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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on de Madame Saw May 11. 2021

인어의 눈물

나는 고스트 싱어였다.


*글 중간중간에 삽입된 노래 가사는 본인이 참여한 해당 곡이 아닌 EXO의 곡의 가사임을 밝힙니다.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 케이팝의 유령 편을 보게 됐다. 자신이 쓴 곡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고스트 라이터들이 잘못된 업계 관행을 고발한 편 말이다. 이제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가웠던 그 방송을 보고 있자니 내가 겪었던 일이 생각나 아주 오랜만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유명한 음악 집안에서 태어나 성악을 전공하다가 온갖 부조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상종 못할 바닥이라 여겨 학교를 중퇴하고 아카데미 작편곡과를 졸업한 후 어느 작은 레이블에 아티스트로 들어갔다가 졸지에 변을 당했다.(옳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당시 가이드 보컬(작곡가가 가수에게 곡을 주기 전에 미리 불러 녹음하는 것) 아르바이트를 자주 하던 때인데 아카데미 동기였던 같은 레이블의 작곡가 오빠가 여자 아이돌 출신의 유명 여성 연예인과 함께 곡을 발표해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한 래퍼와 한 여성 연예인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함께 앨범을 내기로 결정했다며 자신이 쓴 곡의 가이드를 나에게부탁해온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곡에 가사가 없던 상태라 나는 가이드 보컬이 누구나 그러하듯 즉석에서 아무 영어 문장이나 지껄여 노래를 녹음했는데 얼마 후 본 녹음이 끝나고 작곡가 오빠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고 이유인즉슨 해당 여성 연예인이 영어 발음도 안되고 노래를 너무 못해서 자신의 앨범에 자부심이 컸던 래퍼가 도저히 이대로는 앨범을 낼 수 없다며 코러스는 내가 해줘야겠다고 했다는 거다. 나는 가이드를 했던 것과 똑같이 녹음을 해줬고 얼마 후 앨범이 CD로 발매됐는데 들어보니 결과물은 모두 내 목소리.



코러스의 사전적 의미는 메인보컬을 꾸며주는 배킹 보컬이란 뜻이다. 그러나 해당 곡의 보컬라인은 메인보컬과 코러스로 나뉜 게 아니라 보컬 트랙을 여러 개 쌓은 형태였고 내 목소리로 쌓은 보컬 트랙에 그녀의 목소리가 잘 티가 나지 않게 겹쳐져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 이름은 앨범에 코러스로 적혀있었다. 한마디로 대나무 숲에 참나무가 한 그루 껴있단 이유로 참나무 숲 간판을 달아버린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노래 가사는 내가 가이드 보컬로 녹음한 그대로 나갔다. 그러니까 래퍼가 직접 쓴 랩 부분의 비중이 더 크긴 하지만 노래 가사도 내가 쓴 셈인데 본인은 해당 레이블에서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곡을 검색해보면 저작권 협회에 가수는 그 여성 연예인으로, 작사는 피처링 래퍼로 등록되어있고 내 이름은 없다. 나는 사건 이후로 해당 레이블에 본인의 실연권을 주장하며 앨범을 전량 회수하고 본인의 기여도에 맞는 일정액을 지급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물론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바닥이 워낙 상식 이하니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나는 그 때문에 큰 상처를 받고 업계를 떠나 십 년도 더 지난 아직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이후로 그쪽 업계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꿈을 버렸다. 현재 나의 주 수입원은 택배 상하차다.



“너의 그 사랑과 바꾼 상처 모두 태워버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진 않고 먹고살고 있다. 시도는 몇 번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뮤지션들과 술을 마시다가 “나도 앨범 낼래!”라고 한마디 했다가 뿅 하고 앨범이란 게 나오고 목소리가 이렇게 좋고 노래를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다는 대중의 칭찬을 들으며 웃으며 고맙다는 댓글을 쓸 수 있고 10만에 가까운 팔로워를 둔 인플루언서이자 여전히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그녀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건 확실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음악 이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고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뭐 하나 도전하지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나 전전하며 다른 일을 분명하고 있음에도 그냥 스스로를 실패한 음악가라고 생각했고 가끔 그때 버티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고작 그거 하나 극복하지 못하고 천직이라 여겼던 음악가의 길을 포기했다며 끊임없이 자책하며 살아온 것 같다.



