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SENCE OF A REMAKE

<REMAKE COREA> 진짜와 가짜, 독창성과 창작성 사이의 리메이크

by CHRIS
[Remake Me : Shadow Play] 2018. 7. 7. PHOTOGRAPH by CHRIS


가짜를 실로 이어 붙인 가짜 화폭에 물감으로 가짜를 지움으로써 여백을 만들고 가짜를 그려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한 공간에 매치시키지 않았던 가짜의 각기 다른 성질을 이용하여 진짜를 표현한다. 리메이크 작업의 본질인가? 자본가의 전유물이었던 철은 강력한 대국을 건설하는 필수 원동력이었다. 이제 철을 분쇄한 가루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삭힘을 통해 예술로 거듭난다. 또 다른 리메이크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을 깜찍하게 우회한 이모티콘 단청도 있다. 미술관 중앙에 세워진 기둥의 모자이크는 TV의 화면 조정을 위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형광빛이다. 시린 맛이 가득한 화투장 냄새를 연상케 한다. 우리의 눈에는 불량식품의 단맛이 넘치고 있다. 럭셔리 라이프 역시 풍요 속의 빈곤이다. 작가의 과거를 집어넣었다고 하지만 잡지 그림을 오려 붙인 장난 같은 세태의 자존심은 그저 발랄할 뿐이다. 인간의 본질과 고향을 짚기 위해 옛 그림의 조각에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 넣는 것,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인이 그 사회에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현세대에 살고 있는 같은 성(性)으로서 내면심리까지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재창조는 좋아 보였지만 이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익숙한 이야기였다. 리메이크(Remake)와 가짜(Fake)는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 것일까?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가짜에 어필을 넣으면 리메이크가 되는가? 둘 다 허구임에도 하나는 창작의 영역을 보장받고 하나는 상품적인 가치에서 눈을 속이는 위치로 전락한다. 어떤 위장이 숨어있는 것인가?


며칠 전 스페이스 씨 (Space C)에서 진행되는 <리메이크 코리아 Remake Corea> 전(展)을 TV를 통해 보면서 이 또한 리메이크 감상인가 물었다. 현장에서 걸어 다니며 체험한 직접적인 감상이 아니라 타인의 해설을 들으며 편안하게 안방에서 보게 되는 작품의 조망은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듯이 액자식 구조의 체험과 흡사했다. 리메이크가 넘치는 현실의 거리. 진짜(Genuine)와 가짜(Fake).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짜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생전에 살았던 사람만이 아니라 이미 지어진 이야기를 단순히 번역하고 사실에 근간해서 적어보는 것을 벗어나서 작가의 상상을 덧붙이는 작업들이 예전보다 빈번히 등장한다. 장정일의 《삼국지도, 전경린의 황진이도 순수한 의미로 창작이라 할 순 없겠다. 아무 생각 없이 TV 드라마에 눈길을 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사람들 참 재미없다. 드라마도 영화도 책도 그림도 노래도 옷도 물건도 재탕을 거듭하는데 하루종일 굶던 뛰던 걷던 일하든 간에 자신의 것을 온전히 소유하고 발하고 있는 자는 누가 있는가?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는가? 설화에 기대던, 이야기 듣던, 자연을 그리던, 사랑을 부르던 그곳에 나만의 것이라 부르기엔 이미 자신을 거쳐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지우고 나만 볼 수 있을까?


이틀 전엔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음악을 들었는데 이수영의 리메이크 음반 중에서 한 곡이 흘렀다.


“왜 요즘 것들은 모두 리메이크일까? 그리고 왜 예전 걸 들으면 될 텐데 이런 걸 돈 주고 사는 건데?"


친구가 그런다.


“도 닦더니 완전 불교사상에 심취했냐? 이 세상 물건은 모두 빌리는 것이란 진리로.”


갑자기 멍해져서 한번 물어본다. 창조는 시간이 갈수록 역사라는 거대한 장에 중첩되고 많은 사람이 녹아있는 구(球)에 복속되고 있다. 현실에 불편하게 기댄 것처럼 보이는 작업은 삶의 모순인지도 모르겠다. 복합적인 세계에서 무엇이 자신의 것이며, 나만의 기쁨인 것일까. 다시 무언가를 집게 되면 의지가 넘쳐흐를까? 그날은 언제일까.


2005. 2. 25. FRIDAY



원작의 의미와 구조를 차용하여 현시대의 사회와 문화 사상을 통해 재해석하는 작가적 태도를 흔히 리메이크라고 한다. 기존의 작품을 새롭게 다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주로 영화, 음악, 게임, 드라마 등 다양한 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오래된 영화를 현대적인 시각이나 기술을 가미하여 다시 촬영하거나, 과거의 인기 곡을 새로운 리듬이나 감성적 스타일로 다시 녹음하는 것이 리메이크의 대표적인 예이다. 리메이크는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세대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집약된 정보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해진 유기적 구조의 현대 문화는 리메이크의 현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원작을 재구성하고 변형, 재창조하는 것만으로도 이젠 의미의 확장과 과거를 전복하는 전위적인 생각으로 대접받고 있다. 사실,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창조적 행위는 생명의 탄생이다. 그 조합은 굉장히 비밀스럽고, 어떤 상태를 만들어낼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창조는 리메이크의 형태로는 한 마디로 불가능하며 독창적인 생산 구조는 신의 영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창조적으로 태어난 인간이 제작 과정에서 창조적 한계점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자체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보통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음악을 짓던, 영화를 만들던, 자신만의 작업을 할 때 독창성과 창작성에서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독창성 (Originality)은 기존에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생각이나 신선한 접근 통로를 통해 타인과 완전히 분리되거나 신 개념을 끌고 와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창작성 (Creativity)은 참신한 상상력과 유연한 사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기존의 것을 새로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창작성이 오히려 리메이크의 본질과 더 가깝다고 보인다.


프레임을 구성하다 보면 내용에 대해 묻게 된다. 본질의 기원, 출처, 주석, 해석을 통해 제작자는 틀 속에다 무엇을 담고 싶은 것인지 생산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타인과 구분되는 창작성을 표출해 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생각했던 날들은 삶의 회의에 사로잡히고 생활 속에서 희미해지려는 정신을 잡아왔다. 무엇을 보면 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태도는 무형의 기운을 섭취하고 싶었던 욕구에 의지하고 있다. 계속되는 물음 속에서 자신만의 형태를 잡아가는 것은 창작자의 필수적이고 근면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리메이크도 좋고 창작도 좋다. 아마추어적인 사상도 아예 떠올리지 않는 것보단 낫다. 전문가적이라고 불리는 형태를 보다 보면 이미 본 것이라 신선하지 않다. 리메이크 (Remake)가 하나의 장르가 된 현실에서 정신을 자극하는 완전한 새로움도 피곤한 감각이 될 수 있다. 보통 인간이 가지는 인식의 스펙트럼은 삶의 경험치와 관용의 해석에서 그다지 넓지 않다. 창작자는 단순한 리믹스(Remix)라고 볼 수밖에 없는 리메이크(Remake)에서 더 나아가 이미 놓여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세계는 인식자와 비인식자의 공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열리고 닫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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