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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8. 2024

MEAL

삶의 요리사, 감각의 식도락가.

"내년 6월 말에 가족 모두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답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제가 먼저 갑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마음은 벌써 한국에 간 듯하네요. 우리 그때 얼굴 봐요!"


- 와! 너무 기뻐요. 전 선택에 대해 변화를 기대하며 현재의 사람들에게 쏟던 감정을 거두고 새로운 구상을 실천 중이에요. 다들 잘 살고 있어서 고마워요. 올해 추석은 음식 하는데 집중하기보단 시장에서 해결하려고요. 내일 한가위 달 보면서 모두의 안녕을 빌게요! 내년에 만나요."



"언제 올 거예요? 구체적인 날을 잡아야 빼놓지."


- 오월에는 정말 갈게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입버릇처럼 만나자고 하다가, 그래서 언젠가 만나겠다고 하다가, 결국 사람들이 먼저 만나러 오곤 한다. 책임감 있게 일을 해야 하므로 비즈니스 일정은 내뱉으면 꼭 지키는 편이다. 간다고 해놓고 안 가서 신용도를 떨어뜨리면 안 그래도 느슨한 결제시스템과 빈말이 가득하여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 한국인의 신용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생산적인 일을 때는 밑바닥 관리도 그렇지만, 돈을 주고받는 데는 남한테 믿고 맡기다간 공적인 이미지를 실추함으로 인해서 신뢰감을 상실하니 그때는 일이고 뭐고 끝이다. 업무 스케줄에 신경이 가 있다 보니, 일상관계 유지는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솔직히 관계를 맺는 것에 에너지를 쏟으면 한 번에 모든 것이 쏠려서 힘들다. 현재는 일이 먼저긴 하다. 일하고 결혼한 것은 아닌데, 먹고사는 것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렸을 때는 항상 내가 먼저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름 시간순서를 잘 배정해서 방문스케줄 표를 머릿속에 나열하고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날짜를 고지하고 찾아가겠다고 알렸다. 아끼는 친구들에겐 일반적인 친구들보다 두 세배의 시간을 배정했다. 시간이 되면 그들을 방문했고,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놀이방식을 달리했다.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스크림 한대 빨고 오거나 달고나 뽑기를 하거나 방방이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쌩쌩이를 타거나 산을 오르거나 산책을 하거나 빈집에 놀러 가거나 약수터에 물 뜨러 가거나 나무 타고 오르거나 동굴 찾아다니거나 잠자리 잡으러 가거나 말뚝박기를 하거나 딱지치기를 하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팔방 치기를 하거나 땅따먹기를 하거나 경찰놀이를 하거나 도둑 잡기를 하거나 혹은 시간이 빠듯할 때는 그냥 얼굴만 보고 올 때도 있었는데, 그게 소위 '어장관리'인지 한참 뒤에 용어상의 매칭으로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때 먹는 것은 주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누군가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상대의 특성에 따라서 노는 방법은 많았다. 다만, 만남의 원칙은 함께 신나게 놀다가 밥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집에서 밥을 꼬박꼬박 먹었다. 남의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은 신세 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누군가가 집으로 오면 대접을 해야 했기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하는 것은 고민되는 문제였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가자'가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어머니의 음식솜씨는 친척들뿐만 아니라 동네에서도 알아줬다. 손이 큰 그녀의 그런 손맛으로 인해 나는 언제나 음식을 준비하는 역할이었다. 한상 준비하려면 시간이 너무 길었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은 언제나 그렇듯이 방해요소가 가득했다. 밥때가 되면, 주체적이기보다는 보조역할로 변했다. 밥을 느긋하게 먹기보다는 음식을 준비하는 역할로 바뀌면서 갑자기 부엌데기 신데렐라로 전락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내가 왜 이 밥숟가락을 식탁에 놓아야 하는지 물었는데,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혼났다. 그래, 집안에서 제일 어렸으니까 도와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내가 밥을 안 먹으면 상을 안 차려도 되는지 물었는데, 그 또한 말도 안 되는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 손이 모자랐으니까 도와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곧, 왕이나 왕자는 밥상에 자기가 먹을 숟가락도 놓지 않는 거만하고 나태한 부류로 낙인찍혔다.


