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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진숙님 Dec 25. 2022

임시보호, 나도 할 수 있을까

1인가구 + 고양이 2마리로부터 시작하는 강아지 임시보호 이야기

오늘은 아기 강아지 쏘야의 임시보호를 시작한 지 딱 11일째 되는 날이다. 12월 15일에 아이를 데려왔으니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이의 10일 기념일이 되었다. 제법 사랑둥이 태가 나는 이 아이는 쏘야, 아주 어린 아가멍일 때 지역 보호소에 입소해 12월에 견생 약 4개월차가 된 꼬꼬마 아가씨다.


짧은 견생이지만 스트릿 경험과 보호소 경험이 모두 있는 아이고, 입소 시기를 보았을 때 꼬물이 당시 모견으로부터 충분한 정을 받지 못한 채 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아이에게는 임시보호가 필요한 강력한 이유가 존재했다. 바로 사람을 너무나도 무서워 한다는 것. 보호소에서는 우주최고 쫄보멍인 쏘야에게 아직 사회화 시기가 끝나지 않았을 때 가정에서 사람의 손길과 애정을 처방했고, 마침 겨울간의 임시보호를 자원한 나에게 쏘야를 맡아볼 것을 제안주셨다.


나에게는 이미 스트릿 출신 말썽쟁이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기에, 임시보호를 다짐하기까지 남들 앞에선 짐짓 평온해 보였으나 사실은 찻잔 속의 폭풍 그 자체였다. 고양이가 강아지를 싫어하면 어쩌지? 강아지가 고양이를 싫어해서 크게 싸움이 나면 어쩌지? 보통 고양이와 강아지가 싸우면 고양이가 진다는데. 큰 고양이 스트릿 시절에 다른 고양이들한테 맞고 다닌 순둥인데 강아지가 물기라도 하면 어쩌지? 며칠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하지만 어쩌겠나, 측은지심으로 집고양이 생활이 시작된 너희 역시 강아지에게 측은지심을 가져라. 정 안되면 분리시켜 짧은 기간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하자.'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얼핏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이 결론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1. 나의 직장이 재택근무를 지원했고,

2. 나의 거주지가 복층 오피스텔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택근무와 무관하게 고양이와 강아지는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채 서로 잘 적응했고, 복층은 나중에 썰을 풀겠지만 큰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임시보호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렇듯 임시보호가 가능한 환경인지를 스스로 점검 해 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강아지일 경우,

- 아이가 짖을 때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 수준의 방음이 되는 건물인지

- 가구나 소품을 물어뜯는 버릇을 감당할 수 있을지 (집주인님 퇴거 시 제가 도배 장판 해드리겠읍니다..)

- 화장실 습관을 들이기 전까지 용변실수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당신의 매트리스가 위험하다) 

- 산책이 가능한 아이의 경우 하루 한 번 이상의 산책시간을 낼 수 있을지

- 임시보호 도중 1박 이상 집을 비우는 일정을 최소화 할 수 있을지


고양이일 경우,

- 고양이를 위한 최소한의 수직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최소한 창문 곁의 수직공간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 고양이가 벽지를 긁어도 감당할 수 있을지 (집주인님...+1)

- 청소기를 아무리 밀어도 온 집안이 털투성이 모래투성이가 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 임시보호 도중 2박 이상 집을 비우는 일정을 최소화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 당신의 강아지/고양이가 임시보호가 끝나는 날까지 당신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않는 강철 심장

- 때때로 약 20키로까지도 나갈 수 있는 고양이/강아지가 든 켄넬을 번쩍번쩍 들어올릴 수 있는 근력

- 강아지 6차, 고양이 3차 접종을 위한 튼튼한 통장 잔고

가 필요하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의 1인가구는 전체 가구수의 약 33%를 차지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물을 키우기 이상적인 '대가족이 함께 사는 마당이 있는 넓은 집'의 숫자는 거의 없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2021년 기준 4인가구 이상의 비율은 고작 18.8% 뿐이다.) 1인가구라고 하여 임시보호, 혹은 반려동물 입양이 불가능 한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나의 환경이 좀 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뿐이다.


무엇보다, 특히나 임시보호의 경우, 작고 좁은 집이나마 보일러 틀어진 따뜻한 바닥과 부들부들한 극세사 담요가 차가운 보호소 바닥보다 훨씬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당장은 예민하고 소심한 아이들도 한 달 정도 등 따시고 배부른 가정집에서 적당한 사랑과 무관심을 즐기다 보면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생존형 살가움을 갖추게 된다. 스트릿 출신 고양이와의 3년간의 동거생활, 그리고 우주최고 쫄보멍과 10일간의 공존이 내게 남긴 교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미래가 기다릴진 몰라도, 잠시나마 따뜻한 곳에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은 아이들의 견생/묘생에 있어 커다란 자산이, 혹은 행복했던 기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주최고 쫄보멍 쏘야의 매일은 다음 인스타 계정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임보 기간이 끝나기 전에 작은 아가멍 쏘야가 평생을 함께할 사랑 넘치는 가족이 나타나기를.

https://www.instagram.com/p/CmdC_3aPbCS/?igshid=YmMyMTA2M2Y=



참고자료

국가지표체계 (국가지표체계 | 지표상세정보 (index.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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