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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7. 2024

BROWKEN FLOWER

LONELY PLANET, 핑크의 발설

브로큰 플라워 BROKEN FLOWER


 핑크색 편지와 허망하게 부서진 꽃잎들. 구멍 난 추억을 거스르는 연어의 속살은 핑크색이다. 역류하는 물살에 멍들어갈 때도 다시 핑크색이다. 순정만화같이 펼쳐지는 생명의 궁금증은 소녀의 홍조와 닮아있다. 상큼한 흥분에 놀랬다가 원래의 색조를 찾아가는 차분함에 적응한다.


 평범하게 시간의 연속체로서 산다면 사소하게 일어나는 인생의 일들에 관심을 가졌을까? 배우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할 일이 있는 삶. 떠나가는 누군가를 배웅하고 다가오는 누구를 반기느라 이래저래 우여곡절은 희미해졌겠지. 어째서 사람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것일까 묻는다면 그저 동물들의 굴레라고 말해야겠다.


 “나는 동물들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어요. 그냥 커뮤니케이터예요.”


 영적 능력이 뛰어난 박사도 속마음을 꿰뚫는 건 어렵단다. 누구에게나 진심은 쉽게 보여줄 수 없는 비장의 무기니까 말이다.


 나는 학습에 의해서 모국어를 알아듣는다. 누군가 발설하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상태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행동의 이유나 표정의 깊이, 뉘앙스까지 일일이 통역할 순 없다. 예의 바른 모습에 가리어진 진정한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자 극복할 장애인 듯하다. 대사만 전달하는 감흥체로서의 생활에 벅차 쩔쩔매고 있을 때는 멍하니 날 찾는 여행이 그립다. 천천히 돌아볼 수 있을 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땐 많이 늙어있을까?


 지겹도록 삶이 권태롭다고 느껴질 때면, 너무 치열해서 살기 귀찮아진다면,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과학자나 복수에 불타는 추적자, 범죄를 세밀하게 연구하는 탐정의 자세로 빛바랜 추억들을 살펴보아야겠다. 아름다운 것들이 부서지고서야 아쉬워하는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돌아보자고 속삭여본다. 그럼 삶도 조금은 의미 있을 것이다.


2006. 2. 19. SUNDAY





LONELY PLANET
[LONELY PLANET] BEIJING. 2008. 4. 27.  PHOTOGRAPH by CHRIS


 B카페의 옥상에는 밤 그리운 소리가 들린다.

 줄지어 서 있는 택시들.

 비틀거리는 사람들.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들.

 네 웃음이 머금은 공포는 무엇인가?

 슬며시 페타치즈와 토마토를 씹으며

 지중해의 어느 해변에서 들었던 고독한 파도소리를 기억해 냈다.

 외로움도 이쯤 되면 맛있다.

 전철이 달린다.

 술이 흐르는 거리에 황량한 검은 차 한 잔을.

 종일 비가 내렸다.

 말 없어도 소란스러운 늦봄.



 On the rooftop of Café B, the sound of yearning for the night is heard.

 Taxis stand in a row.

 People stagger.

 Questions repeat endlessly.

 What is the fear tinged with your laughter?

 Chewing on feta cheese and tomatoes,

 I recall the lonely sound of waves heard on a Mediterranean beach.

 Loneliness tastes good by now.

 The subway runs.

 A solitary black tea on a street flowing with alcohol.

 It rained all day.

 Late spring is noisy even without words.


2008. 4. 27. SUNDAY





 좋아하는 계절은 모든 것을 전복시킬 듯 음흉함을 품고 있던 싱그러운 가면을 쓴 봄이나 눈을 내리쬐는 해가 살기를 부르는 여름이 아닌, 내가 태어난 늦가을과 표정만큼이나 싸늘한 겨울이었다.



