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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7. 2024

FAITH

믿음과 소신

[TOWER of FAITH] REGGIA DI CASERTA. ITALIA. 2018. 8. 4. PHOTOGRAPH by CHRIS


나는 미신(迷信)이나 신비주의(神祕主義) 믿지 않는다. 만약 점쟁이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내가 일찍 죽게 되거나 다치게 된다면, 그의 말이 옳아서가 아닌,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그냥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정말 우연히 맞닥뜨린 현상일 뿐이다. 혹은 인간의 실수나 사악한 욕망에 의한 희생, 범죄와의 교류, 일반적인 오류, 일상과 사고의 우연치 않은 결합, 혹은 예상밖의 변수로 인해 그런 모든 상황이 맞물려 진행될 수도 있다. '신비하다'는 말과 현실의 상황은 뜻밖에도 굉장히 괴리감이 있는 단어이다. 말하지 않는 것들이 알 수 없어서 신비롭게 보일 수는 있어도, 신비롭다고 규정된 현실은 신비롭다고 감정을 느끼는 대상과 시간적 경험과 실제에 놓인 공간적 상황이 다르기에 차이를 가져올 뿐, 그저 또 다른 평범함에 지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사람들이 다들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토론을 실행하거나 글을 적거나 대화를 하다 보면, 의견정립이 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금해서 "이거 생각 맞아?" 물어보면 굉장히 화를 냈다. 왜냐하면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거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거나, 생각을 전개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누군가의 의견을 조립하여 보여주었기 때문에 창피함을 감추려고 그런 것이었다.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 없었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그리고 창의적인 현장에서까지 기본적으로 사고(思考) 생성보다, 모호한 의사전달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웬만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아닌,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 양 전달할 때마다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흘리려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뇌신경에서 한 바퀴 돌면서 누구를 따라가면 생명연장을 한다거나 젊어진다거나 권력을 잡을 수 있다거나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어리석음의 헛발질을 본다. 넘어가면 될 텐데 그게 가까운 사람일 때는 지나치지 못하고 눈썹을 찌푸리거나 혀를 차기도 한다. 일단 정신건강을 위해서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상대가 그것을 떠들든 말든 나에게 그 사상을 주입만 안 하면 된다. 어렸을 땐 듣는 즉시, 반박의 성질이 발동되긴 했다. 요즘은 그런 논쟁을 하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




인간 내면의 상상이 확장된 판타지(Fantasy)의 스토리텔링에 사용되는 고대 전설이나 연금술과는 달리, 무지(無知)에 의한 미신(Superstition)이나 신비학(神祕學)으로 버무린 오컬트(Occult)를 사용하여 심적인 공포감을 형성하는 것이 주(主)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 글과 만화, 기사와 주장들은 허황된 소문이나 가공된 사실에 근거한다. 근저에 깔린 사고도 깊지 않기에, 악몽을 꾸거나 힘을 뺄 필요 없이 가볍게 발성연습하는 오락정도로 여겨야 한다. 나는 유행이든지 말든지 핫하든지 말든지 찾아볼 생각도 안 하고 흥미도 없다. 쓸데없는 대중적 호기심과 가벼운 공포심만 유발할 심리적으로 내적인 동요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나의 저장리스트와 무관하다.


일본영화 <링 THE RING>이 처음 나왔던 1998년, 친구들이 엄청 무서운 영화라면서 함께 극장가자고 졸라서 마지못해 간 적이 있었다. 내 돈 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영화를 본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극장에서 모두들 공포감에 소리 지르는 순간, TV에서 머리카락을 풀고서 나오는 그 장면이 어렸을 때 장난치던 모습 같아서 깔깔대고 웃고 말았다.


"야! 여기서 웃음이 나와?"

- 저게 말이 돼?

"네가 웃으니까 하나도 안 무섭잖아!"

- 이건 장르가 코미디인데?

"말하는 것 좀 봐. 얘 왜 이리 무섭냐."

- 분장도 엉망에 왜 저기서 기어 나와?

"얘 입 좀 막아. 악--! 악-!"

-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

"잠깐. 지금은 가지 마. 무서우니까."

- 들러붙지 마.

"다음부터 공포영화는 절대 같이 안 볼 거야."

- 나도 생각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있기에 귀신들도 곡할 노릇일 것이다. 정말 예측처럼 링의 장면들은 당시 TV 코미디 프로에서 많이 차용되어 나왔다. 가벼운 두려움이란 이렇게 웃음거리 밖에 안 되는 놀음이다. 그러나 그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가면을 쓴 늑대들이 양몰이를 할 때 순백의 양들은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쫓긴 채 구석으로 몰리게 된다. 거품 같은 불안감 한방에 굉음을 칠 때 터져버리겠지만, 간교한 정치가들이나 돈을 벌고자 하는 사기꾼들은 그 허상에 떨리는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에 긴요하게 사용한다.  


