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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Apr 17. 2021

육아 첫 도전! '무사히 퇴근'은 사치였다...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02

    "크게 어려운 건 없을 거야. 아침에는 매형이 등원시킬 거고, 하원은 4시야. 누나가 7시 안에 오니까 2~3시간만 버텨주면 돼"


본격적으로 조카 베이비 시터를 하기 전날 밤, 누나에게 이런저런 연락이 왔다. 육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육아를 해야 하니, 상당히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다행히 어린이 집 폐쇄 명령은 하향 조정됐다. 아무래도 여기저기서 반발이 심했던 것 같았다. 대신 맞벌이 부부에 한해서만 등원이 가능하도록 조치됐다. 누나랑 매형은 둘 다 맞벌이였기 때문에 조카를 등원시킬 수 있었다.


2~3시간 정도라고 하니, 나는 듣기 싫은 전공 수업 하나 듣는다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시급도 넉넉하게 쳐준다고 하니 괜찮은 알바인 셈이었다. 전에도 엄마랑 한두 번 잠깐 애기를 봐준 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큰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몇 시간 만에 산산조각 났다....




다음날 아침 6시, 엄마가 황급히 나를 깨웠다.


    "xx(필자)야. 빨리 일어나!"

    "뭐야... 왜 그래..."

    "누나가 전화 좀 받아 보래!"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아침부터 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전화받으라고 깨우다니... 약간 짜증 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xx야... 미안한데 오늘 아침부터 누나네 집에 와야 할 것 같아... 어제 새벽에 갑자기 고열이 올라서 오늘 어린이집을 못 가게 됐어..."

    "뭐...? 그럼 몇 시까지 가야 돼...?”

    "8시 40분까지 와줘. 매형이 출근 전까지는 봐줄 거야"

    "일단 알겠어..."


어린이집 폐쇄가 하향 조정됐어도 코로나 시국이었다. 애가 열이 있으면 등원 불가다. 전화를 끊고 앞이 깜깜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10시간을 어떻게 보지...' 아무리 생각해도 10시간은 무리였다.


    "얘기 들었지?", 옆에서 전화를 같이 듣고 있던 엄마가 말했다.

    "응..."

    "이따 시간 맞춰서 잘 가줘... 엄마가 어떻게든 시간 만들어서 올게. 그 사이에 잠깐만 봐줘."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 X ∞' 다시 누웠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누나네 집에 갔더니, 조카는 상태가 메롱이였다. 평상시에는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데, 매트에 누워서 가만히 뽀로로만 보고 있었다. 누나는 아침에 열이 나서 매형이 한차례 약을 먹였고, 앞으로 한 시간마다 열 체크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두 시간 뒤 애가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열나는 애를 나 혼자 케어해야만 했다. '잘못하면 열 때문에 애 눈도 멀고 귀도 먼다는데... 어떡하지...' 1분 1초가 노심초사였다. '열나지 마라... 떨어져라... 제발...' 하지만 열은 결국 38도를 넘겼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나한테 급히 물어봤다. 항생제랑 해열제를 섞은 다음에 잘 타일러서 먹이면 된다고 했다.



근데 말은 쉽지... 애가 "약 먹자" 하면 "네"하고 먹을 리 만무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해봤다.


    "00야, 지금 열이 나서 이거 먹어야 해. 이거 먹고 사탕 줄게"

  

역시 싫다면서 강하게 약을 밀쳤다. 그렇게 20분을 실랑이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00야, 저기 봐봐 저기! 우와~ 저게 뭐야?"


잠깐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린 뒤, 입에 약병을 꽂고 코를 막았다. 깜짝 놀란 조카는 약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대성통곡을 하면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가혹한 방법이었지만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차츰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뒤쯤 조카는 낮잠을 잤다.


그리고 다행히 엄마가 4시쯤 할머니 병간호를 급히 정리하시고 돌아오셨다.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첫 육아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던 길, 깊은 갈증과 허기짐이 몰려왔다. 목구멍이 터지도록 시원한 맥주를 한가득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거나하게 마신 뒤, 누나에게 미안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육아하기 전이었는데 엄마가 할머니 병간호로 바빴을 때, 누나가 “아기가 아픈데 하루만 혹시 봐줄 수 없냐”라고 물어봤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아프면 부모가 옆에 있어야지 삼촌이 옆에 있는 게 말이 되나? 책임감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봐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애를 보니까 그때의 누나 심정을 이해했다. 애는 "어머님. 저 내일 아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아프지 않는다. 애는 갑자기 아프다. 특히 2~3살 때 잔병치레가 많아 더 그렇다고 엄마가 말해줬다. 그때 누나는 아플 때 부모가 옆에 있는 것은 맞지만, 연차를 쓴다고 해도 갑작스럽게 자주 써야 하니까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나는 애도 안 낳은 총각이지만, 어린이집이 있어도 육아는 힘들다는 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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