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음 Apr 15. 2021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01

    "미안하다. 부탁 좀 할게."


지난 월요일, 용종 시술 때문에 부모님은 경희대학교 병원에 가셨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부모님 모두에게 용종이 발견되어 아빠, 엄마 차례대로 시술을 받고 계셨다. 그래서 누나는 나에게 아이를 부탁한다고 전화했다.


응? 부모님이 아픈데 누나가 왜 나한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부탁하냐고? 혹시 아내가 연상이라서 평소에 누나라고 부르냐고? 놉! 여기서 누나는 친누나를 말하고, 아이는 친누나의 아이다.


나는 작년부터 누나 아이,  조카의 베이비 시터 노릇을 하고 있다. 애를 낳아본 것도 아니고, 관련 학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육아를 하고 있다.   


사실 나는 엉겁결에 조카 베이비 시터가 됐다.




2020년은 누구나 알다시피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었다.


코로나가 대유행하기 직전, 출산을 끝내고 재취업을 준비하던 누나는 원하던 회사에 입사를 했고, 나는 때마침 퇴사를 했다.


그런데 그때 완치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께서, 급작스럽게 암이 재발해 다시 투병 생활을 시작하셨다. 그전까지 누나 아이를 돌보던 엄마는 정신없는 할머니 병간호에 아이를 돌볼  없었다. 그래서 원래 4시였던 어린이집 하원 시간을 저녁으로 미루고, 일단 종일반으로 아이를 옮겼다.


하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대유행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어린이집 폐쇄 명령이 내려졌다. 일단 누나와 매형이 급하게 휴가를 써서 그 주는 넘길 수 있었지만, 그다음 주가 문제였다. 금요일 저녁, 누나네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막 늘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소파에 누워있는데 누나와 엄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떡하니... 할머니 간호도 잠깐이 아닌데..."

    "그러게... 지금 어린이집도 코로나 때문에 계속 닫을 것 같은데..."

    "시터는 구해봤어?"

    "응... 근데 지금 시국이 이래서 구해지지가 않아. 풀타임은 비싸도 몇 명 있는데, 우리처럼 파트타임은 아예 없네..."

    "어떡하니 당장..."


괜히 찔려서 '이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은데...' 하면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당장 다음 주에 애 볼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병간호, 아빠와 누나네 내외는 모두 출근, 어린이집은 폐쇄. 속으로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애를 볼 수 있는 인력이 나밖에 없었다.


    "내가 한번 해볼게"

    "뭘?"

    "시터"

    "네가?"

    "그럼 어떡해? 엄마는 할머니 병간호해야 하고, 아빠랑 누나, 매형도 회사 나가야 되고, 어린이집은 폐쇄됐고, 베이비 시터는 없고, 애는 당장 봐야 하는데... 방법이 없잖아"

    "볼 수 있겠어?"

    "애를 안 낳아봤는데 당연히 애 볼 줄 모르지! 그런데 지금 상황이 비상인데 혼자만 편할 수는 없잖아!"

    "아... 일단 급한 대로 네가 봐주면 정말 고맙지"

    "알겠어. 일단 해볼게"

    "진짜 고맙다. 그 사이에 시터도 계속 구해볼게. 너 그냥 쓰는 거 아니야. 월급도 꼬박꼬박 잘 챙겨줄게! 너무 고마워."


그렇게 나는 조카의 베이비 시터가 됐다.




그렇게 벌써 8개월이 지났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아 파트타임 시터는 더 구하기 어려워졌고, 내가 계속 애를 보기로 했다.


4시쯤에 어린이집 하원 시키고, 춥거나 애가 감기만 아니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1시간 보내고, 5시에 돌아와서 손 씻기고 간식을 먹인다. 어느 정도 배가 찼다 싶으면 애기는 티브이를 틀어달라고 하는데, 누나는 티브이 너무 많이 보여주지 말라고 해서, 티브이 보기 전 책 몇 권을 앉아서 읽어준다. 그 후 같이 티브이를 보면서 누나가 돌아오는 7시까지 기다린다.


조카가 요즘 꽂힌 <슈퍼잭>


작년 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엄마와 같이 애기를 보고 있다. 이제는 엄마와 나 반반 나눠서 육아를 하고 있다. 하원 시키고 돌아다니는 것과 아기 살림은 엄마가 하고, 간식 먹이고 책 읽어주고 같이 티브이 보면서 놀아주는 건 내가 하고 있다.


애기 하원 시키는 게 4시, 누나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게 7시. 약 3시간 정도인데 오후 12시부터 애 볼 생각에 항상 긴장이 된다. 아무 일이 없는데 괜히 불안하다.


이게 보통 내가 보내는 육아의 일상이다. '무사히 누나 퇴근 전까지 평탄한 육아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