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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지 Apr 16. 2023

[검은 창 너머의 세계] 도합 10점의 영화 <길복순>

영화 <길복순>

* 영화 <길복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3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길복순>은 ‘전도연 원톱 액션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전도연? 좋아. 액션? 좋아. 근데 전도연 원톱 액션 영화? 너무 좋아! 세간의 이목을 끌며 공개된 <길복순>은 단숨에 세계 여러 국가의 넷플릭스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길복순>은 청부살인 업계의 레전드로 불리며 킬러와 싱글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복순이 킬러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며 맞이하는 변화를 담은 영화다. 길복순 역을 맡은 전도연의 유려한 연기와 화려한 액션을 중심으로 시각적인 만족감을 가득 전해준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연출도 꽤 있었다. 첫 의문은 길복순과 한희성의 베드신이었다. 감독은 섹스를 리드하는 길복순을 통해 길복순이 가지는 권력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 같지만 글쎄. 사실 성적인 장면을 통해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흔한 클리셰다. 공적인 영역을 넘어서 사적인 영역에서까지 권력을 떨치는 모습을 통해 인물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길복순과 한희성의 섹스 역시 그런 장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길복순은 영화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칼’이며 모두가 인정하는 ‘레전드’다. 뒤에서는 “한물갔지”, “싸움 실력으로는 후배한테 밀리지”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이런 말들 또한 추측일 뿐, 그는 여전히 최고의 킬러다.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후배들과의 싸움 장면을 보면 길복순은 여전히 정상급 킬러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남성 후배와의 섹스를 통해 권력을 확인해주는 장면 없이도 길복순의 실력과 그가 회사에서 가지는 권력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 또한 여성과 남성의 베드신이 연출될 때 과연 여성 상위의 체위와 남성의 요구를 일단락시키는 말만으로 ‘권력을 가진 여성’의 권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여성의 대상화에 익숙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변성현 감독은 베드신을 통해 길복순의 “등근육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킬러’인 길복순의 등근육을 뽐낼 장치가 과연 ‘베드신’ 뿐이었을까? 일반적으로 ‘여배우’에게 기대되는 여리여리한 몸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서, 그 장면을 굳이 ‘섹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함은 여전히 남성적 시각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길복순이 차민규의 약점으로 명명되는 순간 또한 그러하다. 길복순과 차민규의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길복순은 ‘선배(차민규)의 약점이 뭔지 안다’고 말하며 그 약점은 바로 길복순 자신임을 말한다. 이 장면에서 길복순과 차민규 사이를 채우고 있었던 묘한 기류가 정리된다. 감독은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관계 때문에 어그러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길복순의 입을 통해 길복순과 차민규의 관계가 정의내려졌을 때, 차민규는 길복순에게 순순히 항복하며 둘의 갈등은 길복순이 차민규를 죽이는 것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이는 이전의 길복순과 차민규의 갈등, 길복순이 그렸던 차민규와의 싸움과 대비해 너무나도 시시한 마무리다. 길복순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거둬준 선배를 이기고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순애보를 지키는 남성이 스스로 포기하고 물러난 엔딩이기 때문이다. 


차민규, 차민희 남매의 관계도 상당한 의문을 자아낸다. 감독은 차민규와 차민희의 관계를 설명할 때, 차민희에 대해 ‘마냥 아이같이 커버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커서 아빠랑 결혼할거야, 라는 아이처럼” 차민희도 오빠 차민규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라는, 그래서 오빠에 대한 소유욕으로 길복순을 질투하고 성인이 되고 이사라는 직책에 올라서도 오빠에게 매달리며 다섯살 난 아이처럼 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남성적 판타지를 담은 관계다. 아무리 오빠에 의해 애지중지 키워진 여동생이라해도 성인이 되어서까지 남매 관계를 인지 못하고 가족 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며 직장에서 이사 자리에 올라서도 애처럼 구는 여성은 없다. 또한 차민희의 해맑음이 영화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요소일 순 있었겠지만, 그 천진난만함이 근친 코드로 범벅되어 오히려 차민희라는 인물이 가질 수 있었던 매력을 잃게 만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성인의 몸을 하고 마냥 아이처럼 구는 여성’의 남성적 판타지 역시도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난 <길복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전도연 100점, 이솜, 이연, 김시아 등 배우들 연기 100점, 액션 100점, 액션 연출 50점.

쓸데없는 섹슈얼한 연출 마이너스 100점, 결국엔 사랑 때문에 너무나도 갑자기 무너지는 전개 마이너스 100점, 여성혐오적인 설정 마이너스 100점, 기타 등등 마이너스 40점


결론적으로 도합 10점인 영화.


이 영화를 여성서사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여성혐오적인 요소와 남성향 판타지를 담은 연출이 다분해 여성 관객으로서 불쾌한 장면도 꽤 많다. 하지만 전도연을 비롯해 출중한 연기실력을 가진 배우들의 연기와, 전도연과 이연의 호흡,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려냈으며, 한국의 기성 액션 영화에 비해서 다양한 여자 캐릭터의 등장과 여자들의 화려한 액션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다. ‘여성 배우 원톱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 마냥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지친 주말 저녁, 아무 생각 없이 신나는 액션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추천한다.


글 서로소


참고문헌

전형화, “변성현 감독이 밝힌 ‘길복순’의 길고 긴 A to Z [IS인터뷰]”, 일간스포츠,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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