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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on de Madame Saw Jan 13. 2022

머무는 곳의 주인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정자(亭子)들, 그 안에 의미를 담다.


나는 정자에 올라가는 걸 아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장롱이나 수풀 사이처럼 뭔가 구석지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으면 혼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있었다. 애기 때 엄마가 냉장고 박스로 예쁜 종이집을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매일 혼자 바나나 같은 과일을 가지고 들어가 먹으면서 종이 집 창문 밖으로 껍질만 던졌다고 한다. 정자에 올라가서 앉아있으면 그때 그 종이집 안에 있는 것 같은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살아있는 동안 한 인간인 나를 감싸주는 것은 내 작은 방이다.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치유하고 성찰하고 사유하면서 하루하루 나를 생성하고 빚어내는 내 작은 방. 우리는 내 작은 방에서 하루의 생을 시작해 내 작은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 앞을 내다본다. 그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다.” - 박노해,  『내 작은 방』, 2022 -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다시피 그들은 박스 같은 좁은 공간을 좋아한다. 고양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런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히 아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늑하기는커녕 편안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도 그들은 몸을 욱여넣어서라도 기어이 들어가고 만다. 그러니까 편의를 위해 하는 행동은 분명 아니라는 거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좁은 공간 점령’이란 기어코 그 자리의 주인이 되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이 담긴 일종의 의식 같은 거다. 나 역시 그러한 의미에서 정자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단순히 걷는 게 힘들어 쉬기 위해 머물던 곳이 아니라 날이 추워도, 밤이라 어두워도 기어이 머물고자 했던, 생존이 아닌 실존을 위한 나름의 ‘성소(聖所)’였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내가 사랑했던 모든 정자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인간은 몸으로 사는 존재이자 욕망의 관계로 사는 사회적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갈수록 소란라고 위험하고 급진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내면의 장소, 내 영혼이 깊은 숨을 쉬는 오롯한 성소가 필요하다.” - 박노해,  『내 작은 방』, 2022 -



나의 고향 서래마을, 그 추억 속의 장소



나는 다섯  때부터 서른세 살까지  30년을 서래 마을에서 살았다. 물론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보냈던 곳이라 감히 고향이라 말할  있을 것이다. 이곳 서래마을에는 내가 자주 가던 정자가  군데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지금의 서래 마을 스타벅스 골목의 은행나무 공원에 있던, 멋대로 이름 지은 ‘서래정이란 정자로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알고 있다. 늦둥이 동생이 초등학생이고 내가 고등학생쯤이었을  즈음 같이 만화방에서 만화를 잔뜩 빌려다가 서래정에 누워서 간식거리를 씹으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밤에 산책하다가 앉아서 음료수를 먹거나 동네 친구들과 함께 간단한 막차  노상을 하기도 했던 .


서래마을 은행나무 공원에 세워진 서래정



 다른 하나는 국립 중앙 도서관과 연결된 언덕 위에 있는 몽마르뜨 공원에서 남들이  모르는 샛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숨겨진 정자다. 잉어가 헤엄치는 작은 호수와  옆에 지어진 정자를 대나무 숲이 감싸고 있어 마치 비밀의 정원에 도달한 듯한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곳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곳곳에 있는 벤치와 몽마르뜨 공원은 한적하고 치안이 좋고 깨끗하며 화장실도 있어서   전까지만 해도 서래마을 주민들이 종종 간단하게 맥주 노상을 하던 곳이다. 그래서 동네 친구들과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2 장소로  정자를 소개해 주곤 했다.  좋았던  도서관 벤치와 몽마르뜨 공원은 유동인구가 많고 24시간 개방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서래마을 주민인 동창들조차  정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나만의 비밀의 장소 같아서 친구들에게 이런 멋진 장소가 있다는  알려주는  매우 뿌듯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곳엔 가로등이 없고 주위에 나무가 많아 밤늦게 머물기엔 조금 불편했다는 . 모기향을 챙겨서 갔던 적도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항상 그냥 내려왔던  같다. 다행인  수풀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철망 너머에 경찰서가 있어서 밤에 가도 무섭지 않았다. 낮에 혼자 산책을 하다가 마지막에  들르는 곳이었는데   번도 내가 그곳을 찾았을  다른 사람이 있었던 적이 없다. 가끔 산행하던 사람이 옆길로 지나가는  봤을 . 아직도  있으려나? 날씨따뜻해지면 오랜만에 올라가서 이름도 지어줘야지.


