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scattered over time], Ludmilla, Siegfried Lenz 1996
"세금공제는 실제 행해진 또는 의도된 행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에만 해당된다."
《루드밀라, 지그프리트 렌츠 Ludmilla, Siegfried Lenz》
인간 사업에서 성공을 가늠하는 기본적인 척도는 회계장부를 얼마나 그럴싸한 폼으로 만드는가, 그게 관건이다. 숨겨야 할 세목(稅目)은 어떻게 효율적인 표현으로서 합법화될 수 있는가를 살펴본다. 일단 주부들이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꼼꼼하게 적듯이, 일상의 기록 장부에 충실히 도움을 주던 각종 영수증을 점검해 본다. 치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세무조사에 앞서 특급 아스피린 한 알을 미리 준비해 두는 개인용 응급처치이다. 사랑, 우정, 혈연과 이웃 간 인간적 도리에서도 대차대조표로 이합, 집산되는 생활 안팎의 계산은 내가 누군가의 공제대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묻게 할 것이다.
불행히도 요즘 사람들은 이해타산적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꽃다발을 준 횟수, 전화 통화료, 목욕비, 차량 유지비, 식비, 문화 잡비, 쇼핑 등에서 발생된 자금 속에 포함된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자식까지 동전이나 지폐 속에 알알이 처넣는다. 키스하거나 같이 잔 날을 통계로 산출해야 사랑이 깊어진 거라 안심하며 무국적의 정신을 공제용 CD에 차곡차곡 데이터화시키는 건달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든 것일까? 그런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즉각 이별이다. 영리하지만 계산 불가한 미흡함을 가진 사람은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인지, 평소보다 어리석게 굴면 그것이 미의 덕목인 양 순수하다 찬양하는 사람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이란 의미가 사람에게 제각기 다름을 알기까지 함께 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은 만남이었다는 그 한마디를 적기 위해, 계산기를 들고 손익분기점을 맞추려고 분주하게 머리를 굴리며 뛰어다닌다. 인간의 관계는 수용성 지출을 용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손상 입은 향기를 견딜 수 없어 압력솥의 열기로써 보존된 향기와 품질을 선호한다. 식용으로 물컹하게 쪄진 증류수에 진한 경배를!
나는 회의적인가? 그다지. 계산을 잘 못하지만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순순히 작동할 때가 간혹 있다. 써먹을 때가 별로 없는데 계산을 못하면 통째로 저장하고서 걸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그프리트 렌츠의 회의적인 작법은 《루드밀라 Ludmilla》에서 반증적으로 발휘된다. 분류와 비교, 평가하는 작업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불규칙한 것을 발견하는 흥미는 그저 대상적인 쾌락으로 존재할까?
결속의 시절은 인간이 소유한 본연의 세계를 나라는 타인이 발견하면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황홀한 존재의 냉혹한 특성을 신화와 상징의 감각으로서 점차 풀어내기가 어려워진다. 간혹 사고의 확장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 과연 얼마만큼 도움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외피에서 꿈틀거리는 사건만 없다면!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인식은 생활에서 쌓은 경험으로 인하여 변덕스럽게 헤엄친다. 렌츠는 회의적인 태도를 옹호하는 듯이 보인다. 물론 비평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발사된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니게, 방향 없는 키가 나아갈 곳에서 괴성만 들리고 안개만 자욱한 것은 문제다. 광포한 늪지에서 세금포탈이 원활해진다는 것은 자명하게 되었지만 두둑하게 챙겼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그녀가 이별을 고하면 어쩔 건데? 녹음기를 점검해봐야 한다. 불현듯 찾아올 이별을 대비해서.
2005. 7. 10. SUNDAY
"나도 스무 살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언젠가!"
《루드밀라: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Ludmilla》를 읽으면서 엄청 즐거워했다. 뭐 이런 기발한 책이 다 있어? 기특하다고 책 모서리를 두드려댔다.
