위로 그의 모든 면을 보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우습다. 그의 자켓에 적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하나에 모든 걸 내던져버린 내가 안쓰럽다. 여자들이 그 단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으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사회에서, 그 남자의 자켓에 적힌 그 단어는 너무도 달콤했다. 도파민이 마구마구 솟을만큼.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 단어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여자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조금의 위험감수도 없는 그의 자켓이 왜 그리도 낭만적이었던걸까.
사랑이란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가 나를 다치게 해도 그걸 내버려두고, 심지어 이해하는 게 사랑인 줄 알았다면, 나는 사랑이라는 걸 크게 잘못 배운 거다. 나는 언제쯤이면 ‘사랑’이라는 단어로 가득한 <올 어바웃 러브>를 읽어볼 수 있을까. 나를 지금보다는 덜 미워하게 되면, 그 때는 그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