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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Jan 29. 2020

색채를 절제한 영화<남산의 부장들>

논픽션 연재물을 원작으로 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일부 설정을 바꾼 픽션으로 재탄생되었다.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정권을 유지시켜 주었던 중앙정보부의 속살을 파헤친다. 도청, 납치, 미행, 암살, 밀수를 자행하며 최고 권력에 대한 충성과 애국을 내세운 정보부장들의 암투와 음모를 긴장감 있게 그렸다.





4번째 정보부장인 박용각 (김형욱/곽도원 분)이 유신 정권과 갈등을 고조시키며 폭로한 코리안 게이트 사건은 10.26 사건의 발단이 된다. 재밌는 것은 박동선으로 알려졌던 로비스트로 데보라 심 (김소진)이 등장한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이 일어나기 40일 전 정보부장 김규평 (김재규/이병헌 분)과 경호실장 곽상천 (차지철/이희준 분)의 충성 경쟁과 폭주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두 사람의 권력 투쟁하는 과정을 서스펜스의 근간으로 삼았고 유신 체제하에 벌어지는 불법적 행위들과 정치적 상황을 느와르 소재로 활용하였다. 극화된 박용각 (곽도원)의 제거 작전은 경쟁하듯 그렸고 또한 충성이 총성으로 변화는 과정을 개인의 갈등과 감정에서 오는 균열과 파열음으로 바라본다.



남산의 부장인 두 인물 박용각과 김규평을 데칼코마니처럼 보이게 한다. 혁명 후 2인자로 충성을 다했지만 1인자의 신임을 끝까지 받지 못한다. 극적 상황에서 두 인물 모두 신발을 신지 못하였다. 근 현대사를 통해 보고 있는 관객들은 이미 사건을 다 알고 있으나 연기자들은 불안과 긴장감을 조성하여 서스펜스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의 열연을 보인다.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극적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레트로한 영화 톤으로 시각적 효과를 준 것도 시대상을 잘 표현한다.  미술과 촬영에서 색을 자제하여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었고 부감 숏, 인물 클로즈업에서 오는 조용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느릿한 느낌을 주며 우울한 그 시대의 초상과 닮아 있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에 비해 힘을 뺐다기보단 미니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 같다. 조성욱 음악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음악은 인물보다 앞서 나가지 않았다. 특히 대사 전달력에 있어 저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잘 들려 한국영화 고질병 같은 대사가 잘 안 들리는 현상이 없었다.


중화학 공업의 무리한 투자로 경제가 악화되고 부마 사태 발발, 경호실장 차지철의 안하무인의 알력 행사, 야당 신민당이 공화당보다 득표율에 앞서는 등 이미 유신의 체제는 붕괴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10.26은 신군부의 쿠데타라는 또 다른 현대사의 한 사건을 일으킨다. <남산의 부장>은 생략, 비약, 압축과 가공이 된 영화이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를 제대로 돌아봐야 하는 백미러로의 역할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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