회계는 꼼꼼함과 세심함, 꾸준함이 중요하다. 자신의 영위를 위한 영리함은 드라마틱한 분식회계나 장부 바꾸기에 필요할 뿐, 매일의 성실한 기록은 내부 운영의 사항을 적나라하게 보고해 줄 것이다. 회사를 만들고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겠다는 생각은 외부적으로는 카리스마 있고 스마트하게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덜렁이에 온갖 상상의 세계에 빠져있던 시절과 이별한다는 의미였다. 숫자를 맞춘다던지 글을 정례적으로 써본 적이 없는 터라 회사는 시간을 들여 자력으로 만들기로 했다. 법무사, 회계사, 사장과 임원, 비서, 과장, 대리, 계장 등 모든 직원들의 역할을 해보기로 했다. 회사의 정관을 쓰고, 공증을 받고, 도장과 명판 디자인을 하고, 등기소에 가서 회사등록을 하고 법인 설계의 서류를 만들면서 세무서, 공증사무소, 구청, 은행, 특허청을 들락거렸다. 회사를 만드는 법적인 수수료만 지불하면서 회사의 기초를 만들다 보니 국가가 요구하는 수수료보다 인력이나 지식을 빌리는 대행 수수료가 더 비싼 것임을 알게 됐다. 경영의 본질은 실전이 최고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서류 하나 꾸밀 줄 모르는 서류형 인간들은 즐비하다. 회사설계는 이해할 수 있는 형태에서 내부적으로 온라인화시켰다. 차분히 가계부를 쓰기는커녕, 학급 시간표도 머릿속에 눌러 넣고 빈손으로 다니던 습관으로 인해 모든 것은 지뢰밭 투성이었다. 십 년 넘게 작던 크던 온갖 계약서와 회계, 무역 서류를 직접 만들고 은행 업무를 실행하고 다루다 보니 일적으로는 딱딱해질 수밖에 없는 머리를 갖춤과 동시에 생활의 많은 시스템이 전산으로 엮여 있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반이 어떤 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지 일정 정도의 통합적인 개념을 갖게 되었다.
예술적이고 디자인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기반하는 것들은 자본, 즉 돈이다.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 넘어갈 때는 현실감을 넘어서야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핵심적인 개념을 매일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레벨에서 계산적인 인간으로 인식되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세금 공제된 것은 살기 위해 가미되는 인간의 노력과 그 안에 길들여진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산으로 통제되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1을 다루다가 점차 만(萬), 억(億), 조(兆), 경(京), 해(垓), 자(秭), 양(穰), 구(溝), 간(澗), 정(正)으로 넘어간다 해도 그 정례함이 당황할 수 없도록 구성되는 게 바로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환상임을 보게 된다.
법인은 사회적인 개인이다. 회사라는 무생물적 대상이라고 보기보다는 내가 죽더라도 다른 이가 운영할 수 있는 법적인 의지와 법적인 생명력과 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법적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여 디지털에 한 개인의 의지를 심을 수 있다면 법인은 인공지능을 가진 하나의 사이보그처럼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도 있다. 개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사를 도구 삼아 돈 버는 것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반대급부적인 냉정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솔직히 이상과 현실이 분리된 머리를 갖고 있는 나로선 서술적으로 바라보는 돈 개념의 이해가 미흡했기에 처음부터 법인을 만들고 싶었다. 회사 설립에 있어서 법인과 개인의 개념을 바라보면서 법적으로 창립자와 부산물이 분리될 수 있다는 발상도 신선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나와는 다른 개성 있는 객체가 탄생된다니 자본주의적인 발상에서 악용될 수도 선용될 수도 있는 양날의 존재로 보였다. 아이도, 사람도, 사랑도, 삶도 모든 것은 그러하다. 나와 연관되고 나와 밀접하게 유기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존재이며 또 다른 형태이며 시간에 따라 달리 발전하면서 순간에서 교차하고 서로 만나고 헤어지게 된다. 한때 누구나 그랬듯이, 그녀는 스무 살이었던 시간을 거치며 시간과 숫자, 인간과 인생에 대하여 어린 시절과는 다른 현실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