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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 피카 Dec 28. 2020

이집트 타임

너와 내가 맞추어 가는 시간


남편은 아주 정확하고 똑부러지는 성격이다. 내가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는것에 환경이 달라지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면 남편은 적응 하는 것에 시간이 좀 걸린다.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손수 에너지를 내며 흐트러져 있는 것을 맞추어 가는 스타일이고, 나같은 경우는 조금은 뒷걸음 물러나 있다가 둔한 마음에 불편함이 느껴지면 그때야 상황을 직시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물론 13년을 함께 살다보니, 서로 성격이 닮아 가기는 한다. 남편의 성격은 조금 완화되었고 나의 성격도 조금은 까탈스러워 진다.반대되는 두사람이 만나서 서로 맞추어 가는 것이 결혼생활의 묘미겠지.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지만 말이다. 

이집트의 집이 계약을 한지 3주가 지났는데도 완성이 되어있지 않았다. 집은 우리가 도착전까지는 위시리스트와 청소가 되어있어야 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이집트로 입국하고 도착한 집은 그야말로 페인트칠만 끝낸 상태였던 것이다. 사실 보름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아직 소파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이들방 책상도 들어오지 않았다.그리고 인터넷과 티비 연결은 더 소식이 없다. 더운나라의 사람들이 느리다고 했던가, 이곳에서 한국에서처럼 빨리빨리를 원하는게 맞지 않지만, 해결되어있지 않은 집의 상태를 보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남편에게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컸으리라. 사실 이런상황이 나도 좋지는 않다. 남편은 내가 불편함을 느끼기도 전에 불만을 집주인과 부동산업자에게 전화해서 토로를 한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열이 오르는 시점이 다르구나, 하지만 남편이 그렇게 한바탕 집주인과 싸우기직전의 통화같은 일을 하고 나면, 뭔가 내가 불만을 터뜨려야 할 몫 까지도 남편이 다 내준 것 마냥,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먼저 이집트에 살았던 한분의 조언이 생각난다.이곳에서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잊고 있으면 어?! 생각보다 빨리 해주네~ 하고 느끼게 된다고,지금 우리에게는 마음의 여유, 조금은 흐트러져도 괜찮아~!를 배우고 있는 시간같다. 공항에서 샀던 데이터를 쓰면서 블로그에 이집트의 생활을 전했다. 아이들 또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며칠 지나지 않자 데이터는 바닥이 낫고, 데이터 없는 하루를 살아본다. 생각보다 여러 가지에 집중하게 된다. 물걸레로 바닦을 닦고,마늘을 까게된다. 인터넷연결이 없는 세상의 날것을 느껴보는 나날들~ 진짜 나의 삶의 민낯을 만나볼수 있는 시간이 시작 된듯하다.


10년전 이란에서 2년 살았던 적이있다.6개월짜리 큰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탓고 수도 테헤란에서 3시간이나 떨어진 시골도시에서 살았다. 그곳역시 너무 열악했고, 그마을에 외국인이라고는 통틀어 우리가족 세명밖에는 없었으니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그곳에서는 매일매일 이란친구들의 초대로 이란인의 집에 놀러갔었고 베이킹을 하고 진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 남편과 나는 이란에서 살았던 시절을 아주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도 당장은 남편이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구경할 것 많은 이쁜 이란에서 주말마다 우리는 여행할 생각도 못하고 집에 우울하게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곳에서의 정지된것만 같았던 시간이 추억이 되었고 오히려 그때가 좋았다 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이곳 이집트의 생활도 10년후에는 추억하고 행복해 하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살면서 우리가 해야하는 것들은 이곳을 더 즐기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불안함과 불만과 짜증에 내 생각을 맡기지 말고 이곳만의 시간, 이집트타임을 즐기는 것이다. 데이터 없는 일상, 나의 삶의 민낯과 마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짜 인생이고 삶의 날것 아닐까? 한국에서의 빨리빨리의 삶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음을, 느림보 삶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나의 인생의 시간은 흘러간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맞추어 살아볼까. 고민해야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해야할 일들은 많고 사색할수 있는 시간이 더 생긴것이고 선물같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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