나는 사람들이 사랑을 느낄 시기에 잠시 뭔가에 홀려 키스를 한다고 해서 한눈 팔린 감정이 서로를 구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시 생활로 접어들면 먹고살기 위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언젠가 삶에서 자유로워지면 밥때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는 쉬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식사라는 형식에 정이 떨어졌나 보다. 그 이상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힘이 생기면 말해야겠다. 불경기에는 먹방이나 쿡방이 선풍이었는데, 요즘은 예전보다 더 한 것 같다.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향수를 보면, 음식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지 한두 번 지긋이 지켜보다가, '그곳에 가고 싶다'가 갑자기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면 식사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MEAL, TASTE, 饭 FAN, 香 XIANG]  CHINA. 2024. 3. 7. PHOTOGRAPH by CHRIS



삶의 요리사, 감각의 식도락가.


나는 몬도가네 혐오식품이나 각국의 토종산물, 세계의 희귀품목, 원조의 계보를 꿰뚫는 재주가 없다. 천해자연진미와 황제를 위해 진상되는 기이한 음식들도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한때 사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맛을 좋아하던 사람들을 위해서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명소를 순회하는 발걸음을 내디딘 적 있지만 다시 한 곳에 묶여 있다 보니 이젠 그것도 그다지 취미가 없다. 그렇다고 손맛을 곁들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서너 시간 족히 땀을 쏟아야 하는 요리를 만들긴 싫다. 달인의 경지에 이르고자 도처에서 공급된 양념을 넣으며 맛과 색의 향연을 풀어내는 것도 별로다.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별난 음식을 만들어가며 세상 잡다한 이야기 하는 것도 관심 없다.


어렸을 때 열받는다고 광(狂) 폭식도 해보고 신기하다고 탐식도 끝물 나올 때까지 해봐서 그런지 현실 탈출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음식에는 질려있다.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음식도 물리도록 만들어봐서 나를 잊게 하는 요리사도 싫다. 그냥 간단하게 배고픔을 때울 정도면 족하다. 양념이 다양하게 들어간 음식은 정말 트림을 해도 거북스럽고 잡다한 맛에 금세 미각을 잃는다. 온갖 음식들이 종류별로 한자리에 모인 한정식도 꼭 탈이 난다. 세상 신기한 음식도 속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지면 매 한 가지라 섭취하는 것에 목숨을 걸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불가에서 말하듯 음험한 육욕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오신채를 금하고 있는 건 아니다. 수녀원이나 수도원의 승자처럼 온갖 채소나 곡물을 직접 만들고 가꾸며 살만한 살뜰한 마음도 없고 밥반찬이 될 동물들을 키워가며 꼴을 베어주고 밥그릇을 비워주고 등을 토닥여 줄 애정도 없다. 번뇌의 레이다 망(網)인 머리만 길게 길러서 온갖 세상의 잡다한 화기만 빨아들이고 있다.

어느 때부턴가 먹기 위해 부산을 떠는 음식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먹어야 되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철마다 메뉴를 바꿔줘야 하는 것도, 최고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하루를 음식상 돌리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남들과 보조 맞추며 먹어대야 하는 것도, 체면을 차리거나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 한 턱씩 거덜 내며 삼켜대야 하는 것도, 욕구를 벗어난 선택범위의 제한됨이 배도 고프지 않은 상태를 더 지쳐버리게 했다.

그냥 차가워진 몸 잠깐 데워줄 술 한두 잔 홀짝 거리며 길가를 걷다가 숨을 틔우는 곳에서 잠시 주저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다. 목이 마르면 시원한 냇가를 찾아 물 한 모금 마셨다가 물가 옆 풀 색이 좋아 보이면 한 두 장 귀퉁이를 잘라서 흙먼지를 청바지 위에 쓱쓱 닦고 입 안에서 쌉싸름한 맛을 즐기는 게 좋다. 길 옆에 흐드러진 꽃도 있으면 한 두 잎 따서 입안에 오물거리며 콧노래 부르는 게 좋다. 코 끝으로 바람이 맴돌면 폐부까지 끌어당겼다가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게 좋다. 흙 내음이 좋으면 바닥을 밟은 흙 맛도 한 번씩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보는 게 좋다. 몸 담근 물이 시원하면 그 물도 한 모금 마시는 게 좋다. 이 무슨 낭만적인 생각일까.

