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RNING, MORNING DEW

<가을 편지> 무대에서 오지 않는 너를

by CHRIS
[You who never come to the stage]


작은 무대 아래서, 노래 들려주는 네가 없어

부를 곡도 생각나지 않는 곳엔 앉을 수 없다
쓰고 걷고 서서 보다 물끄러미 그렸다, 너를


외롭게 몸통만 남은 장대는

떠도는 입술 위로 그림자를 뻗친다

불씨만 남은 저녁노을
뭉근하게 태양을 피우더니
매운 곡성 기침하며 차곡차곡 아코디언을 켠다
연홍빛 턱을 뾰족하게 다듬었으나

부르던 너는 보이지 않는다


네 의자를 덮친 파도

저리도 낭랑하게 떠도는데

적막한 예감은 어디로 숨고

썰물 내려버린 무대에는

방황하는 눈길만 흘러가는가

그곳에서 기척 없는 너를 기다렸다

보관함이 되어버린 무대에서 연락 없는 너를


2005. 1. 31. MONDAY




[아침 이슬] 김민기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극단 학전(學田) 대표 김민기 씨가 영면을 했다. 그가 만든 [아침 이슬], [아름다운 사람], [상록수], [작은 연못], [내 나라 내 겨레], [친구], [가을 편지]는 어머니의 선곡 모음이었다. 피아노를 치면 그녀가 나직하게 노래를 불렀다. 여덟 살에 피아노를 배우면서 일 년은 학원에 놀러 다니는 것이 재미있었다. 체르니를 끝낼 무렵엔 음감을 구분하는 귀는 트였지만 놀이가 습관적인 의무로 바뀐 이후로는 피아노를 치기 싫었다. 쇼팽,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적 삶은 내 길이 아닌가 싶었다. 고가의 피아노가 들어오고 <한국가요 명곡 선집>을 내미는 어머니를 보면서 피아노를 가르친 것이 그녀가 못 이룬 로망을 채우기 위함인가 싶어 속에서 한 묶음 불만이 가득했다.


"그냥 라디오 들으면 안 돼요?"


사춘기였는지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마음 내키지 않았다. 중학교 때 피아니스트도 되지 않을 것이고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피아노 뚜껑을 덮어놓고 그 위에서 책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정말 피아노는 장식용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살아가는 짐이 버겁기만 했던 어느 날,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무겁고 육중한 피아노를 삼십만 원에 팔아 버렸다. 피아노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되었고 노래는 부르기 어렵고 이래저래 많은 이들이 떠나가버린 세상에서 이젠 옛 노래의 선율만이 아련하게 맴돈다.


김민기의 차분하고 잔잔한 음색은 좋다. 올해 3월 폐관된 소극장 학전에서 대학 시절 <지하철 1호선>을 봤던 것 같은데, 내용은 한 소절도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를 기다려서 학전에 들어가던 순간과 학전에서 나와서 대학로를 걸었던 단편적인 장면만 스쳐간다. 마음을 사로잡은 순간들은 바로 적어놓지 않으면 다시 그때를 마주해야만 내용을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떠나가면 나이가 드는 것이라고 하더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시간의 유속은 빨라지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많아진다.



[가을 편지] 김민기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 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만이 아니라 계절을 막론하고 마음에 바람이 불어오면 편지를 썼다. 부치지 못한 편지가 더 많다. 갈 곳을 잃어버린 마음은 흩어져 간다. 외롭고, 헤매인,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다니... 멀리 떠난 그에게 편지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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