 오랫동안 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전의 글들을 보니 봄과 여름에 상황이 좋지 않았던 듯하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도 안 좋았다. 시간이 지나 강도는 약해졌지만, 사물을 볼 때 벗어버린 줄 알았던 과거의 안경을 끼고 있었다.


 계절적으로도 누구나 좋아하는 봄이 그리 반갑지 않다. 생기가 올라오고 물이 올라 보이지만 햇살도 뜨겁고 그냥 날개미처럼 올라오는 삶의 잔상들이 간지럽기만 하다. 나는 늦가을과 겨울이 좋다. 무엇인가 접어들어가고 정리를 할 수 있는 차분함을 던진다. 모두를 웅크리게 하는 차가움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바람도 시원해지고 군불도 올라오는 계절이라 그런가 마음의 얼굴도 펴진다.



 영화든 글이든 시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그것이 나의 작업이 아닌 타인의 작품일 때 몰입해서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순서 없이 밀어 넣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어떤 체계도 필요치 않고 계획도 요구하지 않는다. 잠을 안 자고 작품을 탐식하는 생활에 집중하면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긴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적으로는 맑아지고 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체의 저항을 받는 음식과 달리 정신적인 것은 체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흡수하면 할수록 오히려 허기와 갈증이 심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세상이 너무 궁금했다.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의 것을 보다 보면 내 것을 할 생각을 잊어버린다. 언젠가 자동머신처럼 무감각하게 내 마음을 대변할 이야기들을 찾아 빠르게 테이프와 책장을 넘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뭐 하고 있을까.


 읽고 쓰고 일하고 있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그런 회의가 들면 잠시 정지한다. 사실 요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를 다시 살피게 되니 그 또한 신선하다. 예전과 지금은 어떤 면에서는 같고 어떤 면에서는 달라져 있다. 어느 정도 상황도 변했다. 시간을 헤쳐온 주도권을 내가 쥐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생겼고 발언권도 세졌다. 시간이 주는 변화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이해의 폭은 다행히 좁아지지 않았고, 강박적인 태도에도 약간의 여유는 생겼다.  


 돌이켜보니 '일단 살고 보자'가 머릿속에 있었다.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것들에 떨어져 나간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기 위해 버텨왔던 모든 것이 허무해지고 말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정신을 건져 올리고 싶었다. 나는 그 누구의 모습이 아닌 나답게 살고 싶다. 정확하게 보면 여기에 적어대는 나의 이 모든 이야기는 그냥 사는 고민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궁금해서 물을 때 잘 대답해 준다. 아이들의 고민은 나도 안고 있으니까.


 "저 뭐가 될지 모르겠어요."

 - 나도 몰라.

 "지금 잘하고 계신 거 아니에요?"

 - 그냥 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요?"

 - 괜찮아. 안 하는 거 보단 나으니까.

 "우린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 그럴 거야. 언젠간 찾겠지.

 "못 찾으면요?"

 - 그럴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살아 있으니까.


 일한다고 바빠서 그런가 십 년치 본 것을 세어 보니, 어렸을 때 한 달 치 본 것보다 적다. 혹시 감각이 쇠퇴할까 봐 간간히 비행기 안에서 영화도 좀 봤고, 전시장에도 간혹 가고, 잡지나 신문도 보긴 했는데 산만해지고 집중이 잘 안 됐다. 책다운 책은 안 본 지 꽤 됐다. 주변에 처리해야 할 가시적인 것들이 포진하면 부담스럽다. 최소한으로 살고 싶지만 공동체를 구성해야 하는 삶에서 그것도 쉽지 않다. 요즘 엄청 게으름을 부린다. 내 인생에 대충은 없는데  '열심'이란 단어도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냥 평소 템포보다 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하나씩 장벽을 제거하면서 걷기로 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갈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한발 나선 것이다.





 관찰이란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엎질러진 물을 쓸어담을 수 없고, 찢어진 꽃잎은 붙이기 어렵다. 

2013. 6. 28.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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