회색 건물 안에서 우두커니 밖만 바라보고 있지만 두꺼운 안개만이 가득한 이곳에서도 가로막은 그 안개 턱 잘라서 즉석요리를 해버리고 싶다. 지나쳐버린 삶과 다가올 순간들을 잘게 다져서 감각의 위장 속에 퐁당 넣고 싶다. 잡다하고 좋지 못한 것들로 뒤범벅이 된 맛도 없고 볼품도 없고 색깔도 기이한 영양 제로의 비빔밥이라도 숟가락 한가득 퍼서 쓱 한 입 넣고 싶다. 나를 키울 수 있는 것이라면, 또 살찌울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런 건 양껏 넣을 수 있겠다. 엉망이 되어버린 삶, 그것도.


2004. 9. 11. SAT.






[FRIEND's NOODLE HOUSE] HONG KONG. 2019. 6. 25. PHOTOGRAPH by CHRIS


어렸을 때 주변 어른들이 그랬다. 밥상 앞에 앉아서 밥을 입 안에 한 숟가락 집어넣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면 레퍼토리가 같았다.


"밥도 복스럽게 잘 먹네."

"넌 정말 잘 살겠다."


아무 생각 없이 밥을 크게 떠서 밥 숟가락을 입에 넣었는데, 복스럽다거나 잘 산다고 하니 덕담에 고맙다고 해야 할지, 밥이 맛있어서 그렇다고 해야 할지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을 들으면 괜히 밥을 먹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냥 먹는데 잘 먹는다니 정말 잘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숟가락을 입에 넣어야 맛있게 먹는 것인지, 밥을 어떻게 씹어야 복스러운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밥과 반찬을 깨작거리면, 잘 먹는 모습의 나 같은 사람과 비교를 당하면서 꾸물댄다고 머리를 한대 맞거나 욕심이 없고 게으르다는 표현을 들으며 구박을 받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먹는 모습을 관찰당하는 것은 좋은 경험은 아니다. 사실은 어렸을 땐 성격도 급했지만 밥을 빨리 먹고 상자리를 물린 뒤 딴짓을 하고 싶었다. 그 복스러운 모습의 이면에는 밥 먹고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밥 먹고 난 이후엔 밥상 정리와 설거지도 해야 했다. 밥을 차리고 먹고 정리하는데 최소 한 시간에서 두세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을 삼시 세끼를 지속한다는 것은 의미롭지 않았다.


식구는 밥을 먹으면서 함께 생활을 영유하기 때문에 가정의 기본 단위는 식사가 기본이긴 하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족의 구성원들이 자랄수록 식사 때가 되면 점차 모이기 어렵다. 식탁에서 말을 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보통 가정의 분위기는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것에 어색해한다. 가족회의를 정기적으로 하자고 했는데, 한바탕 일장연설이 늘어지면 이게 대화인지 고민을 했다. 차 한잔으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음식만 진수성찬으로 올리면 더 맛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그리듯이 해외의 가정들이 음식 앞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화목하다면 이혼을 하거나 별거를 하거나 가출을 하거나 폭력이 난무하여 가정이 파탄 나지는 않을 것이다.





[INVITATION to GALA SHOW] HONG KONG. 2023. 2. 23. PHOTOGRAPH by CHRIS


주변 어른들 말대로 정말 나는 먹을 복은 많았다. 일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 최고급은 많이 먹어봤다. 주위에 포진한 머리를 쓰는 사람과 감각적인 사람들에겐 먹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은 항상 나를 초대하곤 했다. 식사 자리는 일을 할 때 필수적이다. 관계망을 넓힐 수 있고, 타인의 의중을 알 수 있는 자연스럽고 중요한 자리이다. CEO모임에는 모닝대담도 있고, 블랙퍼스트 미팅도 있다. 점심에는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 저녁을 즐기는 우리나라에는 전문 술상무 밥상무가 있다. 나를 위해 술상무 밥상무를 자청한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부담스러웠다. 맛집을 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계발을 위한 관계적 모임에는 관심이 없다. 소화기능이 회복되지 않는 위장은 점심도 귀찮다고 한다. 그래서 수다를 자연스럽게 있는 브런치도 흥미가 없다. 저녁은 몰아먹는 편인데, 나를 위한 한 끼는 편하게 먹고 싶다. 다른 이와 먹으면 소화가 된다. 결국 타인과의 형식적인 식사는 크고 나서 나의 복스러운 인생에서 별로 고려해 본 적이 없다.   