호러서스펜스의 시작인 1976년작 <오멘 The Omen>이나 1973년작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불길한 13과 금요일에 대한 기억을 남긴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사탄인형 시리즈 <처키 Chucky>,  <스크림 Scream> 등등. 검은 방에서 혼자 보다 보면 졸기 일였다. 신경이 늘어져서 잠을 자고 있으면 어느새 내용이 한참이나 잘라먹어 있어서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다시 정신 차리고 화면을 쳐다보았다. 곧, 음악이 불길하거나 적막하면 바로 분장한 그 놈들이 나올 게 분명했다. 고무망치로 무릎뼈를 치면 다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무릎반사'처럼, 척추의 중추 반사는 대뇌의 인지적 상황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즉, 감각적인 흥분과 비슷한 스트레스호르몬 코티졸(cortisol)의 분비는 지속적으로 안착된 심리적 두려움과 다른데, 가끔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경험하다 보면 가벼운 불안이 망상으로 변이 되어 강력한 두려움으로 혼동되곤 한다. 따라서, 플롯의 구조상, 작가가 두려움의 포인트로 잡은 것이 일부 자연현상에 대한 몰이해, 고대 전설의 표면적 반영,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영웅시하거나 반사회적인 공감능력에 대한 변태적 열망이라면, 본질적 두려움에 대한 투영의 깊이가 얕을 때 심리적 동조가 불가능하다.

 

이런 감정적 엇박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의 광기(狂氣)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일단 뇌의 정상적인 작용에서 완전히 한 발짝 나가 있으니까 그건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푸는 방법은 그 인물을 광기에 빠지게 한 요소를 파악하고 내외적으로 다밀도로 분석을 하여 그 이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통해 한 인간을 제정신의 상태로 돌릴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광기에 대한 고찰은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본질과 맞물려 있으므로 의미로운 해석과정이다.





[WHEREVER MY FOOTSTEPS TAKE ME] SEOUL. 2019. 9. 17. PHOTOGRAPH by CHRIS


미신(迷信)의 단어를 해자(解字)하면, '쌀'과 '길'을 의미하는 '미(米)'자에 '조심조심 걷다, 쉬엄쉬엄 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착(辶=)'자가 결합되어 있다. 다리로 걷는 글자에 많이 쓰이는 착(辶) 또한, 彳(조금 걸을 척)과 止(그칠지)의 결합사이다. 믿을 신(信) 또한, 사람 인(人=亻) 자에 말씀 언(言)이 결합되어 있다.


밥을 먹어야 살 길이 열리니까 고대부터 주식이었던 쌀은 많은 의미를 담는다. 거기에 점쟁이나 무당들이 점을 볼 때 쌀 던지듯이 쌀방향이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밥상 위에서 그냥 널브러질 수도 있고 한 방향으로 쏠릴 수도 있고 어쩌다 기이한 문양을 그릴 수도 있다. 쌀이 어디로 갈지 헤맨다는 의미의 미(迷)처럼, 쌀 또한 자기 운명을 모르는데 쌀이 제멋대로 걷는 것이 과연 어떤 뜻을 담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미혹함일까?


'믿는다'로 표현되는 신(信)은 고대에선 인간의 말(言)을 글로 적어서 사람 인편에 보내는 '편지'를 뜻했다. 문맹보다 배웠다는 사람이 말이 아닌 당시의 최고 권위인 '글'로 적었으니 확실히 믿을만했다. 그것이 현대에선 믿을 신(信)으로 고정적으로 굳어져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미신(迷信), '쌀의 갈길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가들이 점집에 수억씩 싸들고 가서 나라의 국운과 자신의 미래를 점쳐달라고 한다. 혹은 국민이 뽑은 정치인도 아닌 점복술사가 정치나 외교적인 발언을 하고 그것이 이슈가 되곤 한다. 정말 그런 행동을 하면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거르고 보는 게 맞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건 인간 내면을 파고들다가 돌아버린 광기(狂氣)가 아니라, 그저 쌀도 모르는 미래의 방향만 믿고 따라가는 미혹(迷惑)된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BRILLIANTLY IN THE LIGHT] SEOUL. 2019. 10. 23. PHOTOGRAPH by CHRIS


점술가나 무당이나 도사나 엑소시스트뿐만 아니라 목사, 신부, 승려, 수녀, 사제, 수도승, 랍비와 같은 이들도 엄밀히 분류하면 정신과 현실을 잇는 소통상담 전문직군이다. 기운으로 일하는 사람들이기에 먹고살아야 한다. 이들도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결국 신비로운 이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인 이들도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종교인으로서 합법적으로 혹은 애매모호한 사업의 종류와 종목을 넣어서 개인사업자나 사단법인 사업자를 낸다. 어디 가나 사업자 안 내고 몰래 불법으로 하는 사이비도 있다.


