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앤 몬스터 Gods And Monsters>. 이 영화의 이름에 걸맞은 제임스 웨일(James Whale) 감독은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과 투명인간(Invisible man)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여 빛에 가려진 어둠의 신세계를 사람들의 마음에 심은 대가로 공포영화의 신(神)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거대한 자본의 틀로 규격화되고 통일화되는 할리우드의 시스템에서 블록버스터화 되기엔 웨일의 이야기는 음침하도록 어두웠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관을 순수한 창작 의지에 녹여낼수록 주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타협 불가점의 의식세계는 너무도 찬란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거기에 악조건 하나 더, 그는 남자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이성애자의 세계관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그는 당연히 이상한 존재였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될 수 없는 혼란의 웅덩이 속에서 그는 이해받을 수 없는 인간이었고 외로웠던 마음이 항상 얼굴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빛에선 얼굴을 들 수 없는 괴물의 형상이었다. 결국 분해된 자아를 다림질해서 한 땀씩 기워낸 아이가 바로 그의 창조물 프랑켄슈타인이었을 것이다. 혀가 갈라지듯 표호 하던 절규도 그의 내부가 터트리는 울음이었다. 친구라도 하나 만들어서 괴물이나 신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누구 하나 속시원히 그의 존재를 놓인 그대로 바라봐주지 않았기에 그는 신과 괴물이 된 이 땅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가슴깊이 이해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등급별로 누군가의 수준을 정해버린다는 것도 참 모진 일인 듯 싶다. 절름발이로 걸어가며 누군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참 고된 일인 듯싶다. 잊고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살아가다 보면 즐비하다. 사람들의 관계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들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쉽게 수긍하며 오만하게 남들 머리 위로 숫자놀음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읽었던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길 가던 유영객이 잠잘 곳을 찾을 때 은근슬쩍 접근해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며 유혹하는 검은 그림자는 모두에게 맞는 침대가 구비되어 있다며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사람들은 공짜로 구비되는 숙박시설에 혹해서 그의 집으로 하나 둘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침대는 딱 한 사이즈, 오직 하나인데 그는 어떻게 이 침대에 모두를 누인 걸까. 비결은 간단하다. 침대에 누여서 큰 사람의 삐져나온 부분을 잘라내 버리고 작은 사람은 도구로 쭉 늘려버린 것이다. 프로쿠르스테스 침대(Procrustes Bed), 공포의 살인침대라고 불렸던 이곳에서 사람들은 피만 낭자하게 흘렸다.
공포영화의 서막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괴물의 입처럼 벌려 있다. 그 입이 너무 커서 갇혀있는 줄도 모를 수 있고 그 냄새도 이미 익숙해져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등급을 매겨 그 틀 속에 가둬두는 그 의식은 내부를 서서히 죽이는 독극물이나 다름없다. 내 이상과 의식에 맞지 않는다고 톱이나 칼을 들고 잘라버리는 행위나 내 경험과 질서에 맞지 않는다고 줄끈이나 지렛대로 늘려버리는 행위는 살인 침대와 뭐가 다를까.
B급이든 C급이든, 삼류던 오류던 간에 그냥 그 사람 한번 봐주면 어떨까. 이왕 괜찮은 사람이면 눈도 시원할 것이다. 비바람이 쳐도 물 구덩이에 빠져도 그 사람을 웃으며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린 다 하루를 살아가는 하늘 우물 안 작은 존재인 걸.
2004. 9. 13. MONDAY
나의 이상형은 머릿속을 홀랑 반하게 할 지적인 사람이다. 외관까지 아름다우면 더 좋다.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황홀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 그런 사람이 있나? 머리의 기대와 달리 매 순간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에 불꽃을 지피며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 낼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편적인 시간에선 뜨거운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 온몸을 휘감아 치는 열정. 그러나 이성이 존재하는 공간에선 항상적인 열의나 미칠 듯한 감탄은 없다. 이상형에 대한 이상향은 방향에 초점을 맞춘 아이디얼 한 생각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무감하고 지적인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감성이 가득한 괴물을 만들어낸다. 신과 괴물은 한 끗 차이다. 내 안에는 신적이면서도 괴물 같은 인간이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의 생이 있다. 그리고 다들 마음속에 하나의 괴물과 하나의 신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선과 악과 같은 양면의 그들을 잊는다. 나는 잊지 않았고 잠시 그들을 재워두었다. 나의 괴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외관적인 면모가 추악하고 괴력이 가득한 괴물은 아니지만, 생의 의지로 뭉친 아름답고 생명력 강한 존재다. 자의식이 피어날 때, 삶이 힘들었을 때, 새로운 곳에서 적응할 때, 인생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소적인 존재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면의 파동은 일렁이기 시작했고, 자각의 눈은 서서히 문을 열고 있다. 괴물과 신이 하나가 되기까지 삶의 체력을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