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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Jan 30. 2020

진실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이 주는 고통과 충격은 커진다. 그 폭력이 성폭력이라면 잊거나 극복이 가능한 것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폭력의 궁극적인 힘은 그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몸에 익히며 무기력한 자아를 만들어낸다. 성폭력이 다른 폭력에 비해 더 안타까운 것은 대상이 된 피해자에게 남겨지는 깊은 상흔 때문이다. 폭력의 본질은 한 인간의 존재를 파괴하고 지배하려는 욕망과 감정의 소산이다. 즉 권력과 다르지 않다. 권위를 가진 아버지, 선생님, 존경의 대상일수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의 힘을 더 가지게 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동들에게 가해졌던 성직자의 추악한 일을 폭로한다.


단순히 자신이 어릴 때 겪었던 나쁜 일에서 생긴 트라우마의 극복과 사제인 프레나에게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더 발전되어 가톨릭의 구조적 문제에 반기를 든다.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린 알렉상드르는 프레나 신부가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는다. 유년 시절 자신에게 성적 학대를 행했던 신부이기 때문이다. 프레나 신부의 파면을 요구하지만 그가 아동 성애자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교회는 이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알렉상드르는 결국 경찰에 고소를 하고 같은 피해를 입은 프랑수아와 피해자들은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목소리)’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피해자들을 모은 그들은 은폐하려 했던 교회와 추기경을 상대로 세상에 자신들의 소리를 낸다. 내 안에 감추고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개인적인 불행한 과거의 체험을 꺼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자체도 힘이 든다. 구체적인 기억들을 되살려서 고백하고 연대한 자들의 용기가 병든 세상을 구원하기 시작한다. 폭로 방식으로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잔인하게 다루어졌는지 알게 한다.





핍진성 (逼眞性)과 사실주의로 접근한 영화는 프랑수아 형제 사이에 대립하는 장면을 배치하여 가족이라도 피해자를 다 옹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성적으로 왜곡된 성직자의 정신을 깊이 파고들지 않음으로 그에 대해서 한순간의 용서도 허락하지 않는다. 플래시백으로 당시의 순간을 재현하되 정동 (情動 affect)적 요소를 활용한다. 그 당시의 시공간 분위기는 고통스러운 정서나 감정에 주목하게 한다. 불안한 아이의 시선과 성인이 된 후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피해자들은 다 각기 다른 상처를 갖고 있고 신체적으로도 온전치 못한 에마뉘엘로 인해 더 고통스럽게 다가가게 한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알리는 전화는 걸지만 나서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있고 단체 안에서도 계속 신을 믿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한다. 프랑스 특유의 토론 문화 같은 대화 역시 이 영화를 이끄는 힘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중요한 장면에서 벽에 걸려있는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도 볼 수 있다. 용기 있게 교회의 비리를 이야기한 영화"스포트라이트"의 정신을 그대로 가져오겠다는 다짐 같기도 했다. 오종 감독은 피해자의 이름은 그대로 쓰지 않으면서 가해자인 가톨릭 사제와 관계자들의 이름은 그대로 영화에 사용하였다. 프레나 신부의 성범죄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며 신부 활동을 이어가게 해 준 바르바랭 추기경과 교회의 책임도 물었다. 그들의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재 진행형인 사건과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은 불운한 시대라면 불운한 대로 손쉽다면 손쉬운 대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의 은총으로 프레나 신부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다.


바르바랭 추기경이 한 이 발언은 단순히 가톨릭에 대한 반감을 넘어 분노의 위력을 갖게 했다. 성폭력이 파괴해버린 사람들과 교회가 범죄자들을 어떻게 했나 보여 줬다. 결국 공소 시효는 늘어났고 그들은 여전히 재판 중이다. 영화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교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함으로 전 세계에 이 사건이 더 알려지게 되었다. 범죄자들을 처벌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근원을 찾아서 폭로한 피해자들과 그 사건을 영화로 기록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일을 한 것인지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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