몽마르뜨 공원 산길의 대나무 정자. (사진 출처- 시민기자 윤혜숙, <서울 도심에서 만난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내 손안에 서울, 2020. 04. 28)



마음의 고향 한양, 홀로  나를 쉬게 해 준 


2  가족들과 함께 강남을 뒤로하고 종로구 구기동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모든 것이 언제나 새롭고 삐까번쩍한 강남의 개발된 분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지금 한강 이남 지역이 서울의 중심지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옛적엔 ‘한음이라 불렸고 한강 이북 지역이 진정한 도읍으로 여겨졌던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대문 근방 종로구 일대를 한양이라 부른다. 물론 내가 살던 구기동과 평창동은 사대문 안은 아니고 ‘성저십리(城底十里)’ 해당하는 곳이었지만 종로로 이사를   오래된 동네가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그곳을 나의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고 있다. 원래 혼자 있는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20 때는 왠지 그런 내가 틀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거의 의무적으로 누군가와  함께였던  같다. 그리고  때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때 즈음부터 왠지 홀로 지내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아마 이사를 오기  머나먼 타지인 호주에서  년간 혼자 살면서 그동안 없었던 독립심이라는  얻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특히 경복궁역 부근에 위치한 서촌의 한적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 휴일에 혼자 서촌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곳에도 정자가 하나 있었다. 서촌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모두 모이는 통인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유명한 정자에는 아쉽게도 항상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기에 괜히 쑥스러워 올라가 보진 못했다. 주민들은 그곳을 ‘통인정이라 불렀으나 구청에서  의견을 무시하고 ‘세종 마루라는 이름을 멋대로 붙여서 현재 주민과 공무원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이름까지 있었던  보니 그곳은 서촌 주민들에게 나의 ‘서래정과도 같은 곳이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구청에서 만약 서래정에 ‘서리풀 마루’ 같은 이름을 붙여버렸다면 나도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같다.)


서촌 통인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정자. ‘세종마루’라고 쓰여진 현판을 이에 반대하는 주민이 ‘통인정’이란 이름으로 고쳐 썼다.


구기동 본가에서 1년을 보내고 혼자  근방인 평창동으로 분가를 했다. 나는 서촌부터 집까지 이어진  길을 걷는  좋아해서  경복궁역에서 평창동까지  시간 이상을 걸어서 귀가하곤 했는데  길엔 내가 앞서 언급한 정자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유서 깊은 정자 ‘세검정(洗劍亭)’ 있었다. 비록 중요한 문화유산이라 올라갈 수는 없지만 바로 옆에 물이 흘러서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다. 세검정에 올라가는 대신  뒷골목에 있는 마치 호빗족이 숨겨놓은 듯한 지붕이 예쁜 식당에서 피자와 맥주를 마시고 취해 세검정 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평창동과 구기동 갈림길 쪽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곤 했다.  정자에 다다를  즈음엔 거의 항상 거리의 분위기와 술에 취해있었기에 항상  분위기를 잡기 두기 위해 다른 가게에서  마시고 들어갈지 그냥 들어갈지 고민했던  같다. 그냥 귀가하기 아쉬워 고민을 하며 머물던 장소였던 셈이다.


경복궁역에서부터 이곳 세검정까지 걸어오며 모은 들꽃들
호빗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세검정 골목에 숨겨진 예쁜 식당 ‘Song’s kitchen’



세검정에서 우리 집 방향으로 걷다 보면 작은 정자 하나가 있다. (사진 출처 - 카카오맵)


젊음의 도시 고양, 설레는 미래를 꿈꾸는 


도무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던 강남 부촌을 떠나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도 잠시, 호주에서 살던 때를 제외하면  서울에서만 살았던 내가 서울을 떠나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를 왔다. 사실 내가 선호하던 오래된 느낌의 동네로 가기엔 안전이 조금 걱정되었고 그렇다고 치안이 좋은 곳으로 가기엔 이미 서울 땅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서울을 떠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안전이 가장 중요했기에 신축 오피스텔로 입주했고 스타필드와 신축 고층 아파트  주위에 있는 모든  새것이었다. 강남 보다 부촌은 아니지만  개발된 첨단 도시, 나는 이곳을 젊음의 도시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동네를 둘러보느라 걷던  빌딩 숲을 지나고 나니 무려 마음의 고향에서 느꼈던 고즈넉한 향기가 가득한 가게들을 잔뜩 발견하고 말았다. 의도했던  아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정말  좋게도 이곳은 앞서 말한  곳의 장점을 모두 느낄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사   고작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정자가 두 개나 생겼다. 예전에도 종종 언급했지만 바로 내가 멋대로 이름 지은 ‘성역정 ‘소연정이다.


