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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31. 2024

OVERLAPPING AGENT

A STORY ABOUT A STORY,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A story about a story (Una historia sobre una historia) by Duane Michals, 1989


"현실 중개상."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을 이렇게 부를 수 있을까? 로이스 그린필드(Lois Greenfield), 얀 샤우덱(Jan Saudek), 구본창까지 이미지로 이루어진 다이어리를 훔쳐본 사람들은 그의 필법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투영하면서 또 다른 색감의 이야기를 흘려내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나를 찾습니다.”


어리석고 서툴게 조합한 완성품은 깨지면 걸작의 조각들과 다를 바 없다. 고립된 메시지들은 자동 기술된 그의 생각이며 분절된 컷들은 완전한 영상을 함축하고 있다. 생각은 이미 말해졌고 침묵은 조용하게 할 말을 전하고 있다. 나는 그의 텍스트를 읽고 편지를 읊으며 이야기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다.


우연한 만남이란 비극의 시작이다. 그 희미한 떨림도 알아보지 못한다. 미진하게 끝맺은 우리들의 다툼, 그건 언제 일어난 일이었던가? 간략한 소극에서 육중한 긴장으로 전이되는 인간의 모순된 욕망, 격정, 후회, 회상. 다른 아버지에게서 난 아들이 또 다른 아버지들에게서 난 아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우리들의 허무한 눈물을 보시오, 그 웅덩이에 당신 그림자가 비치기라도 했습니까?"


내가 아는 공간은 액자 속, 그리고 시간은 이상한 나라에 흡수되었다. 땀으로 젖은 셔츠에서 좋은 향내가 났다. 어제 들이부은 것은 벌거벗은 남자의 잠꼬대. 사진에 색칠을 하고 기억을 덧칠한다. 꽃도, 카드도, 주스도, 초코바도. By-buy–BYE. To–too-TWO. 마술과 환상은 미스터리한 꿈이었어.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시간과 기억을 체크한다. 덧없는 순간들의 시퀀스를 이어 붙이며 기억한다. 의심 없이 의미로웠던 하루를. 다시 필기체로 시간에 관하여 기억에 관하여 점점 구불거린다. 악이나 섹스, 범죄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와, 절망과 죽음, 도덕과 슬픔을 수반하는 경험에 관해서도.


아마도 죽음은 가장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과제가 되는 것 같다. 굴절된 나의 삶에서도, 그의 작품 활동이 광채를 뿌린 순간에서도. 빛의 영원한 모태는 암흑이라고 하였다. 어둠 속에서 빛이 생겼고 어둠은 웃으며 몸을 숨겼다. 하늘로 영영 날아갈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천국의 빛에서 노닌다. 나의 정신은 언젠가 육체를 떠나 혜성처럼 떠돌 것이다. 신보다 멋진 나를 꿈꾸며, 우주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문을 품으며.


나는 욕구가 무척 강한 인간이다. 욕망이 구부러질 때마다 거울을 펼치고 나를 점검한다. 이미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얼굴 위로 카나리아 한 마리를 올려놓고 총을 당긴다.


내가 말한 것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아니면 모든 것이 사실일 수도 있는 단순한 이야기다. 이야기들의 이야기. 이야기들에 의한 이야기.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들을 위한 이야기. A STORY ABOUT A STORY


2005. 11. 9. WEDNESDAY




[SHERLOCK SEASON 3] 2014. 1. PHOTO by CHRIS


새해를 시작할 무렵 일요일 자정에 방영한 <셜록 시즌3 (SHERLOCK SEASON 3)>을 보며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과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의 시퀀스를 접합하여 이음새 없이 콜라주한 느낌이 들었다. 내 기억의 일부는 어디선가 상처를 입고 우주 공간을 유영하다 다른 이의 머릿속에 들어간 게 틀림없다.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가 다른 이의 손에서 달라질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십 년 전에 보았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면서도 추억의 명화로 박힌 화면 속에서 아팠던 시절이 뭉근해져 왔다. 분절된 시절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방법은 내 안의 상상을 돌려보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이야기는 계속해서 살아있을 것이고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을 것이다. 저 갈라지고 쪼개진 기억을 보여주는 거울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갈 것이다. 


