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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LOVE by STENDHAL

스탕달 《연애론 ON LOVE》 사랑이란 이름의 광기

by CHRIS
[ON LOVE by STENDHAL] PHOTOGRAPH by CHRIS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질은 변하지 않는다. 타인의 연애사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는 없고 남의 생각과 감정과 태도가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람도 있다. 어제 페이스북에 누가 올려놓은, 이별 이후 남녀의 감정 변화와 생활 차이에 대한 카툰 컷을 보고 키득거렸다. 부부건 애인 사이이건 사랑 이후 이별 뒤, 혹은 결혼 이후 이혼 뒤의 모습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남녀의 특징 같았다. 이별 후 남자는 첫날에는 환호하다가 점차 황폐해지고 심하게 우울해지는 반면, 여자는 처음에 슬퍼하다가 점차 홀가분해지고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세 컷 만화였다. 요즘 황혼이혼에서도 보듯이 남자들은 돌봐주는 사람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의지점을 상실하지만, 여자들은 삼식이를 돌보는 생활에서 해방되었음에 잡다한 일거리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는데 열중하게 된다. 물론 모두가 그러하다는 일반화는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스탕달도 이백 년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프랑스에서는 아내를 잃은 남자는 우울해 보이지만, 반대로 남편을 잃은 아내는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그러므로 결혼의 계약은 평등한 것이 아니다."


스탕달의 《연애론 ON LOVE》은 예전에 읽은 것 같은데,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서 깡그리 잊어버렸다. 이론적인 사랑은 머리에 남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이고 설레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적용될수록 사랑은 특별한 느낌을 전한다.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들의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탐색하고 가슴을 멍들게 하는 사랑이라는 열병의 치유법에 대해 말하는 스탕달, "사랑이 연애의 결정(結晶)"이라며, 사랑은 인간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이자, "사랑이라는 이름의 광기"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선언한다.

대놓고 포르노나 야한 카툰이나 성애소설을 봐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에서 이젠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스탕달의 플라토닉 한 이야기를 감춰 두고 볼 여인들은 없겠지만, 18-19세기에는 모든 것이 꽉 막혀있었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광기에 가까운 찬사를 서슴지 않는 파리의 여인이 자신의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적은 스탕달의 연애론은 지금 시대에는 순수하게 다가온다. 밀라노 장군의 아내이자 별거 중인 유부녀, 마틸드 뎀보스키(Mathilde Dem bowsky)를 사랑했던 앙리 베일(Marie-Henri Beyle), 스탕달은 사랑의 행복 없이는 명예, 재산, 쾌락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헌신적인 사랑의 자유주의자였다. <Arrigo, Beyle, Milanese 아리고, 베일, 밀라노 사람>이라고 적은 이탈리아 묘비명은 파리의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의 차가운 바닥에 누운 그를 가리키고 있다. "앙리, 베일, 밀라노 사람"은 마틸드와 함께 하고 싶었던 한 프랑스 작가의 애정 어린 소망이 아닐까.


일단 스탕달이 서술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차이점에 대해서만 몇 가지 요약해보고자 한다. 정열적 연애, 취미적 연애, 육체적 연애, 허영적 연애, 이 연애의 네 가지 방식이 시들해졌다는 것은 연애에 대한 환상이 없는 상태를 말해준다. 원시인과 문명인의 차이는 쾌락본성의 결정작용 단계에서 보이는데, 원시인들은 사슴을 쫓고 요리하는데 두뇌를 쓰는 반면, 문명인들은 이성에 대한 사랑과 쾌락에 두뇌를 쓴다. 사랑할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이 사라졌다 해도 이미 사랑이 싹튼 이상, 성격이 다정다감하고 사려 깊은 남자가 과거에 한 여자와 연애에 실패한 뒤 새로 만난 여자에게 빠지게 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정말? 연애론을 읽다 보니 스탕달이 연애에 빠졌던 순간의 고백처럼 들린다. 아무리 사랑해도 눈의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은 순간인데, 그전까지는 상대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여자가 상상하는 95% 이상이 사랑이라고 결론짓는 스탕달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게 언제 적의 사랑 이야기인가 싶다. 남자처럼 한눈팔면 낙오되는 치열한 사회생활을 하면 자수를 놓거나 스웨터를 짤 일도 없지만, 일처리 하느라 남자 생각을 할 겨를은 제로가 된다. 언제 어디서나 감성적이 되는 것이 여자라고 결론짓는 목소리를 들으니 성별을 던져버려야 할 듯싶다. 연애론이 점차 심심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선가? 그런데, 이십 년 전에도 재미있어하진 않았다. 기억이 새록새록하니 지루해진다.


남자가 느끼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그동안 자신이 여자에게 품었던 온갖 욕망의 실현이 축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마다 황홀해지는 이유는 이 발견이 남자의 욕망에 완전한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정이란 자신의 열정이기에, 열정이 큰 사람은 사랑의 열정도 크다. 아름다움이란 상대를 보고 느끼는 감정으로 정신적인 작용이 표현된 것이다. 연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열정과 개성이다. 현명한 남자들은 여성의 정신적 향기에 취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여자는 예민하고 의심이 많아서 소설의 플롯에 나오는 극적 구성이 갖춰져야 상대를 인연으로 여긴다. 형식적인 조건에 맞는 소개나 맞선은 합법적인 매음 행위나 다름없다. 의식이라는 것은 원래 가식적이며 그 형식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어울리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가 남자에게 첫눈에 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의심이나 경계심이 조금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어떤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 첫눈에 홀딱 반하는 일이 일어난다.


