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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9. 2024

VA SAVOIR

룸(ROOM) 속의 미학,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남는다.

[VA SAVOIR] MOVIE POSTER. 2005. 4. 25. PHOTOSHOP. EDITED by CHRIS



고전적인 어투지만, 영화 <알게 될 거야 Va Savoir: Who Knows?>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남는다."


물론, 사람들이 해와 물과 모래로 시계를 만들어놓은 이상 시간이 흐르는 것은 맞다. 그러나 변화하는 공간에서 우리의 존재가 영원히 허용되기에는 이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흔들리는 유리병에서 탈출구가 막힌 사람들이 장막 속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날숨을 잇는 전기력은 자신의 흔적이 있어야 골방에서 우주를 쏘고 상상의 턱을 괼 수 있다. 실존의 다락방은 갇힌 자에게 높은 창문을 열고 정시에 세상을 향한 마술커튼을 올리게 할까? 그리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자르면서 저리도 신나게 왈츠를 추는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을까? 훔치고 결투하고 애원하고 조롱하고 교차하는 불순한 세모 거실 속에서 사람들이 흔들면서 맺는 관계는 부드러운 음악에 맞춰 돌아가는 인형의 움직임과도 비슷하다. 만날 때 인사하고 헤어질 때 인사한다. 부딪히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매일 밤의 축제에서 나누는 짧은 악수는 종잇장의 두께와 같은 가벼운 움직임만으로도 동화적인 리듬을 탄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식으로 딱딱하게 철학하는 광대는 보드카에 취해서 유약한 그물에서 주정 피우고, 갇혔던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의 자아와 허무한 투쟁은 적은 수의 관객과 평단의 찬사로 막을 내리는 무대(Stage). 떠나갔던 예술의 도시에 잠시 머무른 발걸음을 붙잡으려고 요리책 사이에서 얼굴을 내미는 골도니(Carlo Osvaldo Goldoni)의 비공개 문서를 보면서 연극이 무척 보고 싶었다.


"C’est vrais! Come tu mi vuoi."

"그게 사실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자끄 리베트(Jacques Rivette)의 영화는 알고리즘 수학(Algorithmic Mathematics)이나 화학 분자식(Chemical Formula)과도 비슷하다. 독재적인 은유가 지휘봉을 흔들면서 거들먹거리는 표정이 확연하게 드러나지만, 배우는 참새나 파리처럼 열심히 움직이고 회전하며 충실히 역할을 이행하기 위해서 분주하다. 나는 수학에는 영 소질이 없고 화학은 좀 흥미롭다가 그만둬서 화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 그런데 피란델로야, 연극이란, 연극 세계란!"


무대의 고동치는 심장은 이차적인 카메라 워킹만으로 전해지기 불충분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자신으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그래서 분신이 필요한 듯하다. 나를 대신하는 탈 자아(脫-自我)가 생명을 이어주길 기대하며 자신보다 더 긴 수명을 뽐내고 희망찬 세계에서 침잠된 역할을 바꾸어놓을 그런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연극이 접목된 영화가 좋다. 단면적인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물리도록 보았기에 재차 생각할 수 있는 코드가 마음에 든다. 난 어떤 나로 구성되어 있을까? 날 만들던 세계에서 탈출하면 자유로운 나는 갑갑했던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그때는 젊음도 잃고 의지도 잃은 타락한 노인처럼 독한 시가를 피우며 검게 그을리지 않을까? 사실 연극은 연극일 뿐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며, 책은 책일 뿐인데, 극을 구경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망가진 가운데서도 거울을 보며 살갗이 붙어있는지, 일종의 생존 확인이랄까.


시대는 비슷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이 영향받아왔던 작품들을 삽입하고 거론하면서 과거를 유희하며 포용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물결을 흘리면서 배척 속의 미래적인 융합을 끌어내는 사람도 있다. 자기만의 기호를 찾아가는 인생에서 거칠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 돌을 씹은 양 기분이 껄끄럽다. 걱정의 먼지와 부덕한 파급들이 불안하게 마음을 치고 지나간다. 춤을 출 룸살롱이 좁다. 꼿꼿이 앉아 술 마셔야 할까? 흐르는 시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남지만, 내가 맨 정신으로 존재할지는 알 수 없다. 푹 쉬고 싶다.


2005. 4. 25. MONDAY




답답할 때마다 극이나 글들에 빠져들었다. 활동적이고 싶을 때 연극을 보면 가슴이 틔였다. 생생하게 귓가에 울리는 인간의 살아있는 목소리는 기계음을 통해 걸러진 영화 속 목소리보다 현실감이 있었다. 연극을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가만히 내가 연극을 보던 그 어느 날을 떠올려보니, 극 속의 배우는 생각이 안 나고 극을 보러 가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투명가운을 쓰고 곁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이십 대의 내 모습과 함께 해본다.


"걱정 마. 아직 그렇게 타락하거나 늙지는 않았어. 시가도 안 펴."


암울했어도 이렇게 삶의 의문을 표하며 어떤 날의 기억을 더듬고, 글을 적고 있었다는 것은 살고 싶었단 소리일 거다.



작은 룸 속에 앉아있던 그녀를 바라보는

시간이 흐른 뒤의 나는

그때보다 커진 룸 속에 앉아 

흘러간 시간을 바라본다.

물길 같은 시간을 거쳐

지금의 내가 여기에 남아있다.


As I sit in the small room, looking at her,

The me after the passing of time,

Sits in the room that has grown larger than before,

Gazing at the time that has flowed by.

Through the time like a stream,

The current me remains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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