2014. 2. 6. THURSDAY





살면서 몇 가지 푹 빠져있는 단어가 있는데, 그중에 단연 첫 번째는 '이야기(STORY)'다. HisTORY가 되던 HerSTORY가 되던 시간과 공간을 담는 이야기를 빼놓고 삶은 말할 수 없다. 중첩된 이야기들 속에서 그의 이야기인지, 너의 이야기인지, 나의 이야기인지 전혀 알 수 없어진다.


원형의 리듬이 터져 나오기 전, 사진가 중에선 꽃만 찍는 작가도 있었다. 구름만, 하늘만, 바다만, 들판만, 물방울만, 산만, 사람만, 거리만, 여자만, 남자만, 나체만, 아이만, 아내만, 남편만, 엄마만, 아빠만, 동생만, 형만, 친구만, 군중만, 영웅만, 얼굴만, 폐허만, 손가락만, 발만, 다리만, 귀만, 코만, 눈만, 하이힐만, 스타킹만, 페티시만, 스틸만, 죽음만, 생명만, 기념만, 장소만, 건축만, 여행만, 그림만, 슬픔만, 기쁨만, 행복만, 울음만, 표정만, 장면만, 기억만 찍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 찍어서 속이 후련할까?


사진은 그림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처럼 느껴진다. 아무 사물에나 의미 없이 찍어대는 손 밖으로 퍼져나가는 번쩍임을 보면서 정신을 조각내는 광속을 이겨내기에 이미 머릿속은 검은 장막으로 가득하다. 같이 벌거벗었음에도 사진은 내놓기가 부끄럽다. 손에서 걸러진 그림은 이미 유체이탈의 존재 같아서 보여줘도 괜찮다. 사진은 어쩐지 생경하고 그 빛의 색이 현란하다.


이제 낱장의 사진은 순서대로 시간을 타고 릴 위에서 달린다. 깜빡이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은 웃는다. 프레임의 어둠을 감지하지 못하고 오직 빛만을 인지하고서 즐거워한다. 목소리를 입히고, 음악을 입히고, 테크닉을 더하고, 순간을 덧씌우고, 의미를 포장한다. 


극(劇)이 숨 쉬는 영화 속 이야기에서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로 늦게 발을 내딘 나의 첫 직장은 영화사였다. 재미있게도 예전에 일하던 곳들이 모두 지금의 일터에서 멀지 않은 공간에 겹쳐 있다. 소란스러움이 빛나던 빨간 벽돌의 건물을 지나갈 때마다 창 밖을 보며 건물들을 향해 손짓하는 그 어느 날의 나를 본다. 나는 사진들을 둥글게 이어 붙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허풍선이 꿈도 좋고 말도 안 되는 허세도 좋다. 그냥 바람처럼 말로만 흩날리고 휘파람을 불어대는 이야기여서 좋다.





[DREAMING TIME on the REEL] SELF-PORTRAIT 2005. 11. 29 PHOTOGRAPH by CHRIS



가장 최신의 기억이 내일엔 머나먼 추억으로 남을 것을 염두에 둔다면 시간에 대한 집착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이다. 투영된 거울 밖에서 살아남을 것은 잡을 수 없는 환상뿐, 육체란 방부된 진실을 담기에 쉽게 부서질 껍질로 보이지 않던가.


If one bears in mind that the freshest memories of today will become distant recollections tomorrow, then one must temporarily set aside the obsession with time. Surviving beyond the reflected mirror is nothing but elusive fantasies, for does not the flesh appear as a fragile shell to contain the solid truth wrought b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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