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삼촌의 육아일기 #03
*경축*
xx아파트 승강기 교체공사
기간 : YYYY.MM.DD ~ YYYY.MM.DD
누나네 아파트에 노후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현수막이 걸렸다. '오~ 좋겠네?' 누나네 집은 우리 집에서 5분 거리라 현수막이 걸리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어...? 누나네 21층인데... 애는 어떡하지!!!???'
우리 가족은 비상이 걸렸다.
승강기 교체는 앞으로 한 달 뒤였다. 그래서 일단 누나네 집에서 여분의 옷, 내복, 젖병, 장난감, 수건 등등 애기 용품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기한테 필요한 택배들을 미리미리 우리 집으로 시켰다.
일단 우리 가족의 대책은 이랬다. 먼저 하원 후에 애기를 우리 집(참고로 우리 집은 2층이다)으로 데려오고, 누나가 퇴근하면 시간 맞춰 내가 애를 데리고 누나네 집으로 간다. 코로나로 인해서 매형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계속 이 상황이 지속되면 누나랑 내가 10층까지 애기를 올려가고, 매형이 그 사이에 내려와 나랑 교대하기로 했다. 만약 매형이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누나랑 매형이 야근까지 하면, 힘들지만 내가 아이를 21층까지 올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엘리베이터 공사 첫날, 일단 하원까지는 잘 해결됐다. 그리고 누나 퇴근 시간에 맞춰 유모차를 태우고, 누나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누나를 만나 최대한 아기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계단으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애기는 제대로 이해를 한 건지 못한 건지, 계단으로 올라가자니까 무슨 새로운 놀이인 줄 알고 씩씩하게 17층까지는 걸어 올라갔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위기를 넘길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매형의 재택근무가 다시 정상근무로 조정되어, 누나랑 내가 애기를 21층까지 올려다 줘야 했다. 게다가 첫날처럼 아기에게 설명하고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2층에서부터 못 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누나는 마음이 약해져 애기를 안고 가자고 했다. 나도 안쓰러워 애기를 안아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크게 울기 시작했다. 말은 제대로 못 하지만 애기한테 왜 그러는지 침착하게 물어보니, 누나 다리를 꼭 안았다. 눈 앞에 엄마가 있으니 삼촌한테 안기기 싫고, 엄마한테 안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누나가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안아주는 것은 내 몫으로 하자고, 가족끼리 미리 합의했었다. 그런데 정작 애기가 완강하게 나를 거부하니 도저히 안을 수 없었다. 누나는 어쩔 수 없겠다며, 일단 자기가 안아서 올라갈 테니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그날 결국 누나는 허리디스크가 다시 도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방법이 없었다. 매형이 재택근무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일단 내가 21층까지 애기를 올려다 주고, 그 후에 누나가 올라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애기도 혼자 올라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기 위하여, 7~8층까지는 떼를 써도 혼자 올라가도록 교육시키자고 했다.
그다음 날부터 나랑 조카랑 단 둘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3~4층 정도 오르니 나한테도 떼를 쓰며 못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얘도 걷는 습관이 들어야 해서 일부러 모르 척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걷게 하고, 7층부터 안고 올라갔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든 걷게 해야지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막상 지쳐가는 조카를 보니까 많이 안쓰러웠다. 원래 7층까지는 걷게 하는 거였지만 너무 힘들어하면 그냥 처음부터 안고 올라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코로나 시국이 악화되면서, 매형이 다시 재택근무로 전환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10층까지 올려다 주고, 거기서 매형이랑 교대했다.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후, 엘리베이터 공사가 끝났다. 한 달 동안 어쩔 수 없이 계단을 매일 올랐던 조카는 하체가 발달했는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고, 이젠 계단이 보일 때마다 무조건 올라가는 계단 마니아가 됐다.
그래도 21층을 다시 올라가기는 싫은지 장난으로 올라가자고 하면 진저리를 친다. 그래서 종종 집에 들어가기 싫어할 때, "좀 이따 엘리베이터 공사한데!"라고 속이면 후다다닥 집으로 가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