보통 사업을 시작하면 그렇듯, 소통상담 중간 전문직들은 사업자를 낸 뒤에는 사업장을 물색한다. 집에다 소규모로 꾸리거나 아니면 독실한 투자자가 있으면 투자금을 받아 부지를 사서 건물을 짓던지 적합한 곳을 임대를 하여 사업활동을 시작한다. 영업을 위해 조수나 집사나 전도사나 보살 등 직간접적인 홍보부장을 임명하여 교인들을 모집하고 가지치기를 하며 적극적인 홍보활동과 마케팅을 한다. 호객이 안되면 모두 손가락 빨고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이때부터 피 튀기는 과장된 뻥튀기가 난무할 변수들이 생긴다.


우리가 살기 위해 밥벌이하는 직장을 다니는 것처럼, 정말 신(God)이 좋아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들은 자신의 신심에 회의가 없을까? 따라서 그냥 영험하다는 소문만으로 혹은 신과 동격으로 생각하여 맹목적으로 돌진하여 무조건 믿는 것은 위험하다. 신의 대리자의 말을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중간소통자는 인간과 정신을 잇는 대리인이지, 정작 그들이 신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내면의 믿음의 본질에서 절대의 소리에 기울이기 위해선 중간자의 책임 있고 신실한 역할도 요구된다.



"나 목사 됐다 "

- 아저씨. 정말 교회 차리셨어요?

"그래. 시간 되면 개업 떡도 먹을 겸 기도하러 와라."

- '싫은데. 아, 말도 안 돼!'


아버지 소꿉동기가 어느 날 목사가 됐다고 해서 이미지에 혼동이 왔다. 초등 취학 전 무렵, 아버지 친구분들 가족들과 자주 모임을 갖곤 했다. 아버지는 얼굴을 보고 친구 사귀었는지 아저씨들이 모두 신수가 멀대같이 훤했다. 그중에서 쌍꺼풀과 보조개가 짙은 환이 아저씨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 나오던 알랭 들롱을 닮았었다. 유머감각도 있고 목소리도 근사했다. 나의 아버지도 잘 생겼기 때문에 부럽진 않았지만, 외국인처럼 다른 얼굴 선을 가지고 있어서 신기했다. 아버지 친구분들의 가족들도 나와 같은 동갑내기나 또래에 성격도 활발해서 같이 잘 놀았다. 그랬던 모임도 초등학교 고학년 쯤부터는 부모님을 따라다닐 시기는 지나서인지 없어졌다. 


그랬다가 대학 무렵 아저씨가 집에 찾아오셨는데 보자마자 힘이 빠지고 말았다. 목사가 됐다는 소식보다 얼굴 때문이었다. 아저씨의 눈이 너무 커져있었다. 앞 트임에 쌍꺼풀 수술을 하니 인상도 세졌다. 그 사슴 같은 예쁜 눈에 쌍꺼풀을? 나이가 들어 눈꺼풀이 처져서 올리는 김에 세트로 한 모양인데 수술한 뒤 얼굴이 사나워져 있었다. 왜? 굳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성형을 하면 운수대통한다는 팔자성형이 유행했다. 나름 비판적 사고가 올라왔지만, 개업 축사를 해드리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었다. '얼굴에 자신이 있었던 아저씨는 자신감을 돋우기 위해, 더 멋있어지기 위해, 교회홍보를 위해 쌍꺼풀을 한 것이다'라고 말이다. 바빠서 개업식에는 갈 수 없었고, 그냥 교회가 잘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자 교인들이 많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렇지만, 이 모든 삶의 이야기들과 나만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에, 누구의 말을 듣기보다 언제나 나는 내 안의 소리를 믿는다. 희비극이 섞인 나의 삶에서 리얼 에피소드를 덧붙여본다. 점쟁이보다 더 영민한 분석력 때문에 어쩌다 만난 점쟁이가 나를 스카우트한 적이 있었다.



"신이 자네를 점찍었네."

- 그럴 리가.

"신이 말씀하시길 자네가 필요하다고 하셔."

- 저 바빠요. 용건만 간단히.

"귀의하지 않으면 다 끝날 거야. 모든 것이 흉흉해."

- 얼마가 필요하세요?

".. 으흠...."

- 저 가도 돼요?

"얼마 있는데?"

- 그저 몸뚱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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