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CE

침묵

by CHRIS
[Silence: Monotonous Lock] 2024. 2. 22. PHOTOGRAPH by CHRIS


몸에 있어 지혜로운 자,

말에 있어 지혜로운 자,

생각에 있어 지혜로워 번뇌 없는 자.


최상의 지혜를 성취한 현자는

모든 것을 버렸네.

그 모든 것을.


AN 3.120: Moneyya Sutta — Sagacity {A i 273; Thai 3.123} [Thanissaro]



'몸'과 '생각'의 전달자인 '말'에서 벗어나 지혜롭기 위해서는 감정을 내려놓고 생각도 내려놓고 몸에 얽매이지 않은 채 침묵해야 한다. 걸러진 글이 내뱉는 말보다 신중하다. 그리고 정제된 글보다 깊은 침묵이 진실에 가깝다. 휘둘리는 번뇌에서 멀어지려고 하나 잊힐 만하면 한 번씩 휘몰아치는 생각들에서 동요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다. 세상에 재미와 관심이 가득한 상태에선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같은 글인데도 시간이 흘러서 보면 같지 않다. 잃어버린 감정과 흩어진 감수성을 찾아대던 밤과 달리, 모든 것을 명확하게 처리해야 했던 낮에는 논리적인 생각과 냉철한 사고가 필요했다. 수십 년에 걸친 얽매임은 그리던 삶과 달리 냉정하고 딱딱한 얼굴을 생산해 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삶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혼란한 감정과 생각에서는 예전보다는 많이 멀어져 있다. 숨을 쉬고 살고 있지만 삶을 이해할 수 없었던 시기에 다독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삶이 그랬던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방황하고 고민했던 순간들 사이로 그 모든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달라진 것은 없는데 감정의 분출을 어떻게 멈추는지도 몰랐다. 저항할 수 없었던 문답 앞으로 삶의 마디를 꺾는 것이 두려웠다. 변화는 서서히 다가왔고 어느새 두려움도 가셨다. 살아가는 동안 오직 내 안의 목소리로만 갈무리하여 진실되게 침묵할 것이다.


인간사에서 정해진 운명은 존재하는가. 삶의 행로가 정해져 있느냐의 여부는 생각의 기준이 되는 시간과 살아가는 공간의 범위와 사고가 확장되는 정도에 따라 다르다. 밥을 먹고, 누군가를 만나고, 맺어진 관계들과 이별하는, 이 살아가는 모든 과정들이 삶의 순차적인 행로라고 바라볼 수 있을까?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옳고 그름에 대한 정의가 격렬한 다툼을 만들어낸다. 날카로움을 갈무리하는 방향은 멀리 있지 않다. 쓸데없는 곳에서 승부수가 발휘되는 욕망의 어리석음을 탓해본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다가온다. 모두가 소망하는 일들이 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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