무엇을 말하는 듯한 눈빛이 바로 얌전하고 정숙한 여자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눈으로는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그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 당시의 눈빛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면 감성적인 남자는 손해를 보고 이성적인 남자는 이득을 본다. 여류 작가는 숭고한 이념을 다룬 대작을 쓰기보다는 사소한 편지 같은 글을 쓰는 경향이 많다. 그것은 여자가 반쯤만 솔직해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솔직해진다는 것은 숄 없이 외출하는 것과 같다. 여자의 성격이 고매하면 고매할수록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은 더 커진다. 위인은 매와 같다. 매는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보이지 않게 되고 그 위대성은 영혼의 고독이라는 죄악을 받게 된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의 감정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가에 진정한 자존심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 연애의 기술은 단순하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영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로 얽혀 들지 않으면 시든다"는 칡넝쿨의 교훈처럼 상대에 대해 질투가 타오를 땐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서를 읽으며 이성의 냉정함을 보여줘야 한다. 사랑의 환상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환상뿐이다. 1부 연애심리학 개론이 끝났다. 2부는 연애하는 여자들에게 주는 충고이다. 한번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까?


남자를 교육하는 것은 여자이다. 한 인간으로 자립하는데 필요한 사회적인 교육이 적은 여인들은 생활의 경험에서 터득한 지식에 영향을 받는다. 삶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체계적으로 인식할 지식을 배워야 한다. 여자로 크지 말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커야 한다. 지적인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되면 남자는 여자와 사상을 함께 나누면서 더욱 그녀에게 매혹될 것이다. 결혼해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타고난 예술가의 영혼을 가진 여자라면 가정주부는 되어있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든 후 인간의 운명은 남녀를 불문하고 젊었을 때 어떻게 보냈느냐에 달려 있다. 중년의 인생의 위치는 젊음의 과실이며, 노후는 중년을 보낸 결실이다. 인생은 자기 과거의 업보인 셈이다. 사랑받으려면 똑똑해져야 한다. 여자도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는 편견을 버리고 포부를 크게 가져한다. 가정만이 아닌, 대중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결혼은 스스로 선택하며, 여자를 유혹하는 데 뛰어난 '돈 후안'형 남자와 청순한 영혼의 '베르테르 '형 남자 중에서 욕망을 재구성하여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남자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애인은 친구가 되어 노년에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을 줄 것이다. 마치 아침에는 장미였던 꽃이 저녁에는 달콤한 열매로 변하는 것과 같다.


3부는 여섯 가지로 나뉜 사람의 기질에 따라 모든 연애와 상상력이 영향을 받는 상황임을 국민성에 대비하여 설명한다. 첫째, 프랑스인적인 다혈질은 쾌활하고 활동적이나 성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둘째, 스페인적인 담즙질로, 침착하고 냉정하며 의지력과 인내력이 약하나 고집스럽고 거만하다. 셋째는 실러의 《돈 카를로스》에 나오는 우울질로 사소한 일도 지나치게 생각하여 쓸데없이 애쓰면서 마음이 우울하다. 넷째는 점액질로 감정이 차고 활발하지 못하지만 침착하고 의지가 강하며 끈기가 있는 네덜란드인에게 많다. 다섯째는 신경질로 민감하고 예민하고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하는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해당한다. 여섯째는 장사 기질로, 이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스탕달은 프랑스인으로서 프랑스인들의 연애적 기질이 야심, 탐욕, 우정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는 허영심이 강하고 연애를 두려워하며,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는 프랑스인들보다 자유롭게 정열적으로 사는 이탈리아인들이 아름답고 푸른 하늘 아래 삶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로마인들의 연애도 좋아하는 듯 보인다. 섬나라 영국인들의 열정은 금세 시들어 부부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영국남자들은 열정을 심장이 아닌 발로 소비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랑보단 자존심이 강한 영국인들은 허영심과 병적인 감수성으로 인해 신중한 성격이 많다고 귀띔한다. 지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스페인들과 온화하고 다정한 독일인들의 사랑은 하나의 신앙과 같다고 한다. 미국인은 이성적이지만 무미건조하고 안전과 평화를 주는 자유로운 정부처럼 사랑의 결정작용이 불가능하고 한다. 진정한 사랑의 전형이자 고향인 아라비아 베드윈족의 검은 천막에는 관대하게 여자를 배려하는 고독과 아름다운 기후가 고귀한 정열이 태동한다고 말한다. 유럽을 둘러싼 나라들에게는 아시아권이 없어서 우리들의 연애는 스탕달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나 보다.


4부 사랑의 법전은 그의 개인적인 생각들이고, 5부 연애에 대한 100가지 단상 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해군대령에게 이 연애론을 보여드렸더니 연애처럼 쓸데없는 일에 몇 백 페이지나 할애하며 무슨 중대한 일인 것처럼 떠드는 것만큼 우스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야말로 강한 영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스탕달의 말처럼 남의 연애사나 연애론처럼 흥미로우면서도 쓸데없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시시콜콜하게 재미있을 수 있어도, 각자의 사랑은 천편일률적일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의 사랑론이 한 개인에게 유익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인생에 대한 실망과 불행을 오랫동안 처절하게 겪고 나면 강인한 성격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끝없는 욕망을 갖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다. 위대한 영혼은 내면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난다 하더라도 독특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한 영혼은 많이 존재한다." <스탕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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