하루를 연명하는 식사하는 자리에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의견을 밀어 넣고 계획을 짜고 호감을 표시한다는 형태는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까놓고 말하면, 식사자리가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대화 속에서 공방을 주고받는 것도 할 만하다. 어렸을 땐 게임을 즐겼다. 호기심도 많았고, 식사자리에서 별일도 많았다. 거쳐온 일들이 그런지 술자리가 많았다. 이전에는 술은 잘 안 취한다고 생각했다. 말술이기도 했지만, 술을 먹으면 정신을 놓는 사람들과 달리 정신이 또렷해졌다. 말수가 없는 사람들이 술을 먹으면 말이 많아지듯이, 술을 먹으면 할 말이 없어서 오히려 침묵했다. 그냥 나를 놓는 것이 싫었다. 정신없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보는 것처럼 저렇게 쓰러져있는 모습을 관찰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확 깨어버렸다. 주량 대결하자고 객기 부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단 모두 K.O패 시켰다. 알코올이란 정신작용이니까 진실을 말하기 전에 모두 망각의 어둠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취하지도 않는 술이 지겨웠다. 모두가 술에 널브러져 있을 때 택시 태워 보내고, 밤거리에 자주 서 있었다. 술 냄새가 입에서 퍼지고 밤바람이 흩날리면 길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래도 그때는 완전히 나를 놓지 않았다. 집에 가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어쩔 때는 집으로 갔는데, 어쩔 때는 회사로 다시 가서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는 사무실에서 책상 붙여 놓고 창 밖을 보곤 했다. 다음날엔 집에 가기로 생각하고선 말이다.

 




[SPARKLING GLASS GOBLETS]  ITALIA. 2018. 6. 26. PHOTOGRAPH by CHRIS


언젠가 비디오로 <나인 하프 위크 9+1⁄2 Weeks>를 보면서 장르를 잘못 선택했구나 생각했다. 초콜릿과 딸기, 꿀 같은 음식을 몸에다 바르는 장면에서 일단 상상이 현실로 넘어가 있었다. 씬이 끝난 뒤 샤워하 갈 배우들묻은 얼룩처리엔 어떤 세제가 효과적일지 고민하고 있었다. 살갗에 얼음을 얹는 건 수증기로 말라갈 테니 괜찮다 쳐도 에로틱함과 음식의 효용성과 매치가 안 됐다. 음식 가지고 장난 치면 안된다고 했는데, 저 선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 가슴 떨림이 흥분해서가 아니라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음식을 사용한 씬 구성은 그리 자극적이진 않았다. 코믹스러웠다. 역시 나인하프위크의 음식과 육체를 이용한 씬들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가브리엘 엑셀(Gabriel Axel)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Gaestebud : Babette’s Feast>은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의 단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감독의 아내였던 스테판 오드랑(Stephane Audran)이 바베트로 분했던 이 영화는, 하루의 만찬이 갈등과 반목으로 대립된 사람들을 화합으로 이끌어내는 마법 같은 이야기였다. 파리 코뮌(Paris Commune) 혁명 도중, 남편과 아이를 잃은 프랑스 최고 요리사 바베트는 복권으로 당첨된 모든 돈과 요리에 대한 지식, 삶의 감각을 쏟아서 최상의 극치를 이끌어내는 만찬을 만들어낸다.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이 그녀가 만들어낸 음식을 통해 다툼을 넘어 화목한 모습으로 변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이런 식사자리가 있으면 한번 참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하루의 만찬에 돈을 다 써버린 것을 알고 사람들이 미안해하자, 코뮌 지지자였던 혁명가이자 요리 예술가였던 바베트는 한 마디 덧붙이며 오히려 그들을 위로한다.


