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PLANèTE ENCORE DE MœBIUS

까르띠에 하이라이트展 : 장 지로 <또 다른 행성>, 그 너머

by CHRIS
[La Planète encore de Mœbius] 2017. PHOTOSHOP. PHOTO COLLAGES. PHOTOGRAPH by CHRIS


세계 패션재단들의 국내전시가 활발해졌다. 럭셔리 브랜드들의 머리나 심장을 열어보면 지난 역사를 거슬러 내려오며 단순히 황금이나 돈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역설하듯이 사물이 태동한 영감의 원천을 예술 속으로 편입하여 존재의 이유를 설명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까르띠에(CARTIER) 현대미술재단의 <하이라이트 Highlight>은 값어치를 가늠하기 어렵거나 가치가 부재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현대의 전시(Exhibition)에서 큐레이팅을 누가 어떤 의도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응집의 결과물도 달라짐을 느끼게 했다.


이 세상엔 자기만의 색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까르띠에의 전시에서 알게 된 보석 같은 인물을 고르자면 장 지로(Jean Henri Gaston Giraud | Moebius, Gir)로, 그의 만화영화 <또 다른 행성 La Planète encore de Mœbius 2000>은 독특한 예술적 감성과 섬세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을 바탕으로 한다. 음악이 감돌고 언어가 상실된 시적이고 몽환적인 그림체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유영하는 자를 따라가면 꿈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같기도 한 빽빽한 밀림 속 외계생명체가 살아가는 환상적인 별의 도시.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발현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 그것을 이겨내는 의지가 있다면 새로운 곳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비밀스러운 세계를 그리는 심미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재능이자 축복이다. 창작자가 만들어 낸 피조물이 설사 작가와 동시대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창작자가 부재한 시간 속에서 그의 상상적인 값어치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창조자의 영혼이 시간을 넘어 지속적으로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먼 나라로 가는 발걸음이 잦아질수록 우리들의 삶이 추구해야 하는 바는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물처럼 유영하는 인간의 본성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기에.


2017. 7. 18 TUESDAY



만화광이었던 학창 시절, 작가들의 화법을 따라 그리곤 했다. 그 당시 만화가들의 그림체와 내용은 일본색이 짙었고, 일본풍이 주를 이루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 《머털도사》의 박봉성, 허영만의 《식객》, 고우영의 《삼국지》. 남자 만화가들의 작품들은 TV 만화시리즈나 영화화되어서 흔하게 접하게 됐지만, 이상하게 그림만은 몰입감을 주지 못했다. 만화는 재미가 생명인데, 그림이 재미없어선가 의문만 꼬리를 물었다. 그럴 땐 차라리 만화방에서 무협지를 보거나 대하소설을 빌려보는 게 더 낫긴 했다. 그러다가 순정만화로 돌아섰고,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리니지》, 황미나의 《레드문》, 김혜린의 《테르미도르》, 강경옥의 《별빛 속에》는 현실적인 상상력을 넘어서는 스펙터클한 우주관과 진취적이고 혁명적인 기운을 전해주었다. 여성 작가들의 상상이 더 자유롭게 느껴진 것은 프레임으로 규정되는 만화의 특성상, 틀 밖의 사고는 억압된 현실을 넘어서는 유토피아이자 지구를 벗어난 우주적 상상은 현실적 제약을 초탈할 수 있는 열쇠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당시 기호가 동일한 작가의 문하생이 돼 볼까도 생각했다. 갑갑한 것이 맞지 않는 탈귀속의 속성상 그냥 독학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벨기에 작가가 있었다. 1848년 프랑스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 쌍브르와 쥴리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쌍브르 Sambre》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체가 아닌, 동양권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기묘하고 시적인, 독특하고 황폐한 회화적인 형상을 보여주었다. 이슬레르(Yslaire : Bernard Hislaire)의 그림 세계를 보면서 개성적으로 표현된 일러스트 화법은 탄탄한 내용만큼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까르띠에 하이라이트 CARTIER HIGHLIGHT EXHIBITION>에서 별도로 마련된 '장 지로의 그래픽 노블 섹션'에서는 장 지로가 만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감상실 옆으로, 그의 그림 인생이 녹아든 그래픽적 상상의 결과물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여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한다. 단편이었던 <또 다른 행성>을 보면서 까르띠에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장 지로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전해 준 강렬함은 값비싼 보석들과 예술적 사색들의 반짝임까지도 흡수해 버릴 정도였다.


장 지로(Jean Giraud)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란 장르와 다양한 그림 스타일을 개척한 그래픽 아트의 거장이자 만화예술가이다. 그는 자신의 분할된 작품 스타일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개의 필명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뫼비우스 (Moebius)이고, 다른 하나는 지르 (Gir)이다. 주로 공상과학(SF)이나 환상적인 작품을 그릴 때 사용한 필명 뫼비우스(Moebius)는 <실버 서퍼 Silver Surfer>, <아르작(아르자크) Arzach>, <또 다른 행성 La Planète encore de Mœbius> 등에 사용되었다. 서부극 만화인 《블루베리 Lieutenant Blueberry》시리즈를 그릴 때 사용한 필명인 지르(Gir)는 사실적이고 전통적인 만화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만화예술가 장 지로가 40년간 뫼비우스의 이름으로 그린 그림들은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연금술사 O Alquimista | The Alchemist》의 내부 그림들과 표지에서 보이듯이 연금술사의 신비로운 여정을 그만의 예술적 특징으로 표현하였으며, 베르나르 베르베르 (Bernard Werber)의 단편소설 《나무 L'Arbre des Possibles》의 책 표지에도 사용되었다. 뫼비우스(장 지로)의 그림은 80-90년대 일본 만화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みやざき はやお)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Nausicaä of the Valley of the Wind>의 환상적인 미래의 느낌은 장 지로의 오묘한 상상을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다. 장 지로의 그래픽 노블의 상상은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의 미래 도시 풍경에도 영향을 주었다. 뫼비우스로 활동하면서 장 지로는 <에일리언 Alien>의 의상디자인을 담당하거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감독과 <잉칼 THE INCAL>을 제작했으며,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의 <트론 TRON>의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등 현대 SF 영화의 독보적인 분위기와 독창적인 플롯구성 및 초현실주의적인 디자인 형태에 다양한 작업적인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일상적으로 양손을 사용하고 있지만 가끔 두 손을 제대로 다 활용하고 사는가 묻게 된다. 인도에서 구분하듯이 화장실 갈 땐 왼손을, 밥 먹을 땐 오른손을 쓰는 사회 분리적인 개념의 신체 사용은 더러움과 신성함에 대한 구분으로 사고를 규정짓는다. 좌뇌와 우뇌를 모두 쓰는 사람, 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에 반응하는 사람은 드물다. 껌도 한쪽만 씹으면 좌우의 턱이 균형을 상실하듯이 한쪽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불균형적인 결론으로 존재를 몰고갈 것이다. 장 지로의 전통적인 화풍과 미래적인 화풍은 그가 필명으로 분리해 두었지만, 작가 스스로가 균형을 맞추는 과거와 미래의 교착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2년 미래 세계로 먼 여행을 떠난 장 지로의 그림들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돈다. 세네 번을 그 자리에서 연달아 보았다. 모두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는 와중에 장 지로의 사념까지 전부 흡수한 듯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내 별이 거기에 있는 듯이 다시 태어난 행성에서 오래도록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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