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라는 딱지는 그만 좀 떼십쇼.

by Salon de Madame Saw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됐다. 처음에는 이것이 사형 ‘선고’가 아니라 검찰의 ‘구형’에 불과하고, 실제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전두환 전대통령조차 결국 석방되었음을 떠올리며 윤 전대통령의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지 워낙 오래된 만큼, 사형제는 형식적으로만 존치될 뿐 실질적으로는 사형 폐지국에 가깝다고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론이 소비되는 양상을 보아하니, 지금의 정권 하라면 어쩌면 사형제 부활이, 그러니까 진보적 가치의 몰락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짧게 소름이 돋았다.

무엇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사람과 그의 지지자들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 소식을 접한 뒤 드럼을 두드리며 폭소를 터뜨리는 장면은 나로하여금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불쾌함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분노하는 이유는 저들이 좌파를 자처하고 국민들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좌파란 본래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의 586은 더 이상 ‘못 가진’ 운동권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권력과 자원을 쥔 기득권이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타인의 처벌과 불행을 오락거리 따위로 소비할 여유를 가진 상위 계층이다.

사형 구형이라는 국가 권력의 가장 극단적인 행위를 두고 웃고 떠들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태도는, 좌파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력 윤리와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좌파로 불린다면, 그럴수록 정치적 담론에서 노동, 임금, 주거 같은 실제 의제는 사라지고 분노의 소비만 남게 된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진 사실상 최초의 자식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이자, 웃고 즐기기는커녕 뉴스를 따라갈 여유조차 없는 예술 노동자이자 육체노동자인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그들을 한물간 기득권 세대, 즉 ‘틀딱’으로밖에 정의할 수 없고, 그 태도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공감도 느끼지 않으며, 더 이상 정치적 연대의 대상이라 보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별 따끈따끈한 이야기도 아닌 건 가장 큰 문제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비극이었고, 그들이 그토록 우려하던 청년 세대 우경화의 원인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나 있었으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저 그 연장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가 가까워 와서인지,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 시력이 퇴행한 탓인지, 그들에게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 모든 586 운동권 선배들에게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은 말이다. 어머님 아버님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좌파’라는 딱지, 아니 완장은 그만 좀 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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