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 몇 명이 학교에 잠시 머물렀다. 접점이 별로 없어서 데면데면하게 지냈지만 같이 했던 동아리 활동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가 있던 배드민턴부에 수줍음이 많은 귀여운 남학생이 왔는데, 라켓을 잡자마자 눈빛이 변했다. 내가 나름 배드민턴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건 열심히가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도 각자 동아리에서 돋보였다는 말을 듣고 물어보니, 그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정한 취미를 계속 이어나간다고 했다. 고등학생임에도 10년 정도의 경험을 쌓은 친구들을 순간의 열정으로는 넘을 수 없겠다는 걸 느꼈다. 꾸준함이 가장 묵직한 무기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니 주변의 꾸준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를 버티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에도 그런 사람들은 습관처럼 정직하게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딱딱 짜여진 일상에 자신의 루틴대로 삶을 살아가는, 수도승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일관됨에 놀란다. 그런 사람들은 당장의 노력이 즉각적으로 돌아올 결과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의 여유가 꾸준함을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꾸준하다는 것은 곧 긴 시간 동안 많은 장애물을 넘어섰다는 말이다.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관두고, 당장의 효율성이 낮다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면 고등학교 때의 그 친구가 10년씩이나 자신의 관심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요즘은 일이든 취미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꾸준한 사람이 어른 같고 멋있게 보인다. 보이지 않아도 어디선가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사람,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들 옆에 있다 보면 자극을 받는다. 나도 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누워있다가도 일어나게 된다. 억지로라도 가야 할 길로 몸을 끌고 가면 어느새 열심인 나를 보게 된다. 힘든 일들은 막상 닥치고 나면 생각보다 별 거 아닌 게 많아서, 아까 이불속에만 있던 내 모습이 좀 머쓱해진다. 끝내고 나오는 길에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개운해질 때면 꾸준한 사람들 옆에 꾸준히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