"전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말했죠. 저는 위대한 예술가라고요.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우리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어요, 여러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거든요."


"I shall never be poor. I told you that I am a great artist. A great artist, Mesdames, is never poor. We have something, Mesdames, of which other people know nothing."


한 끼 식사에 모든 것을 쏟아낸 예술가이자 한 요리사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를 키운 음식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 봤다. 나의 어머니도 요리예술가 바베트만큼 음식 솜씨가 좋았다. 나 또한 그녀를 닮은 음식 만들기 손재주는 있다고 평가는 받았지만, 요리를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음식점을 낸다면 생존수단의 모든 것이 사라진 최후의 보루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자기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아서 그럴 수도 있다.


음식 먹는 것도 까탈스럽고 모임에 잘 나가지 않고 차가운 성향의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곧잘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보지 않은 재벌집 자식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대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변해 있지만, 먹는 게 복스럽다는 그 덕담 덕분에, 직업상 대접 또한 한 대접씩 고 남보기에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끔 음식을 먹으면서도 늙고 나서 내가 먹은 오늘의 음식이 기억이 날까 싶다. 가슴을 스친 감정이나 뇌리에 남은 대화는 생각날 것 같은데, 음식은 미지수다. 커피나 차, 물 같은 마시는 것은 좋아하는데 음식에는 그렇게 집착이 없다. 대접해 준다고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 먼 곳을 가면 시간이 참 아까웠다. 관계를 위해 준비해 둔 성의가 있으니까 그들을 따라가면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마음에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다른 이야기가 있긴 했다. 사람들이 음식 생각하며 군침 흘릴 때, 나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맛을 기대하고 간다.


삶에는 그저 단맛만 있는 게 아니라, 행복한 웃음처럼 달콤하면서도 눈꼴시린 신맛과 눈물처럼 짜고 고통처럼 쓰고 견딜 수 없게 아린 맛이 있다. 알 수 없는 그 다양함 속에서 혹여 이 삶의 소명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면, 어쩌면 내가 할 일은 남들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All sorrows can be borne if you can put them into a story or tell a story about them."


"모든 슬픔은 이야기 속에 담거나 그 이야기로 전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이자크 디네센 Isak Dinesen (Karen Blixen)





[The Heavenly Taste Above the Clouds] 2023. 10. 29. PHOTOGRAPH by CHRIS


열아홉 때 그리스와 터키로 혼자 여행 다녀오고, 방탈출 뒤 잠시 돌아다닌 이후 어디 편히 다녀온 적이 없다. 계절을 잃어버린 그리스 미코노스(Mykonos) 섬에서 아무도 없는 검푸른 언덕 위 겨울 밤하늘 보고 누웠던 열아홉 살, 오만생각을 다 했다. 한국이 답답해서 멀리 떠나왔는데, 하루종일 걸으니 다리도 아파서 쉬고 싶고, 살려니 또 방으로 들어가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한다니 이런 구속이 따로 없었다. 풍경이 달라졌다 해도 장소만 바뀌고 공기만 신선해졌을 뿐 인간으로서 사는 것은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참 허탈했다.


어딜 가든 똑같구나.

인간의 굴레란 이 몸을 벗어나기 어렵구나.


그렇다고 허무주의로 간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여행이 시들해졌다. 하루종일 먹은 게 누가 준 맥주 한 캔과 오백 원짜리 거친 호밀한 덩어리였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요동치는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목은 많이 말랐다. 평소에도 그러했듯이, 좀 씻고 싶었고 사방이 트여있는 곳을 벗어나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방 안에서 편히 눕고 싶었다. 정말 기본적 욕망이 습관적으로 정착된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음을 잘 알게 되었다.


먹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정신적인 허기와 갈증이 큰 사람 같다. 정신이 충만해지면 몸은 자연히 말라간다. 대학 이후 육체적 형태와 포지션이 일정한 나를 보면, 아직 정신적으로 가득하게 충족이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나만의 작업을 시작하면 육체는 굉장히 마를 것 같다. 지금은 일을 하는 중이라서 적당히 인간적으로 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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