“엇갈릴 수밖에 없는 그만큼

더 사랑했음을 난 알아  ”



당시 동종업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무도 내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거의 유일하게 내편이 되어줬던 한 유명 소설가 선생은 끝까지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했었는데. 물론 얼마 후 그분이 해당 여성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그 위안마저 상처로 바뀌었지만. 그런데 방송을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조금 안심 비슷한 게 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바닥은 여전하구나. 내가 남아있었다고 해도 남은 건 더 큰 상처뿐이었겠구나.



“Don’t cry

뜨거운 눈물보단

차디찬 웃음을 보여줘 “



육체노동자가 늘 그러하듯, 건강 문제로 퇴직했고 돈은 없지만 술은 꼭 마셔야 하는 일용직이 늘 그러하듯 어젯밤에도 방송을 보며 술을 마셨다. 얼마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방송을 본 이후로 기억이 없고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발견한 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욕실 슬리퍼 한 짝과 엑소의 ‘Baby don’t cry(인어의 눈물)라는 노래의 검색기록이었다. 왜 하필 갑자기 그 노래를 찾아들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계속 반복 재생하며 조금 울었던 기억은 나는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목소리를 잃은 인어와 같다고 여겼던 걸까? 인어공주 스토리를 왕자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그 가사를 듣고 위안을 얻으려 했던 걸까?



“Baby don't cry tonight

어둠이 걷히고 나면 없었던 일이 될 거야

물거품이 되는 것은 네가 아니야

끝내 몰라야 했던 내 사랑이 널 지킬 테니”



뮤지션들은 항상 나는 노래하고 싶다는데 나는 노래하기 싫다. 사람들이 말하기에 내가 잘한다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잘하고 인정받는 게 노래실력이었다. 가장 좋아했었고 가장 잘했었지만 언제부턴가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라이브 방송 말고는 노래는커녕 음악을 듣지도 않는다. 이건 사랑하는 이 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송두리째 잃어버렸으니.



“눈부신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차라리 그 칼로 날 태워줘”



그래서 그럴까? 나는 내가 어떤 부분에서 실력을 인정받을 때, 이쪽으로 나가보라는 말을 들을 때 내가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것을, 아니 내손으로 찔러 죽였다는 것을 모두가 잊은 것만 같아서, 그런 사람은 잊고 자유로워지라는 말처럼 들려서 솔직히 많이 슬프다. 특히 가족들이 그렇게 말할 때. 왜 다시 음악을 하라고, 포기하지 말라고는 말해주지 않는 걸까? 그만큼 고된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네 눈 속에 가득 차 오르는 달빛

소리 없이 고통 속에 흘러넘치는 이 밤”



그 사건에 대한 분노는 많이 표출했으면서도 정작 힘들었고 여전히 힘들다는 말은 지금껏 하지 못했다. 아니 감히 스스로가 나는 그 일 때문에 아직도 힘들다는 걸 인정 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다.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 누구나 겪으며 사는 듯한 시답잖은 일에 징징대는 한심한 인간으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고 조금의 용기를 얻은 난 오늘 이후로 그동안 회피해온 진실과 마주하려 한다. 나는 음악이 밉다. 음악 때문에 여전히 슬프고 힘들다. 그러나 노래하던 때가 조금은 그립다.


2021. 05. 11, 정소연(무직)


“이른 햇살이 녹아내린다

너를 닮은 눈부심이 내린다

길을 잃은 내 눈은 이제야

Cry cry c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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