 "정자 지을 땅을 쉽게 얻을  있고, 재목을 쉽게 마련할  있어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고, 경치가 뛰어난 곳을 차지하여 재력을 자랑하지만,  마음은 반드시 진실로 즐기는 것은 아니다. (중략) 그들은 진실로 이곳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바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하루도 와서   없다. 그래서 결국 유람하는 이들과 한가한 선비들이 왕래하며 올라가 구경하는 곳이 되었을 뿐이다." - 엄경수, 부재 일기(孚齋日記) -


개발이   곳이다 보니 경기도에 사는 것이 서울에 사는 것보다 불편하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앞서 말했  우리  바로 앞에는 다행히  유명한 고양 스타필드가 있다. 가본 사람은 알다시피 이곳엔 모든   있어서 식사며 쇼핑이며 놀이며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5분이   되는 거리에 있는 스타필드 후문 쪽에는 동화 같은 정원과 서양식 정자가 하나 있다. 후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스타벅스가 있어 날씨 좋은  집에 가기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들고  정자에 앉아 광합성을 하며 마시면 어두운 기운이  물러가는 느낌을 받는다. 비록 내가 정자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정자의 이름은 문인들이 지어주던  관습이었던 만큼 나는 내가 정자의 이름을 지을 자격이 되는 가난한 선비라 스스로 주장하며  소중한 정자의 이름을 Star field 뜻하는 한자 성역(星域) 정자 () 자를 붙여 ‘성역정(星域亭)’이라 지었다.


고양 스타필드 후문에 있는 공원과 서양식 정자


우리  근처엔 겨울에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벽난로 옆에 앉아 쉬는 고양이가  기분을 느낄  있는,  둘러싸인 담을 뜻하는 ‘엔담이란 카페가 하나 있다. 스타필드는 알다시피 사람이 많고 자본주의적이며 팬시하고 양기가 넘치는 곳이고 그러한 기운에 걸맞게 성역정에도 양기가 넘치며 물론 그런 점이 내가 고향인 서울을 떠나 타지에 홀로 고립되었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줘서 좋았지만 나는 내향적인 사람인지라 혼자 조용히   있는 그늘 같은 곳이 필요했는데  카페는 무려 기와지붕에 벽돌로 지어진 데에다가 골목길에 위치하기까지 하여 나에게 있어서 완벽한 쉼터가 되었다. 그리고 카페 엔담과 우리  사이엔 성역정과는 다른 한국식 정자가 있다. 내방 침대 위에서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면 바로 보이는, 마치 연인이 데이트를 마치고 차마 헤어지기 아쉬워 마지막으로 머무는   놀이터 같은 곳이  것만 같은 . 나는 그곳에서 그렇게 어떤 인연이 이어지길 바라며 정자의 이름을 이을 () 자에 인연 () 자를  ‘소연정(紹緣亭)’이라 지었다. 스타필드와 성역정이 외부 세계로부터 양기를 채워주는 장소라면 엔담과 소연정은 조용히 내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감성적인 공간인 셈이다.  동네에게 나는 아직 낯선 이이고 아직 역사는 쓰이지 않았다.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는 나에게 달렸으니.


우리집에서 창릉천 너머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벽돌집 카페 ‘엔담’
가을의, 겨울의 소연정





인간은 세계가  점령되고 타락 해도,  최후의 영토인  심신을 지키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나를 마주하는 자기만의 방을 지킬  있다면, 우리는 다시 소생하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있다.” - 박노해,  『내 작은 방』, 2022 -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入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정자는  자체가 목적지라기보단 앞서 소개한 정자들처럼 지나는 길에 만나 잠시 머무는 ,  ‘다다르게 되는곳이며 삶도 이와 마찬가지로 방향을 온전히 내가 선택할  없고 모든 결과는 대개 우연의 산물이다. 그래서 살다 보면  목적지가 아닌 곳에 다다르게 되지만 내가 정자에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했듯 그렇게 내가 처해진 곳에 주인이 된다면 지금의 내가 그렇게 만들어졌듯 모든 것이 참되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나는 지금처럼 다다른 정자에 앉아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며  다리로 온전하게 나의 삶의 길을 걸어갈 힘을 다시 얻을 것이다.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주어져도 

 방에 세상의 좋은 것이  채워져도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 마음의 이니.

 , 사랑의 불로  마음의 방을 밝힌다.”

 - 박노해,